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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 벗 Jan 14. 2021

9월이 지나면,

아지트가 필요했을 뿐이에요 #0



9월은 내게 늘 기다려지는 시기였다. 나의 생일이 9월인 이유가 가장 컸다. 그리고 설 다음가는 명절인 추석도 있고 더위가 물러가고 시원해지는 시기이기도 하며 그래서 귀찮은 모기와 벌레들이 줄어들고, 장마가 끝나며 비 오는 날도 줄어드는 계절. 나는 그래서 9월을 기다린다.


기다리는 것들이 모두 오고 10월의 문턱을 넘으며 나는 아침과 밤이 달라짐을 느낀다. 쌀쌀해진 공기와 불어오는 바람으로 옷깃을 여미고, 두툼한 니트 스웨터와 가디건, 울이 포함된 따뜻한 자켓들을 집어 든다. 오늘 아침만 해도, 어젯밤 간만에 바이크를 타고 퇴근하는 길이 쌀쌀했던 기억에 캐시미어 블레이저를 입고 출근했으니까. 어느덧 겨울이 오겠구나 생각하면서 한해를 되돌아본달까?


너무 즐거운 9월을 보낸 것과 다르게 10월의 문턱에서 이번에는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따뜻했던 시기가 지나고 추워지는 계절이 오면서 공기는 건조해지고 면역력은 낮아지는 시기. 내가 기다렸던 계절이 가져오는 것은 좋은 것만 있는 게 아니었다.



지난봄, 오래간만에 했던 군대 후임과의 전화통화가 어느덧 두 시간을 넘기고 있었다. 힘든시기를 보내고 있는 동생이 조금이나마 잘 이겨낼 수 있으면 했던 마음에 짧은 내 생각들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녀석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도 하면서 오랜 시간 통화를 했던 것 같다. 거리가 멀어서 자주 만날 수 없기에 멀리서 전화를 통해서라도 오랜시간 고민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계절이 두 번 바뀌고, 이틀 전 동생에게서 부고 문자를 받았다. 장기간 병마와 싸우시던 그의 아버지가 눈을 감으셨다고. 나는 급하게 기차를 예매해서 서울로 간 다음 다시 버스로 환승하여 인천으로 갔다. 마지막으로 봤던 기억 속 모습과는 다르게 10킬로가 넘게 살이 빠진 그 의 얼굴을 보며 지난 두 번의 계절이 어땠는지 알 수 있었다. 덤덤하게 이야기하는 동생과 몇 시간 이야기를 나누고 새벽 무렵에야 나는 장례식장을 나섰다. 택시를 불러 타서 서울로 넘어왔고,  또다시 고속버스로 환승하여 창원으로 내려왔다.


 피로했던 지난밤을 뒤로하고 정신없이 일을 하면서 하루를 보내던 중, 그 날  저녁에는 친구 녀석이 찾아와 청첩장을 건네주었다. 가벼운 식사와 함께 축하를 하며, 비록 요즘의 나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괴리를 느끼지만 우리의 앞 날이 행복하기를 바라며 친구를 축하하였다. 피로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 어지러운 거실을 정리한 후 기절하듯이 잠이 들었고 피로한 탓에 늦잠을 잤다. 출근을 해서 오늘 할 일을 정리하며 하루를 준비하는 와중에 다시 울린 스마트폰에 눈을 주었다. 고등학교 동창 녀석의 부친 부고장. 그날 밤 퇴근을 하고 진주를 갔다가 늦은 밤 창원으로 돌아와 또다시 피곤한 눈을 붙였다.



대학교 1학년 때 김광석 노래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당연히 '서른 즈음에'도 내가 좋아하는 리스트에 포함되어있었다.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감정선으로 읊조리는 김광석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경험해본 적도 없는 노래 가사들이 마치 내가 겪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어느 날은 대학 동기 녀석과 도서관 계단(우리는 소크라테스 강연장이라 불렀다)에 앉아서 이야기를 하다가 '지금 들어도 이렇게나 슬픈데, 서른 즈음에 이 노래를 들으면 어떨까?' 하고 물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내가 서른이 되던 해에 그 이야기가 생각났었다. 생각보다 별 것 아닌 나이. 무척이나 덤덤하게 다가오는 가사와 멜로디는 이전만큼 내 마음에 와 닿지가 않았다.


 서른도 지나가고 서른한 살의 가을. 다가왔던 이번 주를 보내고 안락의자에 앉아 맥주 한 캔을 마시면서, 나는 30대가 이런 거구나 느꼈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누군가를 보내는 일들은 겪고 싶지 않은 일들이니까 그렇게 노래할 수 있었겠지. 서른이 넘어가면서 내가 떠나왔고,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 그런 일들로, 나는 어딘가로 향해가고 어딘가로 흘러가는 것 만 같다. 가까웠던 사람들과 멀어지는 것도 경험하고 새로운 환경을 만나면서 또다시 누군가와 더할 나위 없이 가까워지고. 내가 생각했던 것 과는 너무나 다른 어른이 되어가는 나의 모습이 낯설다.


 테이블 위 전화기가 또다시 울린다.


"형 혹시 내일 형네 집에 놀러 가도 돼요?"


"내일? 음, 그래 뭐 좋지! 무슨 일 있냐?"


"일단 가서 이야기해요!"


늘 이런 식이다. 무작정 오겠다는 사람들. 한 번 다녀가면 청소할게 이만저만이 아니다. 내일은 퇴근하면서 마트에서 장을 좀 봐야 할 것 같다.


 순수함을 갖고 나이 든다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알았지만, 나는 순수함을 좋아하니까, 꿈을 꾸고 희망을 노래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내가 마음을 쏟는 나의 사람들의 희망이 이루어지길 바라지만, 결국은 이제 나도 안다. 현실의 우리 사회는 순수하지 않다. 평등하지 않고, 모두 잘될 수는 없다. 아마 녀석의 이야기도 그런 이야기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누군가에게 지금의 계절은 이겨내야 하는 계절이었다. 병마와 싸우면서 작은 병실에서 눈을 감은 분들의 삶에는 어떤이야기가 있었을까. 병실에서 끝난 그들의 이야기는 장례식장에서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가족들에게는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겠지.  내가 좋아했던 계절이 내게도 언젠가는 어려움이 될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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