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지트가 필요했을 뿐이에요 #1
나는 자주 가는 곳이 정해져 있다. 여기저기 쏘다니는 것을 원체 좋아해서 늘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나고 싶다가도 마땅히 갈 데가 없을 때면 어김없이 늘 가던 곳으로 발걸음을 자연스레 옮긴다. 조용히 책을 읽고 싶을 때 가는 카페, 여러 가지 작업을 컴퓨터로 해야 할 때 가는 카페, 혼자 생각이 필요할 때 가는 카페 등 목적에 따라 '카페'는 나에게 각각 전혀 다른 곳으로 변한다.
넓고 많은 사람들 속의 나만의 고요가 좋다가 어느 순간 소음으로 다가오기도 하며 한적하고 사람이 오지 않는 곳의 적막이 좋다가도 어느 순간 외롭게 느껴지기도 하는 법이다. 이렇게 단순히 카페 하나만 보더라도 목적에 따라 모두 다른 곳이 된다.
비단 나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모든 사람은 아마도, 이러한 자신만의 공간이 있다고 생각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 또한 필요에 의해서 매 순간 다른 공간으로 움직이고 그 공간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만족을 얻기 위해 매번 우리는 그곳을 찾게 된다. 나 혼자인지 다른 사람과 함께 인지의 문제는 여기서는 논외로 한다. 나 혼자라 하더라도, 놀이동산 속의 나, 폐가 속의 나, 카페 안에서의 나, 집 거실에서의 나, 방 안에서의 내가 느끼는 것이 다르듯이 감정은 공간만 달라져도 모두가 다른 것이니까.
공간은 우리에게 어떤 것일까? 단순히 내가 잠을 잘 수 있고 편안히 쉴 수 있으며 안정감을 느끼는 과거의 공간에 대한 개념은 이제 확실히 옛것이 된 듯하다. 통계청 자료 기준 우리나라 인구의 1/5이 거주하는 서울시에서 1인 가구의 비율은 이제 29%나 된다고 한다. 전통적인 한국의 가구 구성원으로 여겨지는 4인 가구의 비율이 21%라고 하니, 이제 우리 머릿속에서 '가족' 하면 떠오르는 엄마, 아빠, 첫 째, 둘 째의 가족 형태는 옛말이 되었다.
그만큼 나홀로족이 늘어나면서 공간에 대한 관심도 더 커졌다. 스스로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고 찾아 나서게 된 것이다. 그래서 SNS에서는 홈 인테리어가 인기를 끌고 다양한 공중파 매체에서도 '집' 그리고 '공간'에 대한 콘텐츠를 생산해내기 시작했다. '원룸 꾸미기', '자취방 꾸미기'와 같은 해시태그는 인기 해시태그 중 하나이며, 자기만의 공간에서 하루를 마감하는 사진 한 장을 sns에 업로드하지 않고는 무언가 허전한 느낌이 든다.
언택트 시대에 접어들면서 불어난 캠핑족들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OUT DOOR'에서도 모두 자기만의 쉼터를 찾게 되었고, 다양한 아이템들로 내가 꾸민 멋진 텐트와 장비를 뽐내기에 바쁘다. 구하기 힘든 나만의 텐트에서 간편한 요리를 해서 자연 속에서 새들과 바람과 별들과 함께 보내는 밤은 멀리 떠나지 않아도 찾을 수 있는 여행의 기분을 느끼게 해 줄 뿐만 아니라, 그곳은 그 순간 나만이 알고 있고 나만이 경험할 수 있는 온전한 나의 공간이 된다.
나만 아는 카페, 나만 아는 식당, 나만 아는 펍을 찾아 나서는 우리는 새로우면서도 나만이 아는 공간에 목맨다. 이제는 소비자를 끌어오기 위해서 맛있는 음식과 맛있는 커피, 멋진 옷, 좋은 서비스는 당연한 것이고 새롭고 예쁜 그리고 내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인테리어까지 신경 써야 한다. 소비자가 소비하는 것은 판매자가 제공하고자 하는 양질의 서비스뿐만 아니라, 개개인이 그곳에서 느낄 수 있는 '어떤 감정'에서 오는 경험인 것이다.
이제 공간은 단순히 '머무는 곳'을 넘어서 나에게 보이지 않는 '감정적 가치를 제공하는 곳' 이라 생각된다. 공간 속에서 공감하고 우리는 그 감정을 공유하는 시기에 이르렀다. 먹거리 입을 거리 놀거리 볼거리 할거 없이 이제는 바야흐로 공간이 가장 중요한 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