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동 106호

아지트가 필요했을 뿐이에요 #2

by 오 벗


초등학교 입학하고 1학년에서 2학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우리 집은 새로 생긴 대단지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더 넓은 집을 갖게 된 부모님은, 비록 1층이었지만 그동안의 고생을 보상받는 듯한 얼굴이었다. 한동안 정말 많은 손님들이 106동 106호를 오갔고, 주말이 다가오면 늘 우리 집은 손님들로 시끌벅적했다. 당시 나는 부모님이 친구들과 노는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잘 꾸민 넓은 집을 자랑하고 싶었던 마음이 더 크지 않았나 싶다.


그 집에서도 유난히 돋보였던 공간은 집 밖에 있는 1층의 화단이었다. 특이하게 1층 세대주가 화단까지 소유할 수 있는 아파트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곳은 어머니의 공간이 되었다. 아침마다 열심히 화단을 꾸미던 어머니는 근처 공사장에서 벽돌을 몰래 가져와서 화단에 낮은 담을 쌓기까지 했다.


공든 담벼락을 어지르기 일쑤였던 주범은 나와 나의 자전거였는데, 늘 집 앞을 지날 때면 자전거 바퀴 놈은 내가 딴 곳을 보는 사이 담을 톡톡 건드리며 무너뜨리고 있었다. 그렇게 어지럽혀도 다음 날 아침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무릎까지 오는 낮은 담은 잘 다듬어진 성벽처럼 제 자리를 찾아가 있었다. 귀찮을 법 도한데, 그 집에 살았던 몇 년간 어머니는 개의치 않고 담을 다시 세우고 또 세우고 하셨다. 어머니는 그럴 때마다 말로는 틱틱거렸지만, 내 희미한 기억에 입가에는 미소를 띄었던 것 같다.


글쓰기를 좋아했던 아버지는 부모님 침실, 형 침실, 내 침실을 제외하고 남은 방 하나를 본인 서재로 정했다. 어머니의 화단만큼은 아니었지만 아버지의 서재도 원래는 멋질 예정이었다. 한쪽 벽을 책장으로 가득 메우고 반대쪽 벽은 책상으로 가득 채우면서 완성되어가던 서재였다. 이사를 한 이후 아버지는 타지로 자주 발령을 받았고 몇 년간 항상 주말에만 집으로 왔다.


그의 피곤한 몸은 이제 집안에서 침실과 거실을 더 애용했다. 결국 그 방은 나와 형이 차지하게 되었고, 어머니는 책장을 우리를 위한 책으로 가득 채워두었다. 한가로운 주말이나 방학이면 하루 종일 빈둥대면서 나는 그곳에서 책을 읽어나갔다. 하지만 그전까지 분명 아버지에게 그곳은 소중한 공간이었다.


이사 후 내 개인 방이 처음으로 생기면서 혼자 자기 시작한 나는, 내 침실임에도 가족 모두에게 공유되는 공간에 만족하지 못하고 어느 주말, 나의 독립된 공간을 선언했다. 미지의 영토에 깃발을 꽂고 독립된 국가임을 장엄하게 선포하듯 사뭇 진지하면서도 상기된 얼굴로 부모님께 나의 공간을 소개했다.


방 안 구석 작은 베란다에 커다란 이불을 펼쳐두고 그 안에 작은 막대기를 하나 세워서 마치 티피 텐트처럼 그럴싸하게 만든 다음 나의 아지트이기 때문에 여기는 침범하면 안된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그럴싸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첫 번째 아지트는 몇 시간 지나지 않아 그 안에서 키득대면서 놀던 나의 다리로 인해 우르르 무너졌고, 어떠한 외세의 침략도 없이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조금 더 자라 무리 지어 어울려 다니기 시작할 무렵, 그러니까 중학교를 가게 되면서 가정 시간이면 늘 듣던 '질풍노도의 시기'가 나에게 찾아왔을 무렵, 나는 다시 내 공간이 필요했다.


내가 중학교에 진학하기 전, 무리한 투자가 화근이 되어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나의 부모님은 목돈이 필요해졌다. 106동 106호는 내놓았던 금액보다도 훨씬 저렴하게 다른 사람의 집이 되었고, 급하게 필요했던 만큼을 제외한 금액으로, 딱 그만큼 좁아진 근처 아파트로 이사했다.


새로운 아파트의 1404호 내 방에는 베란다가 없었다. 방 개수도 줄어 이제 서재는 없어졌다. 14층 높은 곳에는 당연히 집 앞에 딸린 화단도 없었다.


현관 바로 옆에 붙어있는 내 방에 누우면 엘리베이터가 위아래로 오르내리는 소리부터 시작해서 부엌에 딸린 보일러실에서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 행여나 우리에게 들릴까 속삭이는 부모님 목소리, 새벽까지 의미 없이 켜 둔 티브이 속에서 바둑기사가 신중하게 한 수놓는 까만 바둑알 소리까지, 집안의 모든 소리로 내 방은 가득했다. 책상과 침대도 거의 맞붙어있어 의자를 뒤로 살짝만 밀어도 침대에 닿아 나는 늘 거의 탈출하다시피 책상을 벗어나야만 했다.


16 폴리 박신양 폰으로 막 연락하기 시작한 인근 여중의 친구와 전화를 위해서, 원하지 않는 가족들의 잔소리를 피하기 위해서 나는 공부를 핑계로 등록한 독서실의 옥상에 자주 갔다. 높은 빌딩의 옥상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모든 게 다 작았다. 지나는 사람도 차도 신호등도 그리고 모든 소리들도 그곳에서는 정말 멀었다.


옥상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거나 친한 친구들과 함께 좋아하는 여자아이 같은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보내곤 했다. 중학교를 지나 고등학교에 가서도 나의 아지트는 여전했다. 아버지를 조르고 졸라 갖게 된 독서실 1층 난간에 잘 묶어둔 값비싼 미니벨로를, 한 달이 채 되기도 전에 도둑맞기 전까지 독서실 건물 옥상은 나에게 가장 독립된 공간이었다.


대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캠퍼스 곳곳에 나만의 공간이 숨어있었다. 나만 아는 카페도 있었고, 나만 아는 펍도 있었다. 하지만 20대의 나에게 가장 소중한 공간은 50cc 오토바이 위였다. 기파랑이라는 이름을 붙인 그 녀석 위에 올라있을 때면, 온 세상이 내 것이 되었다.


서울을 누비면서 기파랑은 해방촌의 보니스 피자와, 상수의 명성관, 석계의 호호 커피, 압구정의 한추, 인사동의 두 대문 집 그리고 한강을 나에게 알려줬다. 그리고 전국 여행을 하며 우리나라의 숨은 절경을 보여주었고 그 위에서 나는 나의 주인공이었다. 제주 여행에서 무리한 일정으로 고장 나면서 비록 곁을 떠나긴 했지만 이전의 어떤 장소보다도 나에게 큰 공간은 50cc 바이크였다. 그렇게 20대를 담은 공간은 나를 떠나갔다.



20여 년 전 106동 106호의 화단과 서재, 그리고 방안 베란다의 막대기로 세운 이불부터 기파랑까지 그 시절의 그 공간들은 모두 '아지트'였다. 각자 무엇을 꿈꾸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독립된 공간임에도 더욱 독립된 ‘개인’을 위한 공간을 끊임없이 소유하고자 했다. 아마도 그 누구의 방해도 없이 입 밖으로 꺼내기가 조금은 부끄러웠을 수 있는 상상의 나래를 펼칠 공간을 원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 30대가 된 지금. 나는 다시 나만의 아지트를 다시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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