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지트가 필요했을 뿐이에요 #3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나의 기억은 4살 때 미술학원에서 크리스마스트리를 그리던 사건이다. 조용히 앉아서 초록색 트리를 그리다 선생님의 지시로 색색깔의 크레파스를 꺼내어 트리를 장식했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당시 미술학원들은 어린이집 가기 전 3~4살 아이들의 유치원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 기억도 사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름 그대로 미술학원이다 보니 아마도 그림 그리는 활동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어쨌든 4살 무렵의 나는 미술학원을 매일 갔었고 4살이라는 1년의 시간 중 유일한 기억은 크리스마스 기념으로 트리를 그렸다는 사실이다. 그 외에 4살의 기억은 전혀 없고 그보다 더 어린 시기의 기억은 단 하나의 사건도 기억나지 않는다.
종종 주변 사람들과 이러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곤 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3살의 기억 중에서도 여러 가지의 많은 일들을 기억하고 있기도 했으나 보통은 나처럼 4~5살 이전의 기억은 전혀 없었다. 4살이라는 나이는 내 삶 속에서 처음으로 기억을 하기 시작하는 나이였다.
부모님의 신혼집이었던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짜리 아파트에서 내가 4살이 되던 해에 우리 가족은 그 윗동네에 있는 15층짜리 32평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우리 가족이 이사했던 새로운 보금자리는 훨씬 넓고 깨끗해졌지만 꽤 높은 곳에 있다는 불편함이 있었다. 큰길에서 옆으로 보이는 오르막도로를 오르면 몇백 미터의 평지가 나왔고 그 평지의 끝에는 높은 오르막길이 다시 나왔는데, 그 높은 오르막이 우리 아파트의 입구였다. 가파른 오르막을 100m쯤 오르다 보면 단지 내 마트가 나왔고 20m쯤 더 오르막을 오르면 왼편에 101동이 나왔다. 우리 집이었다. 그리고 맞은편에는 다시 짧은 오르막이 시작되고 오르막의 끝에 몇 개의 동이 더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새로 이사하게 된 그곳이 내가 기억하는 첫 번째 내가 살던 곳이었다.
내 기억 이전이 일들이라 알 수는 없겠지만 지금 추측건대 아마도, 둘째이자 막내였던 내가 조금씩 자라면서 그리고 형이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면서 공부방의 필요성을 느꼈을 거다. 그리고 좁고 불편한 작은 아파트에서 조금 더 넓고 쾌적한 엘리베이터가 있는 아파트로 이사해야 할 필요성도 느끼면서 부모님은 부족한 자금으로 갈 수 있는 최선의 선택지를 찾았을 거고 그곳이 오르막길 끝에 있는 101동 1206호 아파트였을 것이다. 넓은 공간으로 이사하는 만큼 포기해야 하는 것들도 많았지만 이제 막 결혼생활을 시작한 두 분에게 이곳은 충분히 완벽한 곳이었고 희망이 시작되는 공간이었겠지.
새로운 아파트는 단독 아파트라서 우리 아파트 몇 개의 동 외에는 다른 아파트 단지가 근처에 없었다. 그만큼 인프라가 좋지는 않았을 거고 아마도 어른들에게는 많은 불편함이 있었겠지만 유년기의 나에게 오르막길에 있던 101동 1206호는 큰 불편함을 주지 못했다. 어쩌면 단지 내가 불편함을 기억을 못 하는 것일 수 도 있지만 어린 시절 기억 속 몇 년간 정말 오르막길 아파트 모든 곳이 놀이터였다. 얼마나 큰 놀이터였는지 모른다. 내가 다니던 모든 곳들이 나에게는 '놀잇감' 같았다. 8090세대는 지금과는 달리 아직까지 거칠게 자라던 시기였고 다양한 지형지물을 이용해서 아파트 단지 내에서 재밌는 놀이를 구상하곤 했었다.
그중에서 매일 같이 재미있던 공간은 당연히 우리 집 안이었다. 32평의 아파트는 아직 어린 나에게 정말 넓은 곳이었고 게다가 너무 재미있는 곳이었다. 거실, 부엌 그리고 방 3개가 있는 구조였는데 부모님 침실과 형과 나의 침실 그리고 우리의 공부방 역할을 하는 방으로 구성되었던 것 같다. 아직 어리던 형과 나는 참 장난을 많이 쳤다. 아직 형과 나의 위계가 생기기 전이었기에 우리 둘은 친한 친구처럼 지냈었다. 유치원이 끝나면 장사를 하시던 어머니와 함께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가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우리는 거실에서 방으로 방에서 거실로 다시 거실에서 안방으로 쉴 새 없이 돌아다니며 레슬링을 하다가 태권도를 했다가 다시 레슬링을 하면서 놀았다. 그러다가 기분이 상해 서로 투닥대며 싸우기도 하고 어머니한테 크게 혼나기도 했다.
아버지가 퇴근하고 돌아와 저녁을 먹고 9시쯤이 되면 어머니 아버지는 형과 나를 재웠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때도 일찍 자야 하는 건 굉장히 재미없는 일이었고 가끔씩 자기 싫다고 나는 떼를 썼다. 부엌 옆쪽에 있는 우리의 침실은 방 창문이 부엌 뒷 베란다와 연결되어 있었는데 하루는 내가 재미있는 놀이를 생각해 냈다. 잠든 척하고 조용히 있다가 창문을 통해 뒷베란다로 나가서 부엌으로 다시 들어가 몰래 식탁밑에 숨는 놀이였다. 거기서 부모님을 놀라게 해주면 재밌겠다고 나는 생각을 했다. 형과 나는 뒷 창을 통해 성공적으로 베란다로 나왔고 중간에 한번 쌓여있던 통을 건드리면서 소리가 났으나 너무 조용해 들키지 않았다고 생각한 채 엎드려 포복자세로 부엌으로 숨어들었고 식탁밑에 도착했다. 그러고 잠깐 지났을까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아버지가 부엌으로 걸어오더니 물을 한잔 마시고 다시 거실로 가려다가 갑자기 식탁밑으로 몸을 낮추어 우리를 놀래켰다. 나는 소리를 지르며 거실로 도망갔고 그런 형과 나를 귀여워하며 부모님은 잠깐동안 더 놀아주다가 다시 잠들었던 기억이 난다. 즐거움이 가득했던 어린 시절 일상 속 매일은 '뭐 하고 놀까?'의 반복이었고, 마치 놀기 위해 존재했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그런 놀이들 중에서도 101동 1206호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다른 무엇도 아닌 '썰매 타기'였다. 경남지역은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종종 눈이 내렸는데 어느 해 겨울에는 눈이 정말 펑펑 내렸다. 얼마나 내렸는지 수치로 기억할만한 나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정확히는 몰라도 그날은 함박눈이 내렸던 날이었고 아파트 오르막길이 꽁꽁 얼고 눈이 모든 곳에 가득 쌓였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 창 밖이 새하얗게 빛나고 있었고 창 틈으로는 아이들 노는 소리가 새어 들어왔다. 밖을 내다보니 101동 맞은편 오르막길의 얼어붙은 경사로를 따라 여러 아이들이 쌀포대와 대야 따위를 깔고 앉아 눈 위를 썰매처럼 타고 있었다. 눈썰매라니! 어린이집에서 겨울캠프로나 갈 수 있던 썰매장이 우리 집에 생긴 거였다. 부모님을 데리고 나가 두꺼운 포대 같은 걸 타고 몇 시간이나 얼어붙은 경사로를 오르내리며 놀았었다. 오후가 되어서야 저 위층에서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에 집으로 들어가 밥을 먹었고 그제야 지쳐 잠들었던 것 같다. '썰매 타기'는 어린이집에 가서도 재미있는 자랑이었다. 우리 집에 눈썰매장이 생겼다고 너무 신나고 재미있는 일이라고 동네방네 이야기하고 다녔고 지금까지도 내 기억 속에서 재밌는 추억으로 자리 잡혀있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오르막길이 꽁꽁 얼었던 그때의 우리 아파트는 차를 타고 내려가야 하는 어른들에게는 얼마나 큰 불편함을 주었을까. 게다가 가파른 경사로를 내려가는 노인에게는 정말 위험한 하루였으리라. 급하게 밖을 나갈 일이 있는 어른들에게는 큰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었을 게고 아마도 미끄러지는 사고로 누군가는 손해를 보기도 했던 그런 날. 나는 행복한 미소로 짧은 경사로를 오르내리며 몇 시간이고 우리 집에 생긴 눈썰매장을 마음껏 누렸다.
내가 자랑했던 오르막길이 얼어 썰매장이 됐다던 우리 아파트는 부모님에게는 어쩌면 속상한 기억일 수 도 있다. 오르막도 내리막도 없는 곳이라면 그런 재미도 없었겠지만 그런 불편함도 없었을 테고 비교하기를 좋아하는 사회 속에서 오히려 내가 겪었던 재미있는 사건들은 오히려 빨리 벗어나서 해결하고 싶은 부모님의 과제처럼 되었을 수 도 있다.
101동 1206호는 5년 정도의 기억을 둔 채 우리 가족은 새로 이사하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이사한 곳은 더 넓어진 방 4개짜리 아파트였다. 오르막길을커녕 낮은 언덕도 찾아볼 수 없는 넓은 들에 세워진 신시가지 아파트. 이사하자마자 보란 듯이 아버지는 형과 나에게 자전거를 1대씩 사주었고, 마음껏 동네를 돌아다니라고 하셨다. 수 km 이어지는 대단지 아파트 동네는 우리 아파트를 벗어나도 바로 또 다른 아파트가 나오고 그 아파트를 벗어나도 또 다른 아파트가 나왔다. 그리고 아파트 앞으로는 초등학교가 2개나 있었고 단지 옆에는 인근에서 가장 큰 서점이 있는 동네였다. 새로 이사한 동네도 너무 좋고 재밌었다. 하지만 남들과는 다른 특이한 점은 없었고 근처에 사는 모두가 비슷한 동네였기에 자랑할만한 재밌는 일도 줄어들었다. 하지만 새로 이사한 우리 집에는 많은 손님들이 밤마다 놀러 왔었다. 부모님에게는 가장 재밌는 아파트였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