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입구 과일가게 아주머니는 찌푸린 얼굴로 주변을 둘러본다. 건물 입구에 어지럽게 차려진 노상 과일전방은 늘 그늘에 가리어져있고 아주머니는 어둠 속에서 눈을 켜서 그럴까 넓지 않은 미간사이가 늘 주름져있었다.
‘ 안녕하세요!’
외친 인사말은 빠르게 흩어지고 아주머니는 고개를 까딱하며 답해준다. 친절한 인사를 받아본 기억은 없지만 아이에게도 언제나 귀찮음을 무릅쓰고 대답해 주는 아주머니가 나는 괜히 정겹다. 인사 외에는 한 마디 대화도 없이 시선을 돌려 입구에 들어서면 왼편으로 가방가게 아주머니 아저씨가 늘 벽면을 바라보고 있고 시장 입구에 들어서는 사람들의 지나는 인기척에 매 초마다 밖을 내다본다. 눈이 마주친다. 벽에 뭐가 있는지 늘 같은 자리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는데 아마도 티브이가 있는 거겠지. '쳐다보지 말고 그냥 빨리 지나가야지' 생각하며 걷지만 신기할 만큼이나 늘 눈이 마주친다. 꾸벅 인사를 한 뒤 걸음을 서두르면 그 옆으로 또 다른 가방가게가 나온다. 콧수염을 듬성듬성 기른 아저씨가 흥얼흥얼 주문인지 노랫말인지 모를 말을 뱉으며 먼지떨이로 가방을 연신 털어댄다. 먼지 한 톨도 보이지 않는 가방 위를 털지만 나는 그곳을 오가는 손님을 본 기억이 별로 없다.
'날리는 먼지로 손님을 내쫓는 건 아닌지 모를 일이지'.
도망치듯 뛰어서 색색깔이 빛나는 점포 안으로 나는 미끄러지듯 들어선다. 점포 위 커다란 간판에는 ‘한일주단’ 이라고 쓰여있다. 들어서는 한복가게 안은 수다로 이미 가득 차있다. 한복을 사러 온 손님인지 한복가게 주인의 지인인지 눈치를 살피는 와중에 가게 주인이 외친다.
"어른을 봤으면 인사를 해야지!"
"안녕하세요.."
꾸벅 인사를 하고 가방을 던져 놓고 잠깐 입구에 서서 들어갈지 말지 고민을 하는 와중에 가게주인의 찌푸려진 미간을 보고 눈치껏 다음 수를 둔다.
"엄마 내 500원만!"
더 깊어진 미간과는 다르게 고민도 없이 작은 꾸러미에서 오백 원짜리 하나가 순식간에 튀어나왔다. 던져지듯 내 손에 쥐어지는 동전 하나를 흘릴세라 호주머니 깊숙이 찔러 넣고 후다닥 골목으로 들어선다. 멀어지는 가게 안에서는 어지럽게 날카로운 목소리들이 다시 뒤를 쫓아온다. 웃음소리를 내는 입과는 다르게 미간은 계속 찌푸러져있는 가게 주인의 얼굴은 날이 서 있었다. 그런 얼굴이 나는 늘 불편하다.
혼자 두어 바퀴 골목길을 돌다 보면 하나 둘 마주친 녀석들은 어느새 대여섯 명으로 모인다. 어른들이 보이지 않는 시장 2층의 어두운 골목으로 우리는 우르르 몰려가 시끌벅적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도둑과 경찰을 할지 아롱이다롱이를 할지 논쟁을 펼치다 도둑과 경찰을 하기로 했다.
나는 도둑이 좋았다. 경찰이 100초를 세는 동안 시장 안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곳을 찾아서 숨는다는 건 정말 스릴 넘치는 일이었다. 다른 녀석들이 절대 찾을 수 없을법한 공간, 나만 아는 장소로 도망가서 숨어있는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즐겁고 나만 아는 곳이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두근거리는 일이었다. 물론 삼십 분도 채 지나지 않아 나만의 장소는 들키기 일쑤였지만.
기대가 무색하게도 나는 경찰이 되었다. 가위바위보는 도대체 어떻게 이기는걸까? 늘 나는 지는편인데 왠지 다른녀석들은 내가 뭘 내려고하는지 알고있는것만 같다.
‘경찰은 정말 재미가 없는데...’
흩어져서 도둑을 잡자고 경찰역할을 맡은 다른친구가 크게 말했고 우리는 각자 다른 방향으로 달려갔다. 계단 아래로 내려가 1층에서 골목을 돌고 돌아 아랫길로 향하자 한일주단이 보였고 아주머니 두 명이 가게를 나서는 모습이 보였다. 서둘러서 한일주단으로 뛰어갔다. 미소 짓는 가게주인의 얼굴을 보니 다녀간 사람들은 손님이었나 보다. 뭘 하다가 왔냐는 물음에 나는 친구들과 놀다가 목이 말라서 왔다고 대답을 하였고 엄마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냉율무를 시켜주었다.
한일주단을 기준으로 뒤쪽 먹자골목으로 향하는 골목길에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진철커피‘는 요즘 말로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이었다. 조금 더 어릴 때는 냉 살구차를 좋아했는데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로는 냉율무가 나의 단골음료가 되었다. 한 잔을 급하게 마시면서 엄마한테 사실 도둑과 경찰 놀이 중인데 나는 귀찮아서 몰래 엄마한테 도망 왔다고 웃으면서 소리쳤다. 엄마는 그러면 되냐고 반문하면서 웃어 보였다. 괜찮다고 그래도 아무도 모를 거라고 대답하고 나는 누워서 그대로 잠들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