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도 고마워.
빨려들 듯 깊은 잠의 느낌은 정말 반가운 신호다. 자야 할 시간에 잠 못 이루는 고통만큼 큰 고통도 없다. 잠 못 이룰 때는 누가 내 귀에 메가폰을 대고 말하는 것처럼 주변의 소음이 크게 울린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세상을 한 바퀴 휘~ 돌고 나면 어렴풋한 아침이 나를 깨운다.
나무에 소복이 쌓인 눈이 언제 왔었나 싶게 다 녹았다. 길가에는 찬공기의 눈덩이가 낙엽을 품고 얼어있다. 밤새 쌀쌀한 기온이 내 어깨를 오싹하게 하지만 부엌을 이리저리 오가다 보면 어느새 부엌의 공기와 나의 온도가 적당해진다.
오늘 아침은 대구탕을 준비했다. 낚시꾼 남편은 물컹물컹한 대구를 많이도 잡아왔다. 대구만 보면 옛일이 절로 생각난다. 갓 결혼하고 저녁을 위해 시댁에 갔던 날, 어머님은 대구를 사다 놓으셨다. 시댁 근처에는 큰 수산시장이 있어서 생선찌개를 자주 해 드셨다. 이제는 너희가 하라며 나에게 손질을 맡기셨다. 그날 처음으로 생선을 손질해 봤다. 대구의 미끌거리는 몸과 물컹한 내장을 만진 그 느낌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가 않는다. 그날 나는 세상에서 제일 하기 싫은 일 하나를 추가하였다. 시어머님은 생선을 드시지도 못하면서 오로지 남편과 자식들을 위해 그동안 생선을 손질하셨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다행히 남편이 잡아온 생선은 손질해서 가지고 온다. 나는 헹궈서 끓여 먹기만 하면 된다. 막 잡은 생선은 무만 넣고 끓여도 일품이다. 쫄깃한 하얀 대구 살이 주는 식감과 시원한 국물맛은 한 단계 더 건강해지는 맛이다. 오늘 아침은 그렇게 해결했다.
점심은 무엇으로 식구들 입맛을 즐겁게 해 줄까!
일을 그만두고 질병의 고통을 겪는 동안 글쓰기를 시작했다. 내 일상의 절실함과 빈 시간을 촘촘히 채워주고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시간이다. 꽁꽁 숨겨두었던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놓으면서 깊은 우물 속에 울분을 토해보기도 하고 조금씩 밖으로 나와 하늘을 향해 시원하게 숨을 쉬어보기도 했다.
난 어쩌면 어릴 때부터 순수함을 잃었는지도 모른다. 엄마에게 잘 보이기 위해, 친구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내 주변의 누군가에게 난 이런 사람이고, 인정받기 위해 위선의 탈을 쓴 사람처럼 살아왔다. 그런 모습들이 한 겹 두 겹 쌓이다 결국 나라는 존재는 어디에도 없고 내가 아닌 여러 모습의 타인이 내 마음을 지배한다고 생각했다. 너무 바보처럼 착할 때도 있고, 너무 이기적으로 비뚤어질 때도 있고, 세상을 살아가지 못할 것 같은 모습이었다가 다음 날은 너무나 멀쩡히 일어나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나.. 내가 싫을 때가 많았고 내가 불쌍할 때도 많았다.
이런 다양한 내 모습이 나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보통 인간의 모습이라는 것을 책을 통해 배웠고, 글을 쓰면서 복잡한 나의 심리를 인정하게 되었다. 신통하게도 글쓰기가 오래 묵은 감정의 독을 조금씩 해소해 주었다. 좁고 어두운 길을 지나면 넓고 밝은 곳이 있다는 기대를 느끼게 해 주었고 나도 누군가에게 위로를 건넬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해 주었다.
고민했던 것들이 시원하게 해결된 것은 없지만 희망적인 생각을 되풀이하면서 잘 될 거라는 다짐을 하게 되었고 열 가지 절망 중에 한 가지라도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면 그것 하나로도 살아갈 힘이 생긴다고 우겨봤다. 자꾸 우기다 보면 무기력한 기운이 희망찬 에너지로 변화될 거라 믿는다.
세상이라는 넓은 의미가 한 개인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숱하게 만난 개인들이 나에게 준 좋은 영향과 나쁜 영향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깎고 깎여서 나라는 작품이 조각된 것일 것이다. 나라는 조각품이 오래도록 빛나고 아름다우면 좋으련만 갈수록 빛을 잃어 초라해진 내 모습에 오랜 시간 의기소침했었다. 지금도 여전히 아픔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지만 살려는 의지가 질병을 이기는 기적을 많이 봐왔고 그런 기대로 올해를 견뎌왔으니 새로울 것도 없는 다음 해도 잘 살아봐야겠다. ♡
- 성전 스님의 '괜찮아, 나는 나니까' 中 에서 발췌 -
놓을 때 아낌없이 놓아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시작이 가능합니다. 새로운 시작은 축복입니다. 그것은 무한한 희망과 가능성이기 때문입니다. 놓되 마음에 작은 미련이나 집착도 없는 것을 완전한 놓음이라고 합니다. 완전한 놓음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탄생을 경험하게 됩니다.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삶이 진정 주인공의 삶입니다. 겨울나무는 여름날의 무성했던 녹음을 그리워하지 않습니다. 그냥 추위를 온몸으로 견디고 있을 뿐입니다. 모든 것을 놓아 버린 겨울나무에 봄이 오는 것을 보십시오. 그것은 모든 것을 놓아 버린 겨울나무가 회복해 낸 희망입니다. 놓을 땐 완전하게 놓으십시오.
그 순간 당신의 삶은 축복이 될 것입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냥 놔두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은 그때가 다시 올 수 없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한번 흘러간 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듯이 우리는 두 번 다시 그 시간대에 설 수 없습니다. 그때에 대한 안타까움은 곧 불행이 되고 새로운 시작의 길을 지워버리게 됩니다.
내게도 물론 '그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놔두려고 합니다.
나는 이제 그때가 아니라 '지금'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란 알아차리지 않으면 자기 마음대로 달려갑니다. 그 질주란 얼마나 빠른 것인지. 혹은 느리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마음이 다운되는 순간이면 난 마음을 바라보며 말합니다. 아직 걱정할 순간은 오지 않았다고. 또 그런 순간이 온다면 난 다시 아직 최악의 순간은 오지 않았다고 말할 겁니다. 스스로 여지를 없애는 사람은 마음의 노예가 되지만 어떤 순간에도 여지를 남겨 두는 사람은 마음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여지가 내가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거리입니다. 너무 엄살떨지 말고 삽시다.
살아 있다면 그것은 아직 최악이 아니고 최악이 아니라면 언제든지 좋아질 수 있습니다. 스스로 회복기의 아침을 열어 가는 태양 같은 사람이 됩시다. 오늘 아침도 태양은 웅장하게 떠오릅니다.
당신의 하루도 저 태양처럼 그렇게 웅장하게 떠오른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를.
『오늘 하루가 완벽한 하루까진 아닐지라도 괜찮은 하루일 수 있다는 믿음.
하루 종일 우울하다가도 아주 사소한 일로 한 번 웃을 수 있는 게 삶이라는 믿음』
그러므로, 오늘도 기쁘고 감사하게 살아낼 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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