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절함
남편이 갈치를 잡아왔다. 갓 잡은 갈치의 아름다움을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야말로 은빛 비단을 입은 것 같은 반짝임과 투명하게 찰랑거리는 지느러미.. 푸른 바다 위에서 넘실대는 은빛 몸매는 어부들만이 볼 수 있는 놀라운 자태이다.
남편은 바다의 지독한 추위에 몸살이 걸려 죽을힘으로 집을 향해 차를 몰았다고 한다. 문턱을 밟자마자 쓰러지듯 누워 잠에 빠졌다. 1m 넘는 아이스박스를 열어보니 겨우 갈치 세 마리가 담겨 있다. 얼음 위에 서늘하게 누워있는 갈치를 조심스레 잡아 올렸다.
갈치의 은빛 비늘을 보노라면 정말 황홀해서 칼을 대기가 망설여진다. 물에 헹구고 물기를 닦아놓은 갈치의 비늘은 빛에 의해 색깔이 변하는 홀로그램처럼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매끄러운 은빛 옷을 만지고 유리구슬 같은 투명한 눈동자를 한없이 보고 있으면 마치 살아서 튀어 오를 것만 같다. 얇디얇은 지느러미는 또 어떤가! 막 잡아 올린 갈치의 지느러미 춤선은 그 움직임에 음표를 달아 멜로디를 만들고 싶을 정도로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갈치를 넋 놓고 바라보고 찬양하면서 갈치를 몇 토막으로 나눌지 가늠했다. 도마 위의 새빨간 피를 보다가 섬찟하여 마치 내 피인것마냥 소름이 돋았다.
손질하고 남은 갈치 대가리를 버리기 위해 마지막 의식처럼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투명한 안구에 검은자위가 아직도 선명하다. 그 눈동자에는 살기 위한 본능으로 몸부림치다 생을 마친, 죄책감을 일으키게 하는 간절함이 묻어있다.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드넓은 바다에서 치열하게 살았을 갈치의 눈동자를 빤히 보고 있으면 나를 원망하는 눈빛과 주둥이의 가시 같은 이빨로 나를 공격할 것만 같다. 그 원망의 눈빛을 빨리 지우고 싶어 속히 보내주었다.
갈치는 구이와 조림 두 가지 방식이 있다. 갈치의 몸에 튀김가루를 묻혀 바삭하게 튀기거나 팬에 무와 다듬은 갈치를 가지런히 놓고 간장소스를 얹어 바글바글 끓여 먹는 방법이다.
막 잡은 갈치의 비늘은 웬만해선 잘 벗겨지지 않는다. 손으로 만져보면 계속 만지고 싶을 정도로 매끄럽지만 단단하게 피부를 감싸고 있어 하루정도는 건강한 처음 상태로 보존이 가능하다. 하여간 비늘도 아까워서 겉바속촉 갈치구이를 해 먹었다.
이 세상의 살아있는 모든 생명들은 하나같이 예쁜 구석이 있다. 예쁨이 뭔지도 모르는 생명들은 그 아름다움을 무기로 치열하게 살아간다. 먹고 먹히는 치열함 속에 살아가는 생명들을 인간들은 아름답다고 감탄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허무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 허무함은 아름다움이 영원하지 않고 자연의 섭리에 의해 언젠가는 사라져 버리는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모든 만물은 소멸할 걸 알면서도 치열하게 싸우다 죽고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난다.
돌고 도는 아름다운 세상 속에 살아가는 나는 어떤 아름다움이 있을까?
동식물의 내면은 알 길이 없으니 고등동물인 인간은 내면의 아름다움을 강조한다. 겉을 꾸미는 아름다움도 있지만 내면의 아름다움을 위해 끊임없이 갈고닦는다. 그 아름다움의 깊은 속내는 나는 어떤 사람이고 싶은가에 대한 간절함이 있다.
나는 어떤 간절함이 있는 걸까?
내가 늘 동경하는 사랑, 순수한 진심, 또는 닿을 듯 말 듯 닿지 않는 인간의 본질. 이런 것들이 난 늘 궁금하다. 아무것도 절실하지 않은 이 나이에도 무언가를 꾸준히 갈구하는 것. 그걸 손에 잡고 싶어 늘 안달한다.
이렇게 삶의 의욕이 다분히 있으면서 얼른 삶의 끝으로 가고 싶기도 하다. 현실은 아름다운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픔, 슬픔, 절망도 함께 공존하기 때문에 난 되도록 그런 것들과 멀리하고 싶다.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데도 어쩔 수 없이 닥치는 절망들을 정신력으로 이겨내고 드디어 초월하는 그 순간이 인간에게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아닐까? 난 그런 사람이 제일 존경스럽다.
망망대해에서 조금 전까지 치열하게 살았을 갈치의 원망 섞인 선명한 눈빛을 보노라니 그 간절함이 느껴져 나도 갈치만큼 생의 간절함이 있었나 싶은 생각에 이성적으로는 갈치의 오묘한 빛깔의 비늘을 황홀하게 바라보는 내 모습에 웃기기도 하면서 가슴으로는 넓은 바다에서 아름다운 몸을 출렁이며 살았을 장면이 떠올라 잠시 웅장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 찬란한 생이 내 몸의 영양소가 돼줬으니 결코 허무하지 않을 거라고 속삭여주었다. 겨우 겨우 인간답게 살려고 애쓰는 나를 위해 생의 간절함이 컸을 갈치가 주고 간 생을 난 살점하나 남기지 않고 야무지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