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엇이 되려 했던가
오늘 아침은 북엇국과 씀바귀무침을 했다. 얼마 전에 시골에서 짜온 들기름을 써 볼 요량으로 냄비에 들기름 한 스푼을 넣고 북어를 볶다가 육수를 넣어 진하게 끓이고, 데친 씀바귀에 들기름과 갖은양념을 넣어 무쳤다. 남편이 식구들에게 전염시킨 독감 때문에 아버님은 입맛이 똑 떨어져 밥 한 술 뜨기도 너무 힘들어하셨다. 결국 국물만 호로록 넘기시다 방으로 들어가셨다. 유일하게 멀쩡한 나 홀로 식탁을 지켰고 씀바귀무침은 그대로 내 차지가 되었다. 이럴 때 뜬금없이, 제대로 못 챙겨 드시는 엄마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맴돌고 나는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해서 졸린 눈을 비비며 이 시간을 사수하려 애를 썼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팔팔한 20대, 그리고 한 여름, 깨달음을 얻기 위해 반팔 티셔츠, 얇은 바지, 단화를 신고 계룡산을 오른 적이 있다. 돈 쓰기 싫어서 장비를 갖추지 못하고 등산을 했다. 다른 친구들이 준비한 묵직한 등산화, 등산 도구들을 보고도 나는 전혀 두려움이 없었다. 젊은 피가 그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두운 산속에서 지내는 동안 친구, 선배들과의 대화, 귀신처럼 서있는 나무들을 보면서 깨달음보다 현실이 눈앞에 다가왔다. 무서움, 배고픔, 바위에 부딪힌 몸뚱이의 아우성.
집에 온 날, 얇은 옷과 신발은 나의 몸을 보호해 주지 않았다. 결국 엄지발톱 두 개는 다 빠졌고 치료비만 잔뜩 날렸다. 친구들은 발톱 두 개만 빠진 것도 천만다행이라고 비아냥 섞인 위로를 해주었다. 뭔가 얻는 게 있겠거니 젊은 혈기에 자만심만 가득 차 만만하게 올라간 거대한 산은 나에게 현실을 똑바로 보라고 따끔하게 혼을 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품에서 순진하게 살았던 나는 세상 밖으로 나와보니 나의 순진함은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것이었고 열렬하게 동지애를 느꼈던 동료들의 이기심에 몸살을 앓아야 했다. 그렇게 텅 빈 머리와 가슴을 제대로 채우지도 못하고 20대를 보냈었다.
내가 살면서 마음에 품은 어설픈 가치관, 신념들은 상황에 따라 바꿔야 하는 순간도 찾아왔고 이러면 안 되지 생각하며 지키고 살았던 날들도 있었다. 그때는 그것이 최선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그 선택이 옳은 것만은 아니었다. 어떤 일들은 지나고 나야, 경험으로 당해봐야 깨달을 수 있는 게 있었다.
내가 받은 상처는 집채만큼 커다랗게 부풀었고 남이 받은 상처는 괜찮겠지 오만하게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 오만을 떨며 산 까닭에 불필요한 기억들만 머릿속에 가득 남아 나를 쥐어뜯으며 살아가고 있다.
2024년이 얼마 안 남았다.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휙휙 지나간다. 별일 없겠지, 괜찮을 거야, 생각하며 살아간 시간들이 정작 그 속을 들여다보면, 지긋지긋하던 장사를 도대체 언제쯤 그만둘까 막연하게 생각하며 숨 막혔던 그때가 현실이 되었고, 암 진단과 동시에 시아버님이랑 같이 살게 되면서 끼니를 어떻게 챙겨드려야 하고 내 몸은 어떻게 될까? 하루 종일 고민하고 무거웠던 몸과 마음이 이제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아파서 오늘내일했던 반려견을 눈물겹게 보내는 시간도 있었고, 취업이 늦어진 딸이 취업을 하고 잘 견디다 사표를 던지고 다시 백수가 되기도 했다. 금방이라도 취직이 될 것 같다가도 도대체 무엇 때문에 면접에서 낙방하는지 알 수 없는 물음표들만 가득한 시간들에, 친정엄마의 고관절이 부서져 수술해야 하는 큰 사건도 일어났다. 그때 당시는 너무나 고민스러웠던 일들이 가슴 아프게 또는 진행형으로, 또는 그럭저럭 견딜만하게 해결되며 여기까지 도달했다. 게다가 이 나라가 과연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지 모를 불안감이 공통분모처럼 우리를 공포스럽게 한다. 절망과 희망의 소용돌이 속에 하나같이 귀한 존재들임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살아가는 우리들은 절치부심하며 지켜볼 수밖에 없다.
시간이 흐르면 뭔가는 되겠지, 어떤 결론이 나겠지 했던 것들이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존재하고 나는 서서히 빠르게 늙어간다. 시간은 앞으로만 달려가니 그 시간이 아까워 나는 뭔가를 생각하고 저지르고 자꾸 나를 들볶는다.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머리를 비우며 사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살아야 바른 삶인지 늘 고민되는 이유는 가치관과 내 본능이 서로 엇갈리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결국은 돋보이고 싶고, 칭찬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가득 차 있는 욕심덩어리라는 것을 나보다 잘 나가는 친구와 비교하며 속 끓이는 나를 보고 깨닫게 되었다. 상대방은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던 내 자만이 나를 무너뜨렸다. 그 사람이 잘 될 수밖에 없는 그 이유를, 나는 못하고 그 친구는 해낼 수 있었던 분명한 핵심을 인정하기로 했다. 인정받기보다, 먼저 인정해 주자, 그리고 내 삶도, 구차한 현실도, 일단 인정하고 뭔가를 도모하는 것이 차라리 났다는 걸 조금씩 깨달았다. 내 주위에 있는 인생들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존중받아야 할 사람들이라는 것을 마음속에 새겨 넣었다.
당당하게 살아가고 싶었던 난 뭐가 되려고 했을까? 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기엔 바보 같은 변명이다. 하루 이틀 생각하고 사라질 것이 아닌 내 미래의 꿈인데 말이다. 뭔가 대단한 것이 되고 싶어 미래를 계획하고 움직였을 텐데 나는 그 핵심을 뚫지 못했다.
지금 나의 현실은 당장 화장실과 싱크대 청소도 해야 하고 춥다고 쌓아놓은 쓰레기와 재활용품들을 버려야 하고 걸어 다닐 때마다 뽀얗게 일어나는 먼지 청소도 해야 한다. 그런 것들을 해내지 않고 내 꿈을 논하기에는 어쩌면, 직무유기에 해당될지도 모르겠다. 난 첫 번째로 가족들의 위생과 허기를 책임져야 되니까. 이런 일상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실천하는 것이 그야말로 대단함이 아닐는지.
모두 잘 될 거라고 믿는다. 엄마도, 나도, 가족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