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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사색가의 인간탐구

▶ 우아한 죽음이란 없는 것일까?

by 달자

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고민은 어찌 보면 당돌하기 그지없다. 인간은 어떤 죽음도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원히 변치 않을 진리, 모든 생명은 모체의 몸을 빌어 태어나듯이 나도 엄마에게서 왔고 나 또한 새끼를 낳고 엄마가 되었다. 짐승이건 인간이건 생명이 탄생하는 순간은 보고 또 봐도 신기하고 놀랍다.

고귀한 생명을 갖기까지 그 과정이 아름다울 수도, 거칠 수도, 때론 추할 수도 있지만 내 몸에 품었던 생명의 탄생은 어떠한 이유가 되었든 모든 과정을 걷어낼 정도로 아름다운 순간이다. 존재를 알리듯 세상에 던져진 우렁찬 외침은 엄마의 품에서 강한 생명력을 전달받는다. 이렇듯 모든 생명의 탄생 또한 선택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이다.





아버님이 입원하신 병원에 갔다. 4인실 구조였다. 모두 폐렴 환자. 다른 환자들은 나 빼고 모두 간병인이 옆에 있었다. 하루종일 누군가를 지켜보는 일은 무척 지루하고 힘든 일이었다. 아파서 일어날 힘조차 없이 약의 힘으로 비몽사몽 어딘가를 헤매는 듯한 아버님의 얼굴은 당신의 병으로 아픈 것도 있지만 같이 누워있는 환자들의 신음소리와 간병하는 사람의 한숨 소리 때문에 더 고통스러웠다.

80~90대의 노인들이 엄마를 부르며 아파하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면서 처참했다. 늙은 자신의 몸뚱이를 연고도 없는 여자의 손에 맡기고 미안하다고 반복하는 목소리, 진통제를 끊임없이 요구하는 목소리, 노인의 가족에게 전화가 오면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구구절절 나열하는 간병인의 목소리는 차마 듣기가 괴로웠다. 간병인들은 병실 한편에서 주섬주섬 라면을 꺼내 끓여 먹거나 물에 밥을 말아먹는 게 일상이었다. 실로 간병인의 몸관리도 좋지 않았다. 남자 환자들의 간병인은 당연히 남자겠거니 생각했는데 여자들이었다는 것도 놀라웠다. 말랐다고 해도 결코 가볍지 않은 몸을 여자의 힘으로는 감당이 안될 텐데 계속되는 대소변 뒤치다꺼리에 간병인들은 힘이 빠져 맥없이 앉아있었다. 참으로 고달파 보였다. 생명을 보호하는 일 이전에 돈을 벌기 위함이니 그 힘듦을 내가 어찌 다 알 수 있겠는가?

자식도 마다하는 일을 돈을 주고 사람을 썼으니 죽음에 임박한 사람의 초라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위대하고 찬란하게 태어난 생명인데 죽음으로 가는 길은 왜 이리 처참할까?


인간은 죽음을 선택할 수 없다. 갈수록 늘어나는 수명이 인간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옆에서 지켜본 죽음은 고귀한 인간의 모습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동물적이다. 진통으로 몸부림치는 인간의 모습은 흡사 죽음을 앞둔 사자처럼 몸을 뒤틀고 울부짖는 모습 같았다.

자신의 몸뚱이조차 가눌 수 없어 좁은 침대에서 기저귀를 차고 누워있는 인간의 모습을 보니 수명이 긴들 무슨 소용일까? 생이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답답했다.



이렇듯 거창한 생명살이가 마지막은 공으로 남는다니 허망하다. 탄생과 죽음만이 거짓이 없는 진리라는 말에는 그 외 인간의 삶 속에는 은밀한 추함과 거짓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것을 깊이 숨기고 살아가면서 누군가는 드러내고 누군가는 짓누르고 소멸시키면서 다시 태어나고 변해가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그리고 미래의 나는 분명히 다르고 좋은 방향으로 바뀌길 갈구하며 살아간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아버님은 집을 팔아 치매에 어깨뼈 골절, 다리 수술로 온몸이 망가진 아내의 간병비로 쓰고 홀로 남은 몸 건사하고 아들에게 의탁해 살아가시지만 외로운 건 어쩔 수가 없다. 자식들은 나름 살기 바쁘고 똑같은 부모의 입장이지만 시대가 다르고 고단한 세월 탓에 우울감이 커서 대화는 자연스럽지 못하다. 게다가 나이가 있으니 온몸은 뻣뻣하고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다. 참으로 우아한 죽음이란 없는 것일까? 죽음의 때를 미리 알고 준비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빈손으로 가는 저승길은 어쩌면 영원(永遠)으로 가는 길이다. 영원으로 가는 길에 아버님이 돌아볼 당신의 인생과 남은 자식들에게 진정으로 남기고 싶은 말이 무엇일까? 이제 영원으로 돌아갈 날이 머지않았다. 죽음을 관장하는 신이 있다면 영원으로 가는 길이 너무 고통스럽지 않게 인도해 주신다면 좋겠다.


내가 돌아갈 영원은 내가 태어나기 아주 오래전처럼 고요한 공(空)의 상태라면 좋겠다. 우주를 유영하는 태초의 먼지가 되어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고 바람 따라 자유를 갈망하던 이승의 바람대로 그리되면 좋겠다.



영원으로가는길.png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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