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벽한 자유
매섭지 않은 겨울이다. 고즈넉한 저녁 산책을 거닐다 보면 싸늘한 바람이 반가울 때가 있다. 일상의 때가 묻은 내 몸의 지저분한 것들이 다 씻기는 기분이 든다. 얼굴을 차가운 공기에 들이밀고 숨을 깊게 들이마신다. 오싹하면서 차디찬 겨울바람에 날 맡기고 걷다 보면 밤하늘에 총총 별 하나가 날 따라온다. 달 옆에 나란히 떠있는 별 하나가 유독 반짝거려 한참을 쳐다보았다. 후~~ 깊은숨 하나에 내 근심 하나 내보낸다.
요즘 도토리묵 달인이 되려는지 열을 올리고 있는 남편의 말캉말캉 도토리묵을 매일 먹는다. 방금 만들어낸 따끈한 도토리묵은 양념 없이 먹어도 맛있다. 몇 분 동안 휘젓고 나면 묵이 금방 완성이 된다. 여러 번 해 본 솜씨로 얻은 남편만의 노하우로 내가 방에 한 번 들어갔다 나온 사이에 도토리묵은 벌써 그릇에 담겨 있다. 큰 냄비바닥에 달라붙은 묵 덩이를 싹싹 긁어먹는 남편을 보니 군침이 돌았다. 도토리묵은 유리그릇에 맞춰 네모나게 또는 동그랗게 담겨있다.
이제야 드는 생각이지만 남편은 밥장사를 했으면 대성공을 했을지도 모른다. 김치도 뚝딱 만들고 처음인데도 크게 실패하지 않는다. 지금 밥장사를 하기엔 이제 체력이 바닥났으니 늦기는 했지만 아쉬운 생각이 든다.
움직여야 살 것 같은 아들과 움직이면 큰일 나는 줄 아시는 아버님. 남편은 천성적으로 돌아다니기 좋아하시는 시엄니를 닮았다. 그러고 보니 요리솜씨도 시엄니 유전자인가 보다.
아버님의 독감은 결국 폐렴으로 돌변해 입원을 하셨다. 병원에서 쉬이 받아주는 데가 없어서 여러 군데 돌아다니다 찾아낸 큰 병원. 아픈 아내 수발하면서 지긋지긋하게 다녔던 병원을 아버님은 극도로 싫어하신다. 몇 주 치료받아야 될 것 같다는 의사의 말. 병원에 가길 잘했지만 병원에 가게 된 아버님의 깊은 한숨이 들리는 듯하다.
시아버님 병간호는 남편이 한다 하니 매일 아버님 식사와 간식거리를 챙겼던 시간이 막힌 구멍에서 물이 쏟아지듯 콸콸 쏟아졌다. 준비하는 시간을 따지면 얼마 안 되지만 고민하는 시간과 잘 드실까 싶은 부담감까지 합하면 꽤 많은 시간을 소비한다. 갑자기 생긴 혼자만의 시간에 해방감이 내 맘을 압도했다. 이렇게 좋아해도 되나? 아버님이 아파서 누워계시는데. 못된 며느리 같으니라고.
일단 거실 청소부터 했다. 요란한 청소기의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거슬릴까 봐 자주 할 수 없었다. 이참에 냉장고 청소도 하고 아버님 방도 꼼꼼하게 청소하려고 움직이려는 찰나, '근데 이 소중한 시간에 웬 청소?' '이런 흔치 않은 자유에 이깟 청소를 한다고?'
갑자기 청소가 하기 싫어졌다. 그럼 뭘 할까? 방마다 문을 활짝 열어놓고 돌아다니다가 책을 펼쳤다. 그런데 책 속의 글들을 눈으로 읽을 뿐 머릿속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안절부절못하다가 눈을 감고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뭔지 생각해 보았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갑자기 깨진 일상에 난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았다.
내가 움직이고 생각하는 모든 밑바닥에는 아버님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시간에 맞춰 밥을 차려드려야 하고 식사 후 몇 시간이 지나면 간식도 챙겨 드려야 했다. 그 시간이 텅 비어버리니 지금 내가 하는 행동이 일탈로 바뀐 기분이 들었다. 머리는 복잡하고 마음은 심란하고 몸은 편하다. 이런 상태로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내가 아버님의 부재에 벌써 적응하려 하나? 싶어서 세차게 도리질을 했다.
이런 자유가 무한하게 생긴 들 나에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나의 자유를 누리기 이전에 나에게 주어진 명찰. 부모, 자식, 며느리, 이들의 관계가 건강해야 내가 얻은 자유를 완벽하게 만끽할 수 있다.
내 곁에는 죽음과 가까운 친정 부모님과 시아버님이 계신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자체만으로도 가슴이 묵직해져 온다. 아버님이 정물처럼 앉아계신 의자의 스산한 공기와 무게감이 날 옥죄어오지만 자식으로서 지켜봐야 할 모습이다. 젊은이는 늙어가고 늙은이는 죽는다는 말처럼 결코 가볍지 않은 그 고통을 옆에서 보는 것도, 안 보고 그 고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든 일이다. 아버님의 입원으로 그 힘듦이 눈앞에서 잠시 사라졌다 해서 지켜보는 고통이 아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나의 뇌리에서 하루종일 아버님의 주름진 모습이 아른거렸다.
많은 일들을 겪었을 부모님은 이런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고통을 어떻게 풀어나갔을까? 하루 더 살수록 하루 고통이 늘어난다는 아버님 말씀이 떠오른다. 언젠가는 끝나는 고통이겠지만 죽음으로 그 고통이 끝나지 말았으면 좋겠다. 한순간이라도 살아있어서 진심으로 좋았다고, 인생은 살만하다고 느끼며 살다 가시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야 잠들기 전 자식들이 부모님께 전하는 사랑한다는 말, 건강하시라는 말이 그냥 가볍게 건성으로 듣는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살고 싶다는 다짐으로 가닿을 것이니 말이다. 하늘에 계신 시엄니께서 아버님의 이번 고비도 잘 넘기시도록 굽어 살펴주시면 좋겠다.
좋은 음악과 책을 접하고, 일상을 겪으면서 글이 되는 영감을 받으며 살아간다. 그 영감으로 아픈 엄마에게 진심 어린 위로를 전할 때가 있다. 그 위로를 가식이라 여기지 말고 살고 싶다는 긍정 에너지로 받아들이면 좋겠다. 그것이야말로 지금 부모님에게 가장 필요한 의지일 것이다.
아들이 만든 말랑한 도토리묵을 맛있게 드시며 환하게 웃는 소소한 일상이 아버님께 얼른 왔으면 좋겠다. 그 소중한 관계 안에서 누리는 자유야말로 완벽한 자유가 아닐까!
◸지나가는 사소한 것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마세요.
특별할 것 없는 오늘을 행복한 날로 바꿔주는 것은
우리가 집중해 주는 '작은 것'입니다.◿ - 최대호 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