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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무게

▶ 해야지 강박증

by 달자

나는 글쓰기를 위해 편안한 일상보다 차라리 고통스러운 일상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미련한 생각을 종종 할 때가 있다. 글쓰기는 다 큰 자식과의 대화만큼이나 어렵고 많이 생각하고 시간을 들여야 하는 일이다. 그만큼 마음이 편할 때보다 고통스러울 때 글 쓰고 싶은 욕구가 상승한다.


쓰인 글을 손 본다는 것은 장단점이 있지만 만족도로 볼 때 많이 손 보는 게 걸리는 것 없이 잘 읽힌다. 두서없이 나열한 글들을 보태고 버리는 과정이 어쩌면 여자들이 화장하는 과정과도 같아서 정성을 들일수록 화려하고 예뻐지지만 본연의 얼굴은 가려지게 된다. 글을 쓰다가 들러붙는 생각들을 자꾸 보태다 보면 현재의 나와 멀어져 단편소설처럼 변할 때도 있다. 생각은 무게가 나갈수록 원래의 나로 돌아오기까지 한참 걸린다.





내가 정해놓은 하루에 해야 할 일 중에 '잘해야지'와 '꼭 해야지' 하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잘해야지'중에는 가족들과의 대화가 있다. 오랜 결혼생활로 고정관념처럼 박혀버린 남편과의 뻔한 대화가 기분 나쁨으로 끝나지 않는 것, 좋은 타이밍에 아들과의 소중한 대화찬스를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 것들이다. 나의 목적을 내세우지 않고, 추궁하지 않고 아들의 현재상태와 기분을 잘 이끌어 기분 좋게, 막힘없이 대화를 이끌어가는 것이다. 서로 마주 보고 오고 가는 편안한 대화, 환한 웃음과 더불어 잘 끝내야 훗날도 기약할 수 있다. 자식과의 돈독한 관계는 노후 보장 보험만큼이나 든든하다.


'꼭 해야지' 중에는 독서와 글쓰기가 있다. 장사하다 전업주부로 되기까지 느꼈던 미천하고 추한 생각들을 정갈하게 다독여준 일들이 독서와 글쓰기다. 독서는 수다스러운 정신을 조용한 침묵의 강으로 만들어주고 글쓰기는 나의 겉도는 생각과 흐트러진 몸을 중심으로 이끌어준다.


하지만 내가 '해야지'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몸에 배고 습관이 붙어 강박적으로 다가올 때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감은 상당하다. 내가 의식적으로 늘 생각하고 기회를 엿보는 시간이 많은 탓에 몸을 움직이는 것보다 정신이 더 피폐해진다. '꼭 해야지'가 '잘해야지'로 변할 때 발동되는 인정욕구는 날 버겁게 한다.


일상에서 또는 독서하면서 영감을 얻는 글쓰기는 매일 쓰고 싶다고 해서 바로 써지는 게 아니다. 스치듯 떠오르는 글감을 메모해 두었다가 순간순간 생각나는 대로 며칠을 쓰고 고치는 작업을 반복해야 나의 글 한 편이 완성된다. 한 문장을 시작했다가도 막히는 게 글쓰기인데 나의 글쓰기가 생각처럼 잘 되지 않을 때 조급함이 몰려와 억지로 나의 생각을 끌어내려 안간힘을 쓰다 보면 진심 밖의 말이 튀어나올 때도 있다. 그러면 나의 글은 화려한 깃털로 치장한 까마귀처럼 변한다. 난 까마귀가 아니니 그런 거짓은 싫다.


이렇게 나의 일상에서 나타나는 강박증은 나를 살게 하고 일깨우는 주요한 증상이기도 하지만 나를 옭아맬 때도 있다. 해야겠다고 정한 것들이 제대로 안 되었을 때 하루를 낭비했다는 생각의 무게에 짓눌려 나를 투명한 허울에 가둔다. 그 허울을 벗겨내려면 낭비한 시간을 되돌릴 만한 만족을 얻기 위해 어딘가 무리하게 에너지를 쏟는다. 강박증이 가져오는 불안감이 나의 의지를 불러일으킨다는 믿음 때문에 편안하게 둬야 할 내 몸과 정신을 못살게 군다. 내 몸과 정신을 못살게 굴어야 시간을 제대로 썼다는 진짜 같은 착각에 빠진다.



하루를 마감하면서 느끼는 '오늘은 잘 지냈구나', '오늘은 별로네', 같은 의미 없는 평가를 이제는 그만 둬야겠다.

'꼭 해야지'가 '잘해야지'가 될 때, 잘 되라는 법은 없다. 뭐든 여유 있게 조급해하지 않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그 순간에 집중했다면, 비록 보이는 결과물이 별로일지라도 현재에 충실했으니 시간을 낭비했다는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그동안 쌓아온 생각의 무게로 현재의 내 삶을 망칠 수는 없다. 내가 해야지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이미 나의 뇌 속에 저장되어 있고 몸은 자동으로 따라가게 만들어놓았으니 하루가 걸리든 더 걸리든 조급해하지 말자. 오늘 못한 해야지가 마음에 걸려도 얼른 정신 차리고 지금 현재로 잘 돌아오면 된다. 현재가 모여서 과거가 되고 미래가 된다. 지금 이 순간이 제일 중요하다. 못했던 걸 아무리 생각해 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생각의 무게에 짓눌려 소용없는 일을 물고 늘어지는 이 습관을 고칠 방법은 항상 나 자신을 현재로 불러오는 것이다. "달자야!!"






*모든 이미지 출처는 pixabay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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