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헛소리
얼핏 스쳐 지나가는 히끄무리한 무언가, 눈인가? 자세히 보니 홀씨들이 흩날리고 있다. 베란다에서 멍하니 쳐다보고 있으려니 흡사 눈이 오는 것 같다.
설레는 봄, 화려한 봄, 따습고 더운 봄, 맑았다가 흐린 봄, 변덕스러운 봄, 재채기와 가려움이 난무하는.. 봄이라 봐준다. 봄이라 이해한다. 봄이니까. 추운 겨울에는 봄을 그리워하고 이제 무더운 여름이 기다리고 있구나 생각하니 더 먼 가을이 그리워진다. 지겨우면서 후딱 지나가는 시간이 야속하고 그래도 이렇게 시간이 흘러가니 고맙기도 한, 봄같이 변덕스러운 나를 견뎌내야 하는 속절없는 시간.
계절은 어디서 오는 건지. 시간은 어떻게 흐르는 건지. 신은 정말 있을까? 자연의 섭리는 보는 바와 같이 잘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신은 정작 보이지 않으니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없는 데 있는 것. 세상 만물이 잘 돌아가는 듯하다가도 바다와 대지가 노하거나 삐걱거릴 때 두려움을 느끼는 인간은 그때서야 신을 찾기도 한다. 어느 정도의 간절함이 필요한지 시험해 보기도 한다. 모태신앙으로 20년 동안 그리스도를 믿었던 사람으로서 신의 여부는 한순간에 깨져버렸다. 나의 의심병은 변덕스러운 봄만큼이나 들쑥날쑥이다. 그래서 관성적으로 하느님을 찾다가도 얄밉게 모른 척할 때도 많다.
신은 영원불멸하다고 공공연하게 알고 있으니 우주와 인간의 기원을 명확하게 풀어내는 과학자가 나타난다면 신의 존재도 알아낼 수 있을까? 무의식적으로 항상 내재되어 있는 궁금한 것들. 알고 싶고 사실 알려줘도 모르는 게 더 많겠지만, 모르는 게 차라리 속 편한 것들, 또는 몰라야 하는 것들. 항상 생각은 신이 존재하는 것처럼 하고 행동은 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해야 한다고 누가 그러더라.
끊임없이 팽창하는 우주와 흐르는 시간, 내가 현실에 꽉 잡혀 있는 지금이 정체되어 있지 않고, 내 피는 계속 흐르고 살아있지만 죽음을 향해 가는 내 삶이 우주와 맞먹을 정도로 신비스럽고 영원히 풀지 못할 숙제를 떠안고 사는 기분이다. 언젠가는 나의 영혼이 시공간을 초월할 날이 올 것이고 그날 우주로 날아간다면 좋겠다. 그 고독하고 광활한 빛의 세계를 온종일 돌아다니고 싶다. 얼마나 걸릴까? 천국은 가야 하는데.
우주와 인간의 탄생은 오랫동안 탐구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스터리다. 저 광대한 우주가 어떻게 바뀔지는 아무도 모르고 지구, 태양, 인간이 언제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인간이 과거의 한 획을 그었다고 역사가 말해줄지도. 이토록 놀라운 인간의 진화가 어떻게 변화될지, 아니면 사라질지 심히 궁금하다. 결국 역사는 나로 귀속된다고 했다. 그 흐르는 시간 속에 나라는 존재가 태어났으니 난 특별한 존재다. 아니 특별한 존재이고 싶다. 특별함이 간절해지는 사유의 늪에서 이렇듯 허우적대고 있다.
내가 어디서 왔건, 당장 필요한 것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하고 경쟁에서 이겨야 하고 그러려면 건강해야 하고 건강하려면 마음을 정갈하게 관리해야 한다. 누구나 죽는다는 공평함이 있지만 사회는 불합리한 것들 투성이다. 누구는 다 가지고 있고 누구는 다 빼앗기며 살고 누구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산다. 이런 불공평함을 이겨내려고 아등바등 살아가지만 숨이 차다. 신과 타협할 수도 없으니 그저 나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어쨌거나 모든 것은 지나간다. 그리고 사라진다.
특별할 것 없는 보통의 길을 걷는 이마저도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 때로는 내가 초라해 보일지라도 보통 사람 누구나 마음 저 밑바닥에는 고래만큼 커다란 꿈 하나쯤은 가지고 산다. 특별함에 도리질 치지만 사실은 특별해지고 싶고, 인생의 한 번쯤은 무대의 중심이 되고 싶은 달콤한 꿈을 꾸기도 한다. 지나고 나면 다 꿈같을 오늘 하루, 바람 따라 뿌리내릴 곳에 잘 안착하는 홀씨처럼 나도 내 자리에 사뿐히 뿌리내려 흔들림 없이 평온하고 자유롭게 살아가고프다.
꿈에 취해 헛소리가 절로 나오는 흐린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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