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정길
어린이날인지도 몰랐다. 특별한 날인데도 특별히 떠오르는 기억이 없는 걸 보니 참 재미없게 지냈나 보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기대하는 그 마음이 얼마나 컸을지, 그 동심의 세계를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아이들은 들꽃처럼 쑥쑥 자라고 변변찮은 나를 기대고 살면서 얼마만큼의 힘듦과 외로움을 견뎠을까? 그래도 사진 속의 아이들은 나를 꽉 끌어안고 활짝 웃고 있다. 하나뿐인 엄마가 어디 도망이라도 갈까 봐 그런 건지.
말랑말랑하고 귀여운 솜털 같은 아이들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그때 하지 못했던, 같이 웃고 떠들고 안아주고 많은 곳을 여행 다니면서, 그렇게 살았으면 좋았을걸. 지금은 억만금이 있어도 돌아갈 수 없다.
어린이날은 그렇게 지나갔고 어버이날이다. 나는 친정으로 향했다.
기분이 좋았다 흐렸다 늘 반복인 힘든 시간을 보내는 엄마의 등이 볼 때마다 휘어있다. 그래도 아이 같은 미소. 나도 방긋 웃었다.
어린 시절 많이도 방황하고 들쑤시고 다녔던, 지금은 완전히 변한 동네를 딸의 손을 잡고 한 바퀴 휘 둘러보았다. 나의 들뜬 모습이 신기한지 딸도 마냥 신났다. 잡은 손에 엄마의 손이 더 보태지면 좋으련만, 엄마는 꼼짝도 못 하는 신세다. 햇살 좋은 이런 날, 부모님과 천천히, 평온하게 걸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온 천지가 초록색으로 한 가득이다. 초록색은 한 가지도 아니고 여러 가지 다양한 빛깔의 초록색으로 물들었다. 자연이 빚어낸 색깔을 황홀하게 감상하며 머리를 비우고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바람이나 불어야 살랑살랑 움직이는 풀무리들의 오밀조밀 생명체들의 속을 마구 파보고 싶다. 판타지영화처럼 땅 속의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는 상상을 해보았다. 그 속으로 들어가면 다양한 빛깔이 어떻게 생성되는지 어떻게 향기를 만들어내는지 알 수 있을까? 흐흐. 이제는 조그만 벌레만 봐도 기겁하는 애어른이 돼버렸다.
두꺼운 나무 둥치 틈으로 싹을 틔운 초록색의 여린 잎들이 막 태어난 아기 같다.
집을 나설 때는 엄마의 입맛을 살리기 위한 미션을 잘 해내야지 했는데 막상 친정 문을 들어서는 순간 긴장이 탁 풀려서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마음은 엄마를 위한 음식을 만들어보자고 해놓고 몸은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다.
소파에 누워 뒹굴거리면서 주인의 몸 여기저기 치대는 고양이처럼 엄마 옆에서 어리광을 부렸다.
뼈밖에 안 잡히는 엄마의 여린 몸을 꽉 껴안고 냄새를 맡고 기대어 있는 나는 옛날의 철없는 어린 아이다.
사실 나는 딸이 팔짱을 끼거나 어깨동무할 때 무척 힘들다. 팔이 무겁기도 하고 거추장스럽기 때문이다. 서로 온기를 나누는 정이야말로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지만 젊은 피의 에너지를 감당하기엔 뼈마디의 고통이 더 크다.
울 엄마도 그럴 텐데.
어쨌거나 엄마 앞에서는 나도 아이다. 이런 나를 바라보는 딸의 마음과 손녀딸을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은 하나의 피로 이어져있다. 나도 이런 순간이 머지않았다.
어른이 되고 누군가의 아내가 되고 부모가 돼 보니 가족이라는 공동운명체 속에서도 배반, 오해, 분노, 증오심이 생긴다. 그 울타리를 내가 박차고 나왔다면 지금쯤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내가 참고 살았다면 상대방 또한 참고 살았으며 내가 부모로서 부족하다고 해서 자식들이 부모를 외면하지는 않는다. 아주 작은 사랑일지라도, 사랑을 받고 사랑으로 키워졌기 때문에 그 사랑은 어디로 증발하지 않는다. 자연이 선사한 초록색이 한 가지의 초록색이 아닌 것처럼 사랑도 여러 가지의 사랑이 있다. 여러 가지의 사랑 중에 어느 것 한 가지라도 마음에 품고 있다면 옛날에 미워했던 감정도 아주 조금씩 누그러질 수 있고, 속에서 일어나는 불편함도 가지치기하듯 마인드 컨트롤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시간이 흐르고 나쁜 감정이 좋은 감정의 흐름으로 전환된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가끔씩 튀어나오려는 마음의 분노가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지만 분노를 표출한 마음과 따뜻함을 표출한 마음의 자리는 내가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정확히 알려준다. 분노는 허상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 못해줬던 죄책감에 시달려 마음을 쓰느니 지금이라도 부모로서, 어른으로서 내 마음을 진실되게 전달하면 자식들은 비딱하게 가다가도 되돌아올 것이다. 난 그렇게 믿는다.
너무나 예쁜 솜털 같은 아이들을 완전한 사랑으로 감싸주지 못한, 그것이 가장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래서 손주들에 대한 조부모님의 사랑이 지극한 건지도 모르겠다.
모든 부모님들과 어린이들이 건강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