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뾰족하게 때로는 둥글게.
아카시아 향기가 코를 찌른다. 흙냄새가 섞인 꽃향기로 아침을 맞았다. 방에 널린, 눈에 보이지 않던, 쓰윽 닦아내니 보이는 노란 송진가루가 올해도 여전히 온 천지를 소리 없이 뒤덮었다.
봄바람이 찰랑거릴 때 나뭇잎 부딪히는 소리가 내 귀를 간지럽힌다. 호로록 이름 모를 새소리, 어딘가에서 들리는 닭울음소리, 당당하게 때로는 날렵하게 걸어가는 길고양이들. 날씨가 온화해지니 길고양이들이 사는 게 좀 났겠구나, 곧 장마가 올 텐데, 그때는 어찌할꼬. 이런저런 걱정들이 스쳐간다.
다들 어떻게든 생명을 유지하며 잘 살아간다. 그 내면으로 들어가면 시끄럽겠지만, 인간들처럼.
딸과 걷던 산책길을, 마음이 바뀌어 버스를 잡아탔다.
버스기사는 난데없이 막 앉은 우리에게 음료수를 가지고 타면 안 된다고 성질을 냈다. 우리는 순간 동상처럼 정지상태가 되었다. 음료수는 다 먹고 버릴 데가 없어서 가지고 탄 거였는데 기사는 다짜고짜 화를 냈다. 게다가 하차를 강요하는 눈치였다. 순간 난 조심하겠다고 대답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기사는 다음부터는 그리 하지 말라고 일침한 후, 우리에게 한참 동안 매서운 시선을 꽂았다. 음료수를 가지고 버스를 탈 시 바닥에 흘릴지도 모르는 상황을 염려한 것이라는 걸 잘 알지만 그 말투가 문제였다. 화가 난 말투, 상대방을 제압하려는 그 말투는 늘 나를 기어들게 한다.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또렷하게 사정을 말하지 못한 내가, 버스기사의 난폭한 말투를 지적하지 못한 내가 못나보여서 울적했다. 동시에 딸마저 씩씩대고 있는 통에 버스 안에 있는 동안 가시방석이었다.
늘 잔소리하는 엄마에 기가 죽었던 나는 상대방의 말투에 예민하다. 어릴 때부터 자라난 그 더듬이는 나를 굴욕적이고 당당하지 못한 어른으로 자라게 만들었다.
성인이 되고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상대방의 말투에 거칠게 항의한 적도 있지만 그런 내가 또 너무 싫어져 하루 종일 자책감에 시달렸다. 내 마음속의 말들을 다 쏟아내도 그리 시원치 않았다. 적당하게 내 성질을 다독이며 논리적으로 상대방을 누그러뜨리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탓이다.
그렇게 자랐던 탓에 화가 폭발하면 어느 순간 나도 나를 컨트롤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때도 간혹 있다.
참을성을 기본값으로 갖고 성장한 나는 뭐든 참는데 도가 텄다. 참는다는 것이 때론 좋은 결과를 낳을 때도 있지만 안 좋을 때가 더 많다. 특히 아플 때나 나의 잘못이 아닐 때 끝까지 항의해야 함에도, 그래야 내가 살아갈 수 있음에도 난 그러지 못한 적이 있다. 그런 내 모습을 딸이 닮을까 봐 마음이 쓰인다. 부모의 말투에 자식들의 기분도 오락가락한다는 걸 난 너무나 잘 안다. 아이들에게 자라는 환경이, 부모의 본보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두 말도 필요 없다.
하필 그날 버스기사가 기분이 나빠 마침 우리의 음료수가 화를 돋웠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내가 버스기사의 심적상태까지는 알 수 없으나 내가 똑같은 말투로 대꾸해 본들 뭐가 득이 될까?
하지만 난 하루 종일 기분이 나빴고 그 말투가 머리에서 맴돌아 잠을 설치기까지 했다. 누군가에게 당한 부당한 대우가 내 마음을 침범할 때 내가 어떻게 처신해야 옳은지는 경험상 살아온 정도에서 답을 찾을 수 있지만 그날 있었던 기분 나빴던 일들을 훌훌 털어버리는 (사실 지나고 나면 별 일도 아닌 일이다) 것도 앞으로 살아가면서 무수히 해내야 할 마음가짐이다. 내 옆을 어쩌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과 일어나는 일들을 매번 뾰족하게 반응하고 옳고 그름을 따지며 산다는 것은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고 피곤한 일이다.
누군가에게 이건 이래야 되고 저건 잘못된 것이라고 나의 잣대를 들이대는 일이 갈수록 잦아진다. 상대방의 표정이나 말투에 민감해져 나도 똑같이 상대해야 지지 않는다는 마음이 갈수록 커져간다. 지나고 생각하면 정해진 답은 없는 것인데, 나이 들수록 눈에 거슬리는 행동과 대화 속에 드러나는 말투가 자꾸 마음에 걸려들어 상처를 낸다. 그 모든 상처를 다 건드려대니 사는 게 고달파진다.
4월의 꽃, 영산홍이 고개를 떨구더니 다 시들었다. 빽빽했던 꽃송이들이 흙 속의 거름으로 숨어들었다. 영원할 것 같았던 시간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늘 그 자리를 지키고 때가 되면 화려한 꽃봉오리를 피우고 지는 이 꽃무리는 짙푸른 초록으로 여름을 날것이다.
간혹 여름이 다 가도록 다시 피어나는, 무리 중 하나는 꼭 있더라만... 흐흑, 철없이. 홀로 돋보이고 싶은 걸까?
[모든 것은 지나간다. 그 사실을 기억하며 걸을 때, 안간힘을 다해 움켜쥐어온 모든 게 기어이 사라지리란 걸 알면서 걸을 때].. (한강의 '흰' 中 인용)
모든 것은 지나간다.
나는 하루 종일 필요한 말, 또는 누군가 말을 걸어주지 않는 이상 말을 하지 않는다. 말이 유용하게 잘 전달되지 않는 경우도 있고 가끔 왜 그런 말을 했지? 싶을 때도 많아서 의식적으로, 말하기 전 참아보기도 한다.
늘 내가 한 말 때문에 의가 상하고 누군가의 말 때문에 미워지고 기분이 나빠지는 경우가 많아서 이제는 입조심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을 해서 후회하는 경우가 난 종종 있고 그 후회가 오랫동안 날 괴롭히기도 한다.
나이 들수록 '침묵은 금이다'라는 말이 마음을 짓누를 정도로 묵직하게 다가온다.
그 후회의 말들과 행동들이 모여서 내 머릿속을 어지럽힐 때 그 시간은 나로부터 멀어지는 시간이다. 되돌아갈 수 없는 그 장소와 그 시간 속을 왜 그렇게 헤매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나이 들수록 조용하고 나직하게 말과 행동을 조심스럽게 드러내야 더 설득력이 있다. 매사 뾰족하게 때로는 둥글게 대응하는 변덕스러운 나를 잘 관리해야 마음의 고요를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