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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진심이었다.

▶ 잠시 머물던 방

by 달자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은 온라인 공간에서도 맞을 때가 있다.

그곳에서는 세명만 모여도 커뮤니티가 형성된다. 자세한 프로필도 모르면서 금세 정이 든다. 서로 모르기 때문에 괴로운 심정까지도 서슴없이 토해낼 수 있다. 그것에 대한 진심 어린 답글은 굉장한 위로가 된다.


이 세상은 힘들지 않은 자 없이 골고루 고통당하며 살아간다. 그 고통의 무게가 좀 다를 뿐.


나를 모르는 공간에 내가 겪은 일들, 걱정, 일상들을 풀어놓고 서로 공유하면서 위로하고 위로받는 온라인대화방은 친구모임 못지않게 굉장한 유대관계가 형성된다.


나 또한 예기치 않은 일을 당하면서 우연찮게 알게 된 곳에 하루의 몇 할을 소비할 만큼 꼭 들르는 온라인 대화방이 있었다.

그곳에 내 힘듦을 표현하면서 아주 조금씩 내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모두들 나의 사연에 깊이 공감하면서 짧게 또는 길게 위로의 글을 남겼다. 그때의 심정은 눈물이 쏟아질 만큼 큰 위로가 되었다.


나도 위로를 받았으니 당연지사 나 또한 위로하는 일도 많아졌다. 그러면서 이 세상에는 고통의 굴레에서 허덕이는 사람이 무척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글 속의 세상에는 별의별 인간들, 알 수 없는 희한한 일들, 불치병, 끊이지 않는 불행들이 차고 넘쳤다. 넘쳐나는 사연들 속에 나의 불행은 불행의 축에 낄 수조차 없었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 나는 위로를 받기보다 위로의 글을 남기는 일이 많아졌다. 어떤 한 사람을 향했다기보다 사연에 끌려 위로의 글을 남기기도 하다 보니 댓글을 남기고 누구였더라? 할 때도 있었다.


하루의 인사를 파이팅, 힘내라, 좋은 일이 있기를 바라는 염원으로 시작한다. 그때는 정말 그런 인사가 나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실된 언어였다. 그 언어에 상대방은 힘을 내고 깊은 고마움의 인사를 남긴다.



그것이 몇 달, 몇 년이 지나고 나니 습관이 되었다. 더 마음깊이 위로가 되는 말은 없을까? 찾아보게 되고 그 위로가 잘 전달이 됐는지 확인하게 된다. 고맙다는 말을 확인한 후에야 내 마음이 안정되었다.


처음에는 진심이었던 말들이 시간이 흐르고 나면 진심의 농도가 얕아지는 걸까? 아니면 상대방을 보지 않아도 마치 사람을 알아보는 듯 어떤 기류가 흘러서 이 사람의 진심이 예전처럼 마음 깊이 와닿지 않는 느낌의 촉을 받는 걸까? 난 가끔 글 속에도 그 사람의 성향, 그 사람의 진심 혹은 거짓을 느낄 수 있는 감별의 촉이, 읽는 이에게도 전해지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본다. 내가 전한 위로의 말이 정말 진심인지 아니면 위로를 하면서 착한 척하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위로하면서 내 처지가 더 나음을 확인하는 교활한 위로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를.


그곳에서 흐르는 온기를 느끼며 하루를 시작하고 몇 번씩 들락날락하면서 위로의 말들을 전하고 기운을 북돋는 일과가 나에게는 삶의 활력소였었다.


하지만 그곳의 사람이 늘어나고 닉네임에 익숙해지니 무리가 나눠지고 비교와 비판이 난무하게 되자 슬슬 떠나는 사람이 생기게 되었다.


몇 년간 참으로 가족처럼 다정하게 지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니 마음이 울적했다.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고 헤어졌지만 그 아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과 나누었던 그 시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려오지만 개인적으로 연락하는 건 선뜻 나서지 질 않았다. 내가 이상한 걸까?


내가 느꼈던 감정은 그곳에서만 느끼는 고유한 감정인 것처럼 개인적인 문자에서는 도통 느낄 수가 없었다. 그 감정은 온전히 나의 감정이 아니었던 걸까? 이런 이상한 감정을 곰곰 생각해 봤다.


아마도 나는 그곳에서 공동체의식을 느꼈었나 보다. 그 공동체 속의 나여야만 그 감정이 생기는 현상. 온라인 공간에서는 철저히 혼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속에는 개인이 아닌 여러 사람 속의 나, 무리 속에 섞여 가끔씩 선택되는 나의 글에 위로받았다는 반응이 좋았고 모두 같은 마음으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잠시나마 마음의 온기를 나눠갖는 훈훈함이 감도는 분위기, 나는 그것에 중독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니 결국 나는 진심 어린 위로라는 포장 속에 나의 외로움을 달래고 있었던 것이었다.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닌 것 같은 느낌에 빠졌던 것이다.


그 위로가 순수 100% 진심이 아니라는 말은 아니다. 난 분명 진심이었고 지금도 잘 살아가기를 마음 깊이 염원한다. 비록 난 그 온라인방에서 떨어져 나왔고 그곳 몇몇은 따로 만나기도 한다지만 난 한창때 주고받던 그 감정은 되살아나지 않는다. 오히려 개인적인 만남으로 인해 그 감정이 산산이 조각날까 두렵기까지 하다.

그 아련한 감정은 그냥 그것인 채로 남겨두고 싶다. 비록 지금은 멀어졌지만 아직 내 마음에는 그대로 남아있어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누군가는 추억으로 남기기엔 아직까지도 고통이 진행형인 사람도 많아 마음이 시큰거려 미안해진다.



사람 마음은 변하기 마련이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아닌 것이 아니라 그때 느낀 감정은 어떤 기류와 온기가 적당하게 맞았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만약 다시 처음에 만난 사람들과 새로운 온라인방에서 재회한다면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곳에서 만난 이들은 모두 크나큰 아픔과 고통을 억지로 씹어 삼키며 사는 사람들이었으니.

당하고 있는 고통을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다면 비록 가식적인 위로일지라도 충분히 고마운 말들이었다. 과거의 고통이건 진행형의 고통이건 고통스러운 삶이라는 공감대가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었으므로.


어쨌든 내가 그때의 그 감정을 잃기 싫어 더 이상의 만남을 추구하지 않는 것은 내 진심이 변해서가 아니다. 난 여전히 나이면서 나이기를 거부하는 소심한 사람이지만 매사 진심에 다가가려고 노력 중이다. 자신이 하는 말과 글이 전부 진심인 사람, 게다가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을 난 진심으로 존경한다.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그 감정이 글을 쓰는 동안 마음에 물밀듯이 가득 밀려왔다. 그 온라인 대화방에서만 빛을 발하는 나의 감정은 그곳을 벗어난 다른 곳에서는 왜 느낄 수 없는지, 그곳 사람들이 보고 싶으면서 보고 싶지 않은 이 감정을, 난 더 이상 설명할 수가 없다.



*모든 이미지는 pixabay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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