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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할 수 없는 일

▶ 간병인의 수고가 와닿지 않는다.

by 달자

태양이 양산을 뚫고 온몸을 뜨겁게 했다. 머리는 뜨겁고 마음은 아프다.


엄마가 고관절 수술을 했다. 왼쪽을 얼마 전에 수술하고 겨우겨우 걸어 다니셨는데 이번엔 반대쪽을 수술했다. 뼈가 얼마나 부실하면 살짝 넘어져도 다 부서질까?


병원의 중앙문을 열고 엘리베이터를 거쳐 엄마가 누운 병실로 들어가기 1초 전, 나는 말할 수 없이 심난했다. 어떻게 엄마의 얼굴을 볼까?

입을 꾹 닫고 고집스럽게 굳어있는 엄마의 얼굴을 보니 눈물이 질금 나왔다. 조심하지, 어쩌다가....

마취 때문에 비몽사몽인 엄마는 여기가 어딘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어떤 상황인지 도통 모르겠는 표정이었다.

또다시 20여 일간 꼼짝없이 간병인의 손에 자신의 몸을 맡겨야 한다.


간병인 특유의 드센 억양, 부드러운 목소리는 들어볼 수 없고 자신이 이 병실의 대장인양 목소리가 우렁찼다. 간호사들도 꼼짝 못 하는 그 간병인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르는 게 없었다.

엄마를 포함해 예닐곱의 할머니 환자들 중 네 명이 치매환자였다. 치매에 고관절 수술까지 그 다양한 모습과 행동에 쓴웃음이 나왔다. 여인의 일생이 왜 이다지도 안타깝고 추하게 되는 걸까?


엄마의 하루 일과는 삼시세끼 밥 먹는 동안 잠시 앉아있다가 누워 있는 일이 전부다. 누워있다가 앉고 싶어도 간병인을 부를 수가 없다. 간병인은 정해진 시간에 기저귀 갈고 환자의 검사 일정에 맞춰 오르내리는 일과 그 외의 시간은 누워있거나 핸드폰 삼매경에 빠져있다.

세심하게 환자를 돌봐달라고 요청하는 건 너무 큰 기대일까? 아무 감정 없이 자신이 정한 시간과 규칙대로 환자를 보는 게 간병인의 수칙인 것처럼 느껴졌다. 환자들의 괴로움을 다 들어주는 수고는 절대 감당하지 않겠다는 표정이다.


답답하면 소리 질러야 겨우 다가온다. 대변을 봤거나 토했을 경우에는 무겁고 답답한 마음으로 애타게 간병인을 찾아야 한다. 남의 손에 내 몸을 맡긴다는 것, 그것을 감당해야 하는 본인과 그 모습을 가족의 입장에서 볼 때의 그 안타까운 마음이 목까지 차올랐다. 돌덩이 같은 묵직함이 가슴을 타고 올라와 눈물로 맺혔다.


옛날, 간병인 제도가 없었을 때는 어떻게 환자를 봤을까? 부모님이 아프면 자식이 돌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간병인제도가 활성화되었고 이제는 간병인 없이는 여생을 살아낼 수 없게 되었다.


우후죽순 늘어나는 요양원에 부모님을 모시고 가끔 찾아가 보는 것, 백세시대가 가져온 불편한 현실이다.

아무리 고가의 일대일 간병인이 있어도 외로움과 그리움은 돈으로 해결할 수 없다.

부모다운 모습으로 이승을 떠나는 것도 진정 축복이다.


엄마는 내가 옆에 있는 동안 아쉬움과 불편함으로 몸 둘 바 몰라했다. 좁은 병실에는 앉아있을 곳도 마땅치 않아 누가 와도 편히 얘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가족이 보고파도 오라 가라 할 수 없고 막상 가면 불편해하셨다.


지루한 하루가 짓누르고 밧줄로 묶인 듯한 뻣뻣한 몸에 옆에 누운 할머니의 알 수 없는 중얼거림과 간병인이 환자를 대하는 존대와 반말이 섞인 막된 소리, 찾을 수 없는 혈관을 찾느라 애먹는 간호사, 그로 인해 시퍼렇게 멍든 엄마의 팔, 목욕도 못하고 땀으로 범벅된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자식으로서 마음이 실로 복잡했다. 무거운 엄마를 내 힘으로 일으킬 수도 없고 아기처럼 다룰 수도 없다.


주기적으로 기저귀 가는 간병인의 손길은 너무나 거칠었지만 나는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무거운 엄마의 몸을 들 수도 없거니와 요령이 없어 오히려 엄마를 더 힘들게 했다.

기저귀를 잠시 열어두고 싶었지만 엄마는 손을 내저었다. 남에게 피해를 주기 싫고 자식에게 당신의 초라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하셨다. 그 마음 또한 백번 이해되었다. 엄마는 아직 자식에게 보여줄 수도, 말할 수도 없는 선이 있다.


아, 노년의 현실은 그렇다. 아무리 조심한다 해도 나에게 닥치는 불행은 막을 수 없고 당당하게 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무력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부모님과 자식과 간병인, 그 삼각구도 속에 나는 떳떳하게 하고 싶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행여 엄마에게 피해 갈까 두려웠고 아픈 엄마에게 잘 지내시라는 말도 왠지 이 상황에 맞지 않는 위로 같아서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갈수록 간병인의 목소리는 커지니 간호사보다 더 가까운 간병인에게 잘해야 하는 현실이 당연하면서 부당하게 느껴졌다. 왜 그렇게 거칠게 환자를 대하느냐고 따지는 게 내가 할 일을 그들에게 미루는 것 같기도 하고 역지사지로 내가 간병인 입장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마음이 들어서 무척 혼란스러웠다.


아프지 말라고 그렇게 문자를 보내고 다짐을 받았건만 하루가 멀다 하고 아프고 다치고 쓰러지는 엄마의 노년은 곧 나의 미래일 지도 모른다.




엄마의 식사를 봐주고 옆에서 말동무가 되어준 몇 시간이 내가 자식으로서 한 전부다. 일은 고작 그것뿐인데 하루가 금방 지나갔다. 부모님과 시간을 나누는 시간이 즐거웠으면 좋으련만 아픔을 공감하고 돌봐준다는 것은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그만큼 감정노동이 힘들다.


간병은 감정과 육체노동을 같이 하는 것이니 오죽 힘들까? 환자 중에는 더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을 텐데 똑같은 감정으로 똑같이 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요동치는 마음을 다스리면서 아픈 사람을 돌본다는 것은 많은 인내심이 필요하다.


마음은 온전히 엄마 옆에서 돌보고 싶은데 그럴 수 없으니 아쉬운 데로 인사하고 나왔다. 엄마의 그늘진 표정이 내 발목을 잡았지만 엄마는 얼른 가라고 하신다. 엄마는 네 번이나 뼈수술을 하셨으니 병원생활의 노하우가 있을 것이다. 난 그렇게 합리화하며 엄마를 뒤로하고 병실에서 나왔다.

다음에 올 때는 어떤 변화가 있으려나. 퇴원하면 시원하게 걸을 수 있을까? 내가 해야 할 일을 다 내팽개치고 엄마에게 달려갈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될까?


하늘이 주는 풍경에 잠시 마음을 삭혀본다. © Dal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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