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피값을 빼앗겼다.
나는 짬짬이 앱 포인트를 수집한다. 커피값을 채우려면 하루를 넘기기 전에 부지런히 벌어야 한다. 그래서 하루의 맨 끝자락 잠들기 전에 힐링영상을 보며 머리도 식힐 겸 눈동자는 멍하니 영상을 따라간다. 그러면 어느새 긴장도 풀리고 내 입꼬리가 올라가 있다. 이 모습을 누군가 보고 있다면 '너도 웃을 때가 다 있구나' 싶을 정도로 깊이 빠져있다. 난 그 모습을 들킬까 봐 가끔 입을 앙 다물고 보기도 한다.
포인트를 모으다 보면 깨알 같은 고민의 순간이 온다. 밸런스게임이다.
1) 데이트 상대를 고른다면 / 키 250cm 남자 vs 키 140cm 남자
한참을 고민했다. 상상을 해봤다. 처음에는 140을 선택했다. 30초 뒤 250으로 바꿨다. 아무래도 선입견을 이길 수 없다.
2) 결혼상대를 고른다면 / 연상 10살 vs 연하 10살
요번에는 바로 연하를 선택했다. 그러나 30초 뒤 연상 10살로 바꿨다.
바꾼 이유가 복잡해서 딱히 한 마디로 정리하기 어렵다.
3) 직장상사를 고른다면 /
정 많고 일 못하는 상사 vs 잔소리가 심한 일 잘하는 상사
나의 직장생활을 소환해 봤다.
잔소리를 넘어 인격모독까지 하는 상사가 있었다. 목소리는 어찌나 큰지 그 사람 앞에서는 항상 경직이 된다. 그렇게 일해서 어따 써먹냐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그. 그가 직원들에게 뱉는 소리는 내 귓바퀴를 하루 종일 맴돌며 퇴근 후 집에 까지 따라왔다.
나는 정 많은 상사를 골랐다. 손이 저절로 향했다. 어떤 것이 더 많은 표를 얻었을지 궁금하다.
그때의 나는 젊었고 인정욕구도 강했고, 일을 잘 해내고 싶은 열정으로 가득 찼던 시기였다. 하지만 상사의 독설에 맞받아칠 용기는 없었다. 오히려 나의 쓸모없음이 느껴져 마치 내 잘못도 아닌데 바닥으로 기어들어갔다.
어른들의 체벌과 언어폭력, 이런 부당한 것들은 여린 가슴에 지워지지 않을 상처로 남아 수시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돌아다닌다. 나는 중3 체육선생님에게 따귀 맞은 일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의 눈빛, 맞고 난 후 느꼈던 수치스러운 모멸감이 어제 일처럼 또렷하다. 그 기억에 빠질 때의 나는 그때의 중학생이 된다.
옆에서 잔소리를 해대는 사람이 있다면 듣기 싫어서라도 더 잘해야겠다는 동기유발이 되기도 한다.
동기유발을 시키려고 잔소리하는 상사였다면 좋았겠지만 자신의 분노를 해소하기 위해 갈굼질 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것 또한 인간의 속성이라고, 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다른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내가 가끔씩 자식들에게 답답함이 느껴질 때 솟구치는 감정과 비슷하지 않을까?
육아하면서 느끼는 분노, 참아야 할 때 참지 못하는 격한 감정을 해소하지 못해 쌓여서 어느 순간 아이게게 분출하듯이 퍼붓다가 나중에 느끼는 미안함, 그런 것들. 그런 마음은 누구나 조금씩은 가지고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느끼는 미안함, 창피함, 굴욕감, 죄책감, 서운함 그 모든 감정을 모아놓은 것이 인간이다. 그 속을 감추며 사는 사람도 있고 감추지 못해 발광하는 사람도 있다. 감추거나 발광하거나 둘 중 어느 게 더 이로울까?
웃자고 한 밸런스게임을 난 또 다큐로 받아들였다. (⊙ˍ⊙)
언제 왔는지 딸내미가 옆에 있다. 얼굴을 들이대고 묘한 미소를 짓는 걸 보니 커피값이 필요한가 보다. 이직준비하는 동안 적금과 퇴직금을 다 날린 참으로 대책 없고 웬수 같은... 그래서 오늘도..
커피값을 빼앗겼다. 그것도 두 잔이나. 난 참, 바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