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이 아는 것들을 미리 아는 방법 ; 사주명리학 물상론
동네 호프집 사장님은 좋은 사람이다. 남편이 형님이라고 부른다. 남편과는 10살 차이 나는대도 둘은 죽마고우다. 남편의 어린 부분을 귀여워해주는 분이다. 물론 남편뿐 아니라 동네 남자들은 사장님을 좋아한다. 동네 호프집인데도 늘 바쁘다. 안주도 맛있지만, 시킨 음식보다 서비스 안주가 더 많기로 유명하다. 단골손님 취향은 다 알고 있어서 맞춤으로 나온다.
남편이 중성지방 때문에 다이어트를 한참 할 때, 술을 끊을 수는 없어서 안주를 끊었다. 닭가슴살을 들고 술집에 갔다. 그러면 배추와 고추, 당근 등을 썰어서 내어 주었다. 아들과 나는 복숭아와 자두를 좋아하고, 수박은 먹어도 한 조각만 먹는다. 남편은 너무 좋아하는대도 혼자 먹어야 하니 사질 못한다고 했다. 가면 수박을 잔뜩 썰어서 남편 앞으로 갖다 놓는다. "너 좋아한다고 사놨다!"
남편이 오면 자동으로 맥주잔을 하나 들고 남편 옆으로 앉는다. 둘은 옆에 앉아도 마주 보고 이야기를 한다. 재밌는 이야기와 진지한 이야기, 일상 이야기와 사업이야기, 현실과 이상에 대한 이야기가 오간다. 가장 솔직한 남편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다. 남편의 형님이 귀여워 팔을 크게 올려 남편의 어깨를 감싸면 남편은 강아지처럼 기분 좋은 표정을 짓고, 둘은 술잔을 부딪힌다.
가끔은 남편에게 형님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남편은 자신의 감정에 게으르다. '올바른'것과 '좋은'것은 다른데, 자신에게 좋은 것을 알아채지 못한다. 그래서 공황장애를 의심받을 만한 신체 신호가 있었다. 그 이후로 많이 걱정했다. 강하면 부러지는 법이다. 불현듯, 결혼 전에 남편과 궁합 봤던 게 생각났다. 남편에게 절대 잔소리도 하지 말고, 화내지도 말고, 늘 남편이 더 착하다는 생각을 하며 살라고 했었다. 그 말을 한 시간에 한 번씩 떠올렸다. 목소리에 신경 썼다. 잔소리도 10번은 족히 말할걸 안 하거나 폭발 직전에 어금니 꽉 깨물고 한 번으로 줄였다. 생각보다 참을만했다. 습관이 되니 '버럭' 소리를 지르는 것도 안 하게 되었다. 가끔 양심이라는 게 없을 때도 있는데, 아주 사소한 것들 뿐이다. 이 호프집을 오면 몰랐던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상상하지도 못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귀찮은 내색을 하지 않아서 몰랐다고 하니, '나도 사람인데, 어떻게 다 괜찮겠어?' 말했다. '그러네. 우리 남편도 사람이었지.',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워낙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큰 요동이 없을 것 같았나 보다.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게으른 남편의 감정 걱정이 사라졌다.
호프집 형님이 좋은 이유는 또 있다. 매번 남편 앞에서, 나에게 '동생 거두어 줘서 고맙다.'라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뿌듯해하는 남편 표정이 좋다. 나를 치켜세우면서 동시에 남편을 위하는 말이다. 그런 말에 겸손하게 대답해야 하는데, 술자리다 보니 개그 욕심이 난다. '제가 사리가 나왔습니다.'라든지, '부인으로 야무지고 올바른데, 제 성격 센 것 정도는 귀엽게 봐줘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아주 '상관'스럽게 말한다. 그러면 형님은 1초 고민도 없이 술잔을 위로 올린다. '옳소! 건배!'
어른들은 배우지 않아도 저절로 아는 것들이 있나 보다. 특히 사람을 많이 만나는 사람들은 눈빛과 분위기를 읽는다. 우리 남편 눈은 사납기도 하지만 빛이 난다. 눈만 보면 늑대 같기도 하다. 눈도 쌍꺼풀 없이 큰데, 흥분하면 사백안이 된다. 그것 때문에 웃고, 그것 때문에 화가 난다. 얼굴에 광도 난다. 피부의 재질이 좋거나 밝은 편은 아닌데, 이마와 코가 빛을 머금으면 무거운 사기 밥그릇 같아 보인다. 그리고 자신감과 우울함이 함께 있다. 내 얼굴은 '아는 다른 누구를 닮았다'는 소리 많이 듣는 흔한 얼굴이다. 화장기 없이 이목구비가 또렷하지 않은데도 나를 '착한 줄 알았는데'라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만날 때마다 알게 된다고 했다. '보통내기가 아니구나.', 이런 말이 내게 주는 영향은 있을까? '맞다' 인정해 버리고 다음이야기로 넘어간다. 맞다, 대답은 꼭 하는 편이다.
사주 명리학은 내가 나를 아는 일이기도 하다. 뭔가 안다는 것은 장점이 많다. 예전에는 여성스럽지 않은 내 모습이 싫었다. 남편이 말하는 '사회적으로 올바른'에 부적합한 모습이 많다. 이면을 들여다보면, 활용 가능한 장점을 찾을 수 있다.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인문학의 방향으로 해나갈 수 있다. 사주명리학을 공부하면서 물상론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인생은 세상의 비유다. 세상을 닮은 생명체는 계절이 있고, 다시 또 세상으로 돌아간다. 어디를 가는 것인가? 세상으로 다시 돌아갈 때, 그대로 묻힐 것인가, 재활용될 것인가 고민해 보는 것이다. 정해진 대로 '이용'해서 가는 방법도 있고, '극복'하는 방법도 있다. 어른이 돼야 알게 되는 것들을 미리 알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특별한 공부를 하는 일은 내게 한 계절 앞서 적절하게 옷장 정리를 하고, 이불을 마련하는 일이다. 학기 시작 전에 미리 선행학습하고 가는 일이다. 내비게이션을 켜놓고 길을 찾는 일이다. 태어난 모습이 강하고 이기적일지라도 정도를 지키고, 속도를 지키면 된다. 남들보다 앞서지 않으려고 노력하기만 하면 된다. 긍정적으로 보면, 따라가기 위해 나를 쥐어짜는 것보다 그나마 쉽다. 현실적으로 보면, 그게 더 어려울 수 있을 수 있지만 말이다. 기획하고 계획하며, 안심하고 현재를 살 수 있게 해 준다.
현장에서 전문가의 사주를 보려고 마음먹었는데, '해석하고 싶은 마음'을 남겨 두기로 했다. 원하는 대로 해석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게 내 진짜 인생이기 때문이다. 공부하는 동안 행복했고, 앞으로도 생각날 때마다 조금씩 찾아볼 것이다. 그렇지만 평생 하고 싶은 일은 아니었기 때문에 '잠시 멈춤'이라는 버튼을 누르고, 선명한 곳을 향하기로 했다. 여름의 시작점에서 부단히 위로받았던 시간이었다.
che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