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오마주 오리지널. 창작 소설
"쉽게 생각해 보면 알 거 아냐? 야! 대답해보라잉!"
"행님, 그런 게 아니고요 행님."
의미 없는 새벽이었고, 의미 없는 얇은 이불 속이었다. 보면서 견디는 것, 견디면서 쉬는 것, 쉬면서 지나가는 것, 섬에게 시간은 의미 없었다.
새벽까지 잠을 못 자는 건 흔한 일이었다. 그렇게 산 세월이, 그렇지 않은 세월보다 많았다. 섬은 동네에서 발차기로 유명했다. 소문과 기억에만 있다. 그 흔한 상장하나도 없다. 대회 나갈 돈이 없었다. 운동만 잘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참가 회비도 있었다. 대회를 못나가도 여전히, 섬은 태권도가 좋았다. 마지막까지 기억하는 어린 시절 전부였다. 섬은 태권도복이 좋았다. 초등학교 때 엄마손을 잡고 갔던 도장에 밤새 흰띠를 안고 잠들었다. 빨간 띠를 허리에 두른 날은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다. 한참 시끄러웠던 밤의 다음날이었다. 엄마는 떠났다. 도박쟁이 아버지와 어린 섬만 두고 떠났다. 한 달에 한번, 아버지는 집에 들러 섬에게 용돈을 주고 갔다. 3만 원으로 한 달을 버틸 수 있을까? 태권도는 관두어야겠지? 섬은 좌절했다. 관장은 나중에 돈 벌어서 갚아라, 청소를 도와준 날은 청소값이라며 밥을 사 먹이고 분식점 콜라 샤베트를 사줬다. 아버지보다 더 아버지 같던 관장이었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섬을 아꼈다. 그가 자주 했던 '나쁜 길은 나쁜 길이다.'라는 말로 만든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렸다.
처음 생활을 시작한 건 중학교 3학년이었다. 고등학교를 갈 것인가, 말 것인가 결정해야 했다. 다시 말하면, 어렵게 학교를 다닐 것인가, 쉽게 돈 벌로 나갈 것인가. 고등학교대신 공장을 선택했었다. 공장으로 노름빚쟁이들이 찾아오는 통에 쫓겨났다. 공장대신 선택한 '안전한' 조직생활이었다. 공장과 마찬가지로 청소와 정신교육으로 시작했다. 처음 들은 말, 선배들은 '양아치'와 '건달'과 '깡패'를 구분하는 것이었다. 양아치는 입으로만 싸운다고 했고, 건달은 '건들건들'이고, 깡패는 '힘으로 사는 사나이'라고 했다. 섬은 그곳에서 살기 위해 싸우고 또 싸웠다. 섬의 발차기 한방이면 큰 덩치도 섬 앞에서 무력했다. 덩치는 힘이었지만, 주먹은 느렸고, 발은 더 느렸다. 덩치만 크고 싸움은 못하는 선배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부르면 달렸고, 싸우라면 피 터지게 싸웠다. 용돈을 주면 90도로 고개 숙여 두 손으로 받았다. 섬은 싸움이라는 세계에 재능 있었다. 섬을 눈여겨봤던 두목은 싸움하나로 3인자의 자리까지 올렸다. '영친파'와의 싸움에서 이긴 날, 기념하자고 타투샵에 갔을 때 처음이자 마지막 문신을 했다.
"섬아, 니 무꼬? 헤지스가? 가오상하게 강아지 문데? 그것도 엉디에."
"귀엽잖습니까, 형님! 형님께는 귀엽지만, 싸울 땐 개가 되야죠."
"그래, 니 그게 부끄러버서라도 싸우면서 엉덩이 깔 일은 읍겠데이."
섬은 많은 문신 중에 멍한 표정의 강아지를 선택했다. 팔과 다리, 등에 할 수 있었지만 엉덩이 위쪽으로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언젠가는 도복을, 한 번은 다시 입을 거라고 생각했다. 포기라는 말을 쓸 정도의 꿈도 아니었지만, 쉽게 버릴 만큼의 지난날들도 아니었다. 발차기는 그의 무기였고, 자신을 아껴준 유일한 사람이 가슴에 가득한 추억이었다.
섬은 조직생활에 익숙해져 갔고, 틀에 맞는 모습을 갖춰갔다. 정장, 구두, 선글라스, 담배, 시계, 금목걸이. 어린 시절의 섬은 더 이상 없었다. 이십 대 후반에 이미 많은 돈을 벌었고, 아래에 동생들을 많이 건사했다. 불려 다녔던 것처럼 불렀고, 해왔던 것처럼 싸움을 시켰다. 형님들께 받았던 것처럼 동생들에게 용돈을 줬다. 섬은 조직이라는 세계에도 재능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너무 빨리 올라갔고, 늘 급했다. 마지막에는 칼을 맞고 피가 찢기고 갈비뼈에 금이가도 싸움을 이어갔다. 아프다는 걸 모르는 사람처럼, 게임처럼, 싸웠다.
형님들은 하나씩 죽어나갔다. 마치 사람이 마흔이 되면 죽는 게 당연한 것만 같았다. 마흔이 되었을 때, 시간은 한꺼번에 찾아왔다. 발목 수술로 더 이상 발차기를 할 수 없었다. 빠르게 달리고 뛰어올라, 높고 강하게 차 올렸던 다리는 섬의 것이었다. 수술 이후로 복싱을 했지만, 스텝이 없는 주먹은 몰캉했다.
TV화면이 의미 없이 섬의 동공에 비쳤다. 섬이 눈을 감고 숨을 크게 쉬었다. 똑이 섬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따스한 뚝의 온기가 느껴졌다. 뚝을 안으면 태권도 관장이 떠오른다. 돈을 벌고 깔끔한 차림으로 찾아갔을 때, 펑펑 울었다. '나쁜 길은 나쁜 길이라고. 배부르면 잘 먹은 거고, 좋은 집이면 잘 사는 거냐고. 제발 거기서 벗어나라고.' 관장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섬을 구하기 위해서 조직 숙소에 찾아왔고 두목의 일말의 사건들을 경찰에 신고할 거라고 했다. 해보라고 했던 두목은, 아주 쉽게 트럭으로 관장을 처리했다. 세상은 아주 쉬웠다. 마흔이 넘으면 죽는 게 이상할 게 없는 것만 같았다.
섬은 뚝을 조금 더 끌어안았다. 뚝은 섬의 팔에 기대어 코를 골았다. 그르렁 소리가 TV소리에 묻히도록 골아댔다. 해와 달의 중간, 새벽의 달이 뜨고 있었다. 섬은 곤히 잠들어 있었다.
혁에게서 문자가 왔다.
"형님, 내일 재개발 행사 하나 오실랍니까? 머리만 채워주심 일당 20만 원 챙겨드릴게. 아침 7시까지 봉고 몰고 갈 테니까 언덕까지 내려오셔. 장비는 내가 챙길게."
2025년 2월 16일,
'풍경 혹은 환경(가제)'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