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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느와르 3화. 연

창작소설. 라이프 느와르

by oh오마주


너는

죽었지,

그렇지?



연의 엄마, 동은 말했다. 검고 깊은 눈빛으로 말했다. 어디로, 누구에게,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동은 마치 하나의 세상에 하나의 사건만을 가질 수 없다는 듯했다. 눈은 분명 연을 향해 말하고 있었다. 거실에는 옅은 타작소리가 들렸다. 옷장을 여닫는 소리, 책상에 올리고 내리는 소리, 바닥에 발이 닿는 소리. 연은 20kg 여행가방에 옷가지를 챙겼다. 드르륵 바퀴가 구르는 소리에 동의 눈썹이 반응했다. 연은 거실에 잠시 섰다. 그리고는 동에게 가까이 갔다. 거실 나무판자 소리가 첫눈 밟는 소리를 냈다. 뽀드득, 뽜두둑, 가까워지는 소리에 동은 눈을 질끈 감았다.


"엄마, 우리 엄마, 가족은 말이야. 총체적인 평가에 의해서 정해지는 것 같아. 난 그래서 떠나."

"넌 또 소설을 쓰는구나."

"응 맞아. 난 소설을 쓸 거야. 나는 그 누구도 대신해서 살지 않아."

"칠칠치 못한 정신머리."


더럽다는 듯 연을 뿌리치는 동. 동이 눈에 힘을 줬다. 그러나 이내 커지는 동공. 동의 눈동자는 더욱 짙고 커졌다. 연은 동의 이마에서 시선을 흘려, 눈을 다시 한번 봤다. 깊고 푸른 바다, 불빛하나 없는 심해가 있었다. 외계생물과 식생피라미드가 존재하지 않는 크기와 존재의 비밀이 가득한 생물들이 동을 괴롭히고 있었다. 불쌍한 동, 연은 큰 팔을 벌려 동을 안았다.


"도망치는 거 맞아. 세상은 착한 사람에게 늘 불공평해. 하지만, 내가 엄마를 대신해 살 순 없어. 사랑해 엄마."


연은 엄마를 등지고 집을 나섰다. 거실 소파에 기대앉아, 오른쪽으로 흘러 들어오는 햇살을 맞이하며, 동은 누웠다. 옆으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연은 짙은 갈색의 거실을 빠져나와 더 짙은 현관문을 열었다. 그리고 아주 짙은 벽돌과 빨간 철문을 나왔다. 햇살에 웃었다. 연은 나무를 찾아 떠날 것이다.


나무, 동은 가끔 오는 전화에, "넌 죽었지, 그렇지?" 말하곤 했다. 전화가 오는 날이면, 동은 언제나 나무에 대해 말했다. "너의 아빠는 나무야. 그 나무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어. 그래서 엄마는 혼자라도 슬프지 않아. 너와 함께 언젠가 나무를 만나러 갈 거야. 우리 함께 할 날만을 기다리자." 그 나무는 어떤 이유로 엄마를 떠났을까, 항상 궁금했다. 작은 나뭇가지를 보기만 해도 슬퍼하는 동의 얼굴은 연의 입을 막았다. 질문과 위로, 그 어떤 것도 연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연은 대체로 열심히 했다. '대체로'라고 함은, 잘하는 것과는 별개였다. 사실 대학을 갈 이유가 없었다. 돈이 필요한 적도 없었다. 그러나, 궁핍한 적 없다. 아무런 생각 없이 연은 대학을 선택했다. 가끔 상상했다. 어느 날 갑자기 텅 빈 집을 팔아버리고, 몸만 들어갈 작은 집을 원했다. 그러나, 연이 비싼 학비의 대학을 가도 궁핍해지지 않았다. 더 이상 연이 대학을 갈 이유가 없었다.


결핍의 부재, 상실의 부재. 의무감이나 희망은 시작도 해본 적 없다. 아무 이유 없이 어느 상태에 유지하는, 나쁘지 않고 괜찮을 뿐이었다. 해야 하는 마음과, 하기 싫은 마음과, 애처로운 마음과, 번거로운 마음과, 남겨놓은 마음과, 모든 감정의 마음을, 자연스럽지 못한 모든 불안함, 고립에 대한 두려움, 불안함을 옮고 싶지 않은 마음을 꺼내지 않았다. 둘 곳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글을 만났다.


연은 완성도와 상관없이 가짜를 계속해서 써 내려갔다.


배운 자들 사이에 배우지 못한 자가 기꺼이 되었다. 어릴 때부터, 연의 별명은 '장려'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장려를 탔기 때문이다. 시도, 산문도, 독후감도. 동은 '글쓰기'가 연의 재능이라 생각했다. 중학생이 되었을 때, 동은 연에게 소설을 써보라고 했다. 소설이어야 했다. 그림자도 보이지 않도록 어둡고 짙어야 했다.


동은 연에게 공부를 시켰다. 연은 공부를 열심히 했다. 전혀 이유가 없었다. 칭찬과 비난이 없는 삶에서 어디까지 무의미한지 궁금했을 뿐이다. 동은 세상에 만들어줬다는 이유로 연에게 지시하고 지휘하였으나, 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동은 매일 말했다. 넌 공부에 재능이 없으니 글을 쓰려면 대학을 가야 한다. 국문과를 가니 교직이수를 하고 선생님이 돼라 했다. 글은 취미로 써도 좋다고 했다.


연은 동에게 나무에 대해 물었다. 나무에 달린 열매였을 뿐인지, 나뭇가지인지, 자신의 시초를 알고 싶었다. 원리만 알면, 그것만 말해주면 동이 원하는 삶을 기꺼이 살 것이라 말했다.


"너는 죽었지, 그렇지?"


동은 연에게 한 번 더 말했다.


"너는 죽었지, 그렇지?"


듣고 흘리기만 하던 연, 처음으로 연은 그렇다고 답했다. 연은 동이 제정신이 아니라고, 대학을 그만두고 동과 집에 항상 붙어 있었다. 그러나, 또다시 절대적으로 궁핍한 생활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다. 연은 궁금했다. 무엇이 이렇게 슬픈 감정을 뺏아가는지, 불편한 감정을 계속해서 제자리로 돌려놓는지, 알아야만 했다. 떠나면 모든 것들은 해결될 것이라 생각했다. 떠나서 나무를 찾으리라,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리라. 어떤 피가 흐르는지 모르는 삶에서 가장 엉터리가 되기로 했다. 수감 중에 죽은 건 아닌지, 조직생활 중에 몰래 붕어밥이 되었는지, 왜 동과 연을 다 버리지 않았는지, 숨어서 연명하는 삶을 준 것인지. 이제 연은 찾아가는 길을 써 내려갈 뿐이었다. 혹시나 글을 읽지 않을까 싶어서, 모든 곳에 썼다.


"40대 중후반 깡패 혹은 전직 깡패를 찾습니다.

아니면, 그쪽 조직 세계 이야기를 들려주실 분, 사례하겠습니다."


중고거래 사이트 동네생활에 섬을 알게 되었다. 섬은 아빠의 모습일까? 섬을 처음 보고 덩치와 강아지의 조화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팔이 혀를 내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혹은 아메바 같았다.


절뚝거린다,에 서글퍼졌다. 자신이 걷는 모양이 늘 그렇게 보였다. 남들은 보통의 삶을 배부른 삶이라 한다. 적당한 것, 일정 수준 이상의 것. 만족하지 않는 사람 문제로 생각한다. 주제가 없는 삶이라 생각해 본 적은 없을 것이다. 연에게는 갈색 가득한 집이 조직이었다. 그 누군가는 다행일까 불행일까, 그것만이 나의 모든 것이 아니기를, 멀어지고 가까워지고 스스로가 결정하기를, 나만의 것, 우리만의 것, 무언가가 되기를.







4화 예고. 라이프


2월 2일 '라이프'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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