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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느와르 1화. 섬

oh오마주 오리지널 (창작소설)

by oh오마주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이었다.


지하철 1호선 6번 출구뒤로 기차 지나가는 소리가 험악하게 들렸다. 덩치 큰 남자가 그릴 위에 굽히기라도 하는 듯, 두리번거렸다. 발아래에서 뜨거운 바람이 온몸을 훑었다. 지하철이 지나가는 소리. 기차보다는 작은 소리로, 바람보다는 살벌한 소리.


"섬 님?"


부스스하게 헝클어진 머리, 돌아보면 조선시대 선비처럼 정수리까지 쪽머리를 한 여자. 뒤에서 남자를 불렀다. 검은 뿔테 안경에 쌍꺼풀 없는 눈, 화장기 없는, 이제 막 교복을 벗은 듯한 여학생이었다. 갈색 눈이 빛에 반사되어 투명하게 보였다. 질끈 감은 눈이 찰칵였다. 남자는 그녀를 아래위로 훑고 싶었지만, 그녀의 눈썹이 치켜 올라가고 있었으므로 그녀의 안경을 향하고 있었다.


"연 님?"


마주한 남자, 섬, 잘 굽힌 스테이크 같은 갈색 팔에는 같은 색 푸들이 안겨있었다. 덥기라도 한 듯 그의 볼은 붉게 변해갔다. 약속시간을 가까스로 지킨 여자는 '많이 안 늦었죠?' 말하면서 그제야 웃었다. 늦어서 미안하다는 말 대신, 플라스틱 물병 하나를 건넸다.


"저기 공원에 앉아서 해도 될까요? 녹음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여기는 소음이 많아서요."


그녀는 한낮에도 달이 뜰 것 같이 풀색 짙은 공원을 손으로 가리켰다. 의자라곤 보이지 않는데, 앉을 곳이 있을까? 남자는 의심하며 따라갔다. 어두운 나무 그림자에 손을 뻗으면 꿀꺽 삼킬듯한 음산함이었다. 정자에는 어르신들이 장기를 두고 있고, 어린 나무 아래 몇 개의 벤치가 있었다. 그래봐야 손 한 뼘 차이겠지만, 그림자가 가장 큰 곳을 그녀가 안내했다.


"녹음은 이야기를 위한 것일 뿐, 개인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고 약속할게요. 간단하게 성함, 나이 등 자기소개 먼저 부탁드릴게요."


"연 님, 아니, 학생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연, 그녀는 녹음기를 조작하던 손을 멈췄다. 검은 뿔테 안경사이에 갈색 눈이 빛을 머금고 또 밝아졌다. 이내 웃는다.


"학생은 아니지만, 그러죠. 말도 편하게 하세요. 저는 섬님을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요?"


그는 물을 한잔 꼴깍 마시고는 말했다.


"섬씨, 섬아저씨, 아니면 형님?"


순간 '아차'한다. 부르는 이름이 뭐 중요할까 싶다가도, 둘 다에게 어렵다. 섬은 이유 없이 외형으로 미움받고 불편할 때가 있었다. 나이도 외형이라면 외형이다. 연은 '형님'이라는 말에 웃음을 참느라 마른기침을 덧대었다.


"부를 일 많이 없을 텐데, 천천히 하죠. 이름과 나이, 그리고 현재 하시는 일, 좋아하는 일 등 간단하게 이야기해 주시고 본론으로 넘어가시죠."


멋쩍은 듯 옆머리를 긁더니, 섬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먼저 약속한 돈부터 받을 수 있을까? 똑이가 오늘 굶어서..."


섬이 안고 있던 강아지를 굵은 손으로 쓰다듬었다. 연이 이상한 듯 쳐다보자, 섬은 강아지 이름이 뚝이라고 했다. "함께 산지 두 달쯤 되었을까?" 섬은 운을 뗐다. 비 오는 날 편의점 처마 밑에 울고 있는 강아지였다. 다리에는 피가 났다. 다리를 절뚝거리는 강아지는 선택할 것도 없이 품에 안겼다. 섬은 '뚝'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절뚝대는 뚝, 울음 뚝 그치라고 뚝, 섬의 둑 같은 뚝이었다. 뚝은 외로운 섬에게 또 다른 가족이었다. "가족이지"라며 뚝의 머리를 쓰다듬는 섬을 풍경과 함께 봤다. 나무 그늘이 바람에 흔들렸다. 강아지의 눈은 감긴 채 손에 흔들렸다.


"그럼 걷지 못하나요?"


연은 지갑을 꺼내며 물었다. 연의 마음에서 열 번쯤 고민했을까, 실수처럼 투박하게 나온 말에 놀라 윗니로 아랫입술을 물었다. 섬은 연의 얼굴을 정면으로 보지 못했지만, 그 표정을 알고 있었다. 질문은 배고픈 것과 상관없지만, 대답하지 않으면 뚝은 여전히 배가 고플 것이라, 대답해야 했다.


"걷지, 절뚝거리면서."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연은 물을 샀던 편의점에 갔다. 걸린 사료들을 손으로 훑으며, 들었다 놓았다, 밥그릇이 붙은 일회용 작은 사료를 샀다. 뛰어 온 연의 숨소리가 거칠었다. 섬과 연 사이, 내려앉은 뚝의 입 앞에 연이 사료를 들이밀었다. 섬은 손에 물을 조금 부어 뚝의 턱에 댄다. 맥없이 몇 번 할짝거리고 사료에 코를 들이대더니,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섬은 그 모습을 정면으로 보지 않고, 슬쩍슬쩍 보며 미소 지었다. 연은 뚝과 섬을 봤다. 그리고 녹음기를 켰다. 먹는 소리까지 섬의 이야기인 것처럼 담았다.


"지금부터 켜도 될까요? 섬 형님. 이야기 시작해 주시죠."


섬은 고개를 푹 숙이고 피식 웃었다. 다시 고개를 들어 녹음기에 입을 가까이 댔다.


“마흔 초반, 서울 중앙파 출신, 별명은 딤섬. 중국어로 만두 할 때 그 딤섬 맞아. 짝귀, 쌍칼 이런 거 알지? 원래 이름은 김 임석. 교자, 포자, 만두 다 있는데, 왜 딤섬이냐고 사람들이 묻는데, 내 이름이 그렇게 들린다나. 아, 누가 말했냐면, 조직에 몸 다았을 때, 내가 모시던 형님 중에 홍두깨로 작업한다고, 홍두깨 형님이 있으셨거든. 두깨형님은 귀가 어두우셨어. 그분이 지어주신 이름이야. 작년에 생활 은퇴하시고 중국집 주방장으로 들어가셨지.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돌아가셨지만 말이야.”


연은 머리를 끄덕였다. 노트를 꺼내어 물어보려 했던 질문들에 빨간 펜으로 줄을 그었다. 문장 끝에 엑스자, 그리고 동그라미, 그리고 세모. 한 장을 넘겨 잉크가 번지도록 머물렀다.


“네, 지금부터 몇 가지 질문드릴 텐데, 솔직하고 편하게 답변 주세요. “


연은 큼큼 소리를 내며 목을 가다듬었다. 후우우 길게 한숨을 뱉고 섬을 쳐다보며 말했다.


“사전 채팅에서 조직 생활하실 때 돈이 많았다고 하셨는데, 지금은 왜 생활이 어려워 지신 건가요?"


섬은 망설이지 않았다.


"노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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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이야기 예고.


1월 19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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