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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느와르 2화. 뚝

(창작소설) 라이프 느와르

by oh오마주


뚝은 죽고 싶었다.

태어난 게 잘못이었다.


"이 놈의 개새끼가! 아 잡종 놈의 개새끼! 돈도 안되고!"


뚝의 엄마는 말티즈다.

주인은 원룸에서 개를 키워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불법 분양하는 걸로 먹고살았다.


"어미가 많이 낳아서 좋은 주인 찾습니다. 이제 막 낳은 순종 푸들, 눈물을 머금고 35만 원에 분양합니다."


뚝은 영문도 모른 채 사진이 찍혔다. '예쁘게 웃어야지!'라고 해대는 데,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얼굴에 핑크색 가루도 발렸다. 아기라도 엄연히 사내 녀석인데 말이다. 살 사람이 바로 나타나지 않으면 만원씩 줄어든다. '문의 환영'이라는 문구가 뚝이를 가뒀다. 엄마를 닮은 형제자매를 '순종 말티즈'라는 이름으로 나란히 올라갔다. 셋을 나란히 두고, '각 25만 원, 세 마리 전부 하시면 60에 해드려요.'라는 문구를 덧붙였다. 똑같이 돈이 되는 것들은 상품이 된다. 반려동물이라고 좋은 이름을 붙였지만, 개들은 사고 팔린다. 하긴 같은 인간끼리도 갓 태어난 아기들을 입양이라는 말로 분양한다고 하더라. 인간의 도덕성은 돈만큼 더럽다. 사회가 윤리를 외쳐도 움직이는 인형에 지나지 않는다.


도망쳤다.


주인년이 술이 떡이 돼서 처음 보는 남자를 데리고 왔다. 엄마는 '인간 생산 현장'이라고 했다. 엄마는 뚝이와 형제자매를 엉덩이 돌리게 했다. 귀를 덮으라고 했다. 엄마는 조용히 '저 년이 여섯 마리쯤 낳으려고 하나'라고 했다. 그 모습이 역겹다고 했다. 뚝이는 실루엣 너머 보고 있었다. 주인이 들어오면서부터 벗은 옷들 끝에는 문은 열려있었다. 도망칠 틈을 보고 있었다. 낮은 소리로 혼내는 엄마의 소리도 소용없었다. 더욱 격렬해지는 인간 생산 현장, 다른 형제자매보다 작은 체구 덕분에 케이지가 흔들린 틈을 타 구멍으로 나올 수 있었다. 다행히 많이 취한 탓에 현관을 제대로 닫지 않았다. 어제의 일은 여전히 끔찍했다. 개 따위가 째려봤다며, 전날 침대에서 바닥으로 후려 던져졌다. 하필이면 불이 살아있는 재떨이로 떨어져 다리를 다치고 살갗은 화상 입었다. 여전히 다리가 아프고 피가 났지만, 묶인 붕대 덕분에 견딜 수 있었다. "완전 소듕한 울애기, 엄마가 미앙해. 지켜줄게."라는 문구를 달고 올라간 사진에는 좋아요가 오백 개가 넘게 달렸다. 더럽고 치사하지만, 또 째려보면 또 다친다. 어두움을 뚫고 앞만 보고 달렸다. 아주 조심히 그리고 빠르게 걸어 나갔다. 문에서부터 전력질주, 계단에서 두 번이나 굴렀다. 붕대 밖으로 피가 새어 나왔다. 드디어 도착한 1층, 보이는 편의점까지만 달리면 된다. 누구든 구해줄 것이다.


애처로운 울음은 빗소리에 묻혔다. 빗소리보다 작은 발소리에도 묻혔다. 힘 없이 꺼져가는 불씨였다.


섬은 오늘 일하고 오늘 돈 받는 시간을 보낸다. 오늘 받은 돈은 오늘 다 써야 한다. 소주와 담배, 복권이면 충분했다. 평소라면 '땡기러'갈텐데, 비 오는 날은 운이 좋지 않으므로 가지 않는다. 간식도 없으니, 오늘까지 굶으면 3일 연속이라 낭패다. 고개 숙이며 들어가는 때에 기척이 들렸다. 섬은 뚝을 봤다. 손을 쉽게 대려다 멈췄다. 얼마 전처럼 도둑 취급 당하면 낭패다. 먹을 것 정도는 괜찮겠지, 캔으로 된 사료를 샀다. 오늘 받은 일당을 펼쳤다. 추위에 벌벌 떠는 모습에 비싼 편의점 수건까지 사서 덮어줬다. 주인이 올 때까지만 기다리기로 하고, 편의점 앞의 테라스에 함께 앉아서 기다리고 기다렸다. 비 오는 날이라서 일찍 어둑해지려 하는데, 주인은 오지 않고 뚝은 잠들었다. 섬은 뚝을 곁눈질로 봤다. 일찍 켜진 간판에 뚝이 움찔했다. 네온사인 불빛을 손으로 가렸다. 한 시간만, 하다가 저녁을 훌쩍 넘었다. 경찰서에 데려다주면 좋으련만, 갈 수 없다. 경찰서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고개를 떨구게 되고, 다리가 후덜거렸다.


밤 열 시쯤 되었을까, 젊은 여자가 쿵쾅거리며 다가왔다.


“이 미췬 개시끼가!“

사납게 외쳤다. 동시에 올라오는 손.


“뭡니까?”

“얘, 제 거예요."

섬이 앞을 가로막자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다 이내 표정을 바꾸어 보드랍게 말했다.


"예쁘죠? 정 붙었죠? 아저씨가 사실래요? 아니면 내놔요. “

섬은 황당하면서도 물었다.


“얼만데?”

“오십! 싸게 드리는 거예요.”

아무리 그래도 50이라니. 섬을 어느 섬에다 팔아도 50으로 사갈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고민하는 모습을 보며, 짝다리를 짚고 입을 삐죽인다. 눈으로 '거지새끼' 하고 있었다.


“이십만 원 밖에 없어.”

돈을 홱 가로채고 아무 말 없이 갔다.


빈 주머니, 사료값은 남겨둘 걸, 섬은 후회했다.

강아지를 안고 집으로 걸어갔다.

빈 그림자, 두 생명이 쉴 수 있는 빈 집으로 갔다.

그러나, 주지 못하는 미안함만 있을 뿐, 그날을 후회해 본 적은 없다.


"뚝아, 다른 주인 만났더라면, 내가 잘 나갈 때 만났다면, 병원에 제때 데려갔을 텐데. 그럼 뛰어 놀았을 텐데."


섬은 뚝을 안고 얼굴을 비볐다. 어울리지 않게 섬은 눈물이 많다. 갈수록 많아진다. 뚝은 그때 처음으로 사람의 눈물을 맛봤다. 맛있는 짠맛이었다. 섬이 있어서 뚝은 혼자 있는 시간이 힘들지 않다. 섬이 일을 마치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웃으며 들어오는 날에는, 꼬리가 자동으로 움직였다.


"뚝아, 오늘 맛있는 사료 사 왔다. 오늘 배달 건수가 많았거든. 얼른 먹자. 배고팠지?"


그리고 또 섬은 뚝을 안았다. 또 울었다. 좋아서 우는 거라는 데, 먹을 때는 말 안 걸었으면 좋겠다. 낑낑댔다. 섬은 그 모습마저도 좋아서 또 울었다. 벽을 보고는 '뚝, 뚝' 뚝이를 불러댔다.


뚝은 비 오는 밤, 달도 어두운 날이면 엄마와 형제들이 보고 싶다. 지옥에 두고 혼자만 살아 나온 것만 같다. 진흙탕을 섬의 품에 안겨 지날 때면 눈물이 난다. 가족을 떠나, 새로운 가족을 만들고 사는 일은 기쁘고 슬프다. 아프고 행복하다. 굶은 고통은 존재하는 고통보다 크지 않았다.


연, 그녀가 뚝에게 '조직 생활'을 물었다면, '멍'이라는 대답이나, '왈'이라는 대답뿐이겠지만, 우선은 그녀가 머리를 쓰다듬는 것을 허락할 것이다. 그녀의 갈색 눈은 섬과 뚝과 같은 색이기 때문이다. 같은 향이기 때문이다.






3화 예고. 연


1월 26일 '연'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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