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오마주 오리지널. 창작 소설
섬은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그때도 섬은 조직을 완전히 떠나지 않았다. 활발하게 활동하기에는 나이가 들었을 뿐이다. 삶이 어렵진 않았다. 사치는 이미 즐겁지 않고, 여자는 귀찮았다. 무료했을 뿐이다. 입소와 출소를 반복하면서 몸이 변했다. 예전처럼 빠르지 않고, 주먹세기가 젊을 때만큼은 아니었다. 몇 번의 큰 수술로 완전한 회복이 어려웠다. 사실 들을 받아들이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같은 처지의 '올드 보이'들과 점심을 먹고 강원도에 재미 삼아 갔던 게 문제였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고, 줄담배를 펴댈 때까지만 해도 좋았다. 술김에 당겨보자고 말한 것도 섬이었고, 하루만 더를 외쳤던 것도 섬이었다.
따고, 잃고, 따고, 잃고, 따고, 따고, 잃고, 잃고, 잃고, 따고
나름대로 패턴이 있었다. 'O'와 'X'를 계속해서 오간다면, 영원한 'X'는 없을 것이다. 돈은 ATM기에서 인출하면 되었다. 돈이야, 쓸데가 없어서 놔둔 것뿐이었다. 뽑으면 뽑히고, 바꾸면 바뀌고, 당기면 당겨졌다.
따고, 잃고, 잃고, 잃고, 따고, 잃고, 잃고, 잃고, 잃고, 잃고, 따고
아, 조금만 더 하면 될 것도 같은데, 섬은 생각했다. 아, 속도가 안나는 데, 판돈을 올려볼까? 마른입에 침을 발랐다. 손깍지를 끼고 몸도 풀었다. 이번까지만, 딱 이번까지만. 재산의 반을 넣었다.
잃고!
"아!!!!!!!!!!!!!!!!!!!!!!!!!!!악!!!!!!!!!!!!!!!!!!!"
섬의 분노는 특별하지 않았다. 그곳에 10분에 한 번씩은 터지는 함성 혹은 고함이었다. 섬은, '본전 생각'이 났다. 이렇게 끝내면, 이렇게 끝나면, 자신은 패배자였다. 잃었으니, 다음 패턴은 '따고'였다. 전재산을 뺐다. 어차피 없어도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다. 뽑으면 뽑히고, 바꾸면 바뀌고, 당기면 당겨졌다.
잃고...
좌절했다. 울다가, 웃다가, 소리를 질렀다가. 섬은 그 길로 돈을 빌리기 위해 전화를 돌렸다.
"야, 나야 나. 딤섬. 금방 쓰고 줄게. 어머니가 아프셔서 그래."
"개쉐끼야. 니가 어무이가 어딨노? 돌아가신지 한참 됐다 아이가? 니 강원도에 땡기로 갔다는 소문 다 났다잉. 미친 새끼, 어디서 개지랄이고? 정신차리라 임마!"
"형님도 아셔?"
"아직 모르신다. 니, 우리 '아'들한테 전화해가 돈 꾸지 마라잉. 내 니 모가지 비틀어삔다."
섬은 차고 있던 시계와 타고 온 차까지 전당포에 맡겼다. 같이 왔던 '올드보이'들은 일찌감치 돌아갔다. 보름도 안돼서 일어난 일이었다. 전재산을 잃는 일. 몸에 두른 것들을 파는 일. 완전한 패배자였다. 열정이나 도전이라는 단어보다, 포기라는 단어가 어울렸다. 섬은 강원도에서 막노동을 했다. 돌아가도 갈 곳이 더 이상 없었다. 근처 달방을 구했다. 돈이 생기면 어김없이 찾았고, 돈이 없으면 일했다. 반복되는 생활도 익숙해졌다.
"그렇다면 형님, 어떻게 다시 돌아오셨죠? 쉽지 않으셨을 것 같은데."
연은 오른손으로 볼펜을 휙휙 돌리고는, 코끝까지 흘러내려온 안경을 쓸어 올리며 물었다.
"큰 형님이 아셨어. 데리러 오셨더라고. 시신 거두러 왔다고 하시면서 몇 대 두들기시고는 차에 태웠어. 빚도 정산해 주시고."
"좋은 보스셨군요?"
"글쎄?"
섬은 뚝의 머리와 허리를 두 번 쓸었다.
"학생, 뚝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구조되었다면, 걷고 뛰지 않았을까? 좋은 사료를 먹어서 털이 빛났을 거야. 살고 싶어서 울어댔던 얘였으니까. 그때 나는 살고 싶지 않았어. 함께 일했던 형님과 동생들은 아주 쉽게 인생을 끝냈거든. 남은 사람은 마지막들을 수없이 기억해야 해. 그런데, 그 마지막들보다 늙은 내가 불쌍하더라. 불필요해진 내가 짐짝처럼 초라했어. 강원도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차에서, 내가 뭘 하면서 살 수 있을까."
연은 수첩에 '구조'라는 단어를 썼다. 고개를 들어 섬과 뚝을 번갈아가면서 봤다. 갈색 팔에 갈색 털, 두 생명체가 꿈틀거리며 연의 갈색 동공으로 스며들었다. 잘못을 실수라고 말하고, 시간들을 미화시키는 섬을 보며, 연은 동을 떠올렸다. 삶이 누아르였다. 연은 수첩에 '누아르'라고 쓰고, 그 위로 두 줄을 그었다. 줄 위에 '느와르'라고 썼다. 그 편이 섬에게 더 어울렸다.
5화 예고. 느와르
2월 9일 '느와르'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