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오마주 오리지널. 창작소설
정면으로 마주할 수 없는 곳을 걸었다. 다신 오지 않으리라, 결심했는데, 다시 왔다. 섬에게 하기 싫은 일이 있을 리가 없다. 하고 싶은 일이 없는 것처럼 하기 싫은 일도 없다. 일은 하면 늘고, 습관이 되면 감정 없이 슬픔 없이 쉽다.
부수고 또 부쉈다. 옷장을 때리고, 신발장을 발로 걷어차고, 텅텅 빈 쌀독을 목각으로 때렸다. 짧고 굵은 비명소리들과 마지막날처럼 통곡하는 울음소리가 공기 중에 섞였다. 탁해진 모래공기가 마스크 사이로 비집고 들어왔다. 한 순간 부수는 소리가 멈췄다. 섬은 기다리고 있었다. 유통기한이 지난 빵 하나와 우유로 방금 식사를 끝낸 어린아이의 밥상을 엎었다. 아이는 익숙한 듯 마지막 남은 깨까지 앞니로 씹고 있었다.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방 귀퉁이에 가만히 서서 주먹을 쥐고 눈물을 뚝-뚝- 흘리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무언가는 해야 해서, 그래야 해서...' 아이에게 눈으로 말했다. 아이는 팔로 눈을 한번 쓱 닦고는 작은 폭풍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아이는 이제 안다. 엄마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본인을 보호할 어른이 없다는 것은 이제 본인만이 지킬 수 있다는 뜻이다. 지독한 가난과 마음의 빈곤, 등껍데기를 잃고 헤매는 달팽이였다.
혁은 집에 손은 안 대고, 아이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둔탁한 소리와 삐그덕 대는 소리가 일정하게 반복되었다. 정장과 구두를 신고, 제일 앞에 걸어서, 인부들이 집기 몇 개를 건드리는 동안 뒤에 빠져 있다가, 다시 앞으로 나타나는 역할이었다. 구두를 신은 채 방으로 들어와, 넘어진 밥상을 발로 일으켜 세우며,
"꼬맹아, 니는 내가 얼른 요 앞에 가라니까 안갔노? 굶지는 않을 거 아이가?"
"아저씨나 잘해요!"
"아하아, 요 새끼 보소? 싹수가 노랗고 파랗네. 다음에는 집 완즈이 부술끼다잉. 자존심이 밥 먹여 주나? 니처럼 어린놈의 새끼들은 주는 밥 묵고 학교 제때 잘 다니는 게 할 일이다잉. 정신 챙기라."
"아저씨, 꼰대예요?"
"요놈이! 지지를 않네. 니는 내가 무섭지도 않나?"
혁은 어린아이를 혼내는 것 같이 말하면서 아이를 바라보는 눈이 슬펐다. 그 모습이 아이와 섬의 눈에 비치었다. 강가의 윤슬처럼 빛나고 있었다. 혁은 '으여'하며, 만원을 꺼내 아이에게 내밀었다.
"아저씨, 변태예요?"
"뭐라 쳐 씨부리샀노. 어른이 주면, 고맙습니다, 할끼제."
"동정은 됐어요."
"꼴에 자존심은 대단하네."
혁은 만원을 바닥에 흘리고는 다른 집을 향했다.
중턱에서 편의점 도시락을 하나씩 나눴다. 인부들은 허겁지겁 먹고 잠시 쉬고는 또 부수고 부쉈다. 아침부터 시작한 일은 오후 무렵이 돼야 끝났다. 일당을 받고 일부는 흩어지고, 일부는 봉고를 타고 떠났다. 섬은 언덕에 서서 멀리 바라보고 있었다. 혁은 섬의 곁으로 와서, 담배를 하나 건넸다. 길게 불을 빨아 당기고는 '하아' 더 길게 하늘을 향해 내뿜었다. '조금 더 챙겼심더'라며 혁은 봉투를 섬의 주머니에 깊숙하게 쑤셔 넣었다. 섬은 담배 한 모금을 마시고는 바닥에 침을 뱉었다. 똑같이 따라 하는 혁.
혁은 섬이 풀타임으로 생활하고 있을 때, 막내였다. 중학생 끝날 무렵에 들어오려는 때에, 섬은 혁이 똑똑하다는 걸 알아봤다. 혁에게 학교를 마치는 게 어떠냐고 했다. 싸움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몸이 다부지게 크지도 않았다. 다른 아이들보다 계산이 빨랐다. 섬은 혁이 사회로 돌아갈 가능성을 염두했다. 혁은 돈을 빨리 벌고 싶다고 말했고, 섬은 책임져야 할 몸이 나 하나뿐이라는 것은, 오히려 가벼운 일이다. 그러니, 괜찮다고 답했다.
"행님, 그때 학교를 안 보내주셨으면, 평생 가고 싶었을 낍니다."
"남들 가는 학원 못 가고, 시험공부도 제대로 못했는데, 뭐가 좋아?"
"일단, 친구들과 먹는 급식도 맛있지예. 쉬는 시간에 축구도 재밌었지예. 일 안 가고 청소만 해도 월급 나와서 좋았지예."
"학교에서 공부는 안 했냐?"
"공부한 거는 기억안나는데예?"
둘은 낄낄대며, 나란히 길게 연기를 내뿜었다. 담뱃불을 발바닥으로 비벼 끄며, 섬은 혁을 마주 봤다.
"나는, 가끔, 네가..."
"압니데이. 생활하길 원치 않으신 거. 제가 으딜 가겠습니꺼? 지를 키워준 환경에 남아야제이."
둘은 말없이 붉게 무너지는 하늘과 내려앉은 동네를 바라보고 있었다.
섬은 소원이 생겼다. 아이들이 크는 세상에 관심이라는 작은 환경이 인생의 같은 풍경이었다. 섬은 작고 여린 것들을 마주한 날에 죽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람으로 죽는 것을 열망했다.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면.
2월 23일 연재 예고
'알약'이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