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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느와르 8화. 방

by oh오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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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그림 찾기


연은 숨은 그림을 찾는 듯이 눈을 멈추고 섬의 방 앞에 섰다.


"뭐 이런 걸 다."


섬은 우뚝 섰다. 연의 팔에 뚝의 사료로 보이는 강아지 사료 한 포대기를 받았다. 웃는 모습, 섬은 무표정하지만 분명 웃고 있었다. 방문을 열어주고, 얼굴을 긁으며 연을 안으로 들였다.


"학생, 미안해. 내가 일을 갔다가 다리가 병이 났어. 만나는 걸 미루면 될 거를, 꼭대기까지 찾아왔어."

"시간이 많지 않아서요."


연이 먼저 들어오고, 섬은 어색하게 머리를 긁으며 문을 닫았다. 연의 손에는 갈색 봉투와 2kg 사료 한 포대기, 그리고 음료수와 반찬들이 있었다. 봉투는 감췄지만, 냄새로 알 수 있었다. 통닭이었다. 두루마리 휴지를 들고 손바닥에 몇 번 부딪히고는 휴지를 네 칸 뜯었다. 바닥을 닦는 시늉을 했다. 아무것도 없는 바닥에 자갈이라도 잔뜩 있듯이, 머리카락 한올 없는 바닥을, 거미줄 하나 없는 방의 구석을. 식은땀까지 흘려가며 닦고 있었다. 연은 못 본 척 싱크대 앞으로 갔다. 사료를 뜯어 뚝의 밥그릇에 놓았다. 허겁지겁 먹는 모습에 머리를 쓸었다. 사온 음료와 반찬들을 넣기 위해 냉장고를 열었다. 텅 빈 냉장고에는 냉기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었다. 말없이 채우고 있었다. 섬은 그 모습을 그림자를 통해 봤다.


연은 문을 열기 직전까지도 고민했다. '위험'이라는 단어를 빼도 되는지, '동정'이라는 말이 행동에 섞이지 않았는지, 어떤 도움을 받기 위해서 섬과 뚝을 만나러 왔는지. 하나의 방에서 함께 있어도 될는지.


"예, 6층은 높긴 하네요. 다리도 불편하신데."

"그래도 옛날 건물이라서 4층이 없어, 5층 같은 6층이야."


혼자 재밌다는 듯, 피식 웃었다.


"아마도, 학생은 머리가 좋겠지? 그러니 저 많은 물건들을 한 번에 다 가져왔겠지."

"빈 손으로 올 수가 없어서요. 통닭부터 드세요. 저, 담배하나만 피고 올게요."


섬은 고개를 끄덕인다. 계단을 내려가며, 5층 같은 6층이래, 연은 피식 웃었다.


섬은 모든 소리가 크게 들렸다. 연이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 문을 두드리는 소리, 문을 닫는 소리. 연이 방으로 들어오는 발자국 소리까지도 크게 들렸다. 출입구에서 방까지는 길기만 하다. 주방과 마주 보는 화장실 문을 닫았다. 문지방을 밟고 누군가가 자기 방에 들어온다는 건 섬에게는 처음 있는 벅찬 기쁨이었다. 뚝이 왔을 때를 떠올렸다. 갈색 털이 눈앞에서 움직일 때, 감동에 눈물이 났다. 미안함과 고마움과 따스함이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있다면, 가족이라는 실체가 있다면, 만약, 만일, 그렇다면.


"녹음 시작하겠습니다."

"좋아."

"형님, 지금은 도박은 안 하시나요?"

"아시다시피, 뚝이 사료값만으로도 힘들어. 뚝이 다리 때문에 병원도 가야 하는데, 물론 자주는 못 가. 크게 아프지 않길 바랄 뿐이야."

"뚝이가 없었다면, 또 하셨을 건가요?"

"모를 일이지. 지난번에는 형님이 계셨으니까, 내가 살았지. 내가 강원도에서 영혼을 팔고 있을 때, 우리 형님이 데리러 오셨었어. 돈도 갚아주셨고, 차에 태워서 서울로 다시 데리고 오셨지. 그때 그러시더라고. '이 개새끼야. 궁둥이 확 찢어뿔라. 가오빠지게 살바에는 죽어버려!' "


섬은 잠시 고개를 숙여 목뒤를 긁었다.


"너 하나 없다고 세상에 티라도 나는 줄 아냐고."


섬이 말을 멈추고, 뚝을 안았다. 팔로 뚝을 받치고 큰 손으로 뚝을 쓸었다. 뚝은 배부르고 편안한 듯 눈을 지그시 감았다. 낮잠을 자려 울음을 막 그친 엄마품의 신생아처럼 금세 잠들었다.


연은 수첩에 '앞뒤 마음'이라고 쓰고 동그라미를 쳤다.


"도박 이외에 인생을 바꾼 일은 없나요?"

"도박은 나한테만 나빴지. 돌아와서도 완전히 끊지는 못했어. 일당 받으면 찌지고 땡겼지. 딱 방값만 빼고."


연은 수첩에 적힌 두 번째 줄을 긋고 '엑스 자'를 그렸다.

볼펜 사각대는 소리가 섬의 귀에도 크게 들렸다. '엑.스.'


"그러면, 서울로 돌아오셔서 어떤 일을 하셨나요?"

"돌아오자마자 일단 복귀했어. 큰 형님께 용돈을 받아서 옷도 사 입고, 고기도 사 먹었지. 사람 죽이는 일 빼고는 돈이 되면 다 했어. 다리가 제대로 싸우지 못할 지경이 되니까 할 수 있는 일이 더러워지기 시작했지. 술집에 여자 때리는 놈들 말리다가 대신 맞기도 하고, 봉고로 여자들을 노래방에 데려다주는 일도 했고, 오피스 앞에서 기다리기도 했어. 그런 일들까지도 줄더라고. 이 업계도 불황이라서. 배달알바 하면서 버티고 있어. 우리 뚝이가 가족이 된 이후로는 사료값 대느라 도박은 못하고."

"그럼, 약도 배달하셨나요?"


섬은 대답을 하려다 말고, 말을 삼켰다.

방의 '개 방석'에 뚝을 눕히고, 일어나서 통창을 한 뼘 열었다.


"방이 묘하게 비스듬하지 않아?"


연은 눈만 돌려서 방을 훑었다. 그리고 턱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한 번 돌리고, 섬을 천천히 올려다봤다. 창문을 통해서 밖을 보고 있었다.


"배달했지, 왜 안 했겠어. 돈 되는 일은 사람 죽이는 일 빼고는 다 했다니까."


섬이 뒤돌아 연을 보는데, 햇빛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초콜릿 약도 있었나요?"


연은 당장이라도 공격할 것처럼 눈을 쏘아붙였다. 섬은 눈을 피하지 않았다.


"소설 써?"







3월 9일, 9화 예고.


'레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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