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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느와르 9화. 레옹

oh오마주 오리지널 창작 소설.

by oh오마주

"초콜릿 약도 있었나요?"

"소설 써?"


섬은 다시 창문으로 눈을 돌렸다. 세상에서 가장 넓은, 빛이라는 희망이 들어오는 가장 잔인한 감옥이었다. 따뜻함도 내 것이 아니요, 안전함도 내 것이 아니었다.


덜커덕,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집 안에 있던 연과 섬은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닌 데, 놀라서 움츠렸다.


"혼자 사시는 거 아니었어요?"


연은 눈을 문쪽으로 돌렸다. 움직이는 소리가 요란했다. 흰머리가 덥수룩한, 자주색과 갈색이 오묘하게 섞인 코트를 풀어헤친 남자가 신발을 신은 채 들어오고 있었다. 어울리지 않게, 맨발에 신발은 까만 고무에 흰 줄이 그어진, 학생들이 신을 법한, 슬리퍼를 신었다. 손톱과 발톱에는 모두 검은색 매니큐어가 발려 있었다. 그가 선글라스를 벗었을 때, 연은 그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옅게 뜬 그의 눈이 갈색으로 천천히 그리고 서서히 빛나고 있었다.


"야는 누꼬?"

"아, 형님 여기는..."

"섬, 니는 가만있고, 아야, 말해봐라. 한참 어려 보이는데, 니 문데 섬이랑 있노? 야가 뭐 하던 새낀 줄은 아나?"


연은 그의 눈에서 시선을 놓을 수 없었다.


"듣고 있나? 말해라잉. 뭐냐고, 여기 왜 왔냐고!"

"소설가예요. 깡패 이야기 쓰고 있어요."

"하아, 맞나, 오모시로이."

"그러는 댁은, 야쿠자세요?"

"아니, 내는 코리안 토종이다. 야마까진 칼빵 안 하지, 주먹이랑 쇠파이프 전문이야."

둘은 각자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근데 섬이한테 얻을 게 있디나? 우리 섬이가, 옛날 깡패지, 지금은 개아빤데? 글고, 이 새끼 입만 열면 구랄낀데, 쓸게 있나? 도박하는 새끼치고 구라 안 까는 놈 못봤다잉. 구십 구쁘로가 구라고, 일 프로만 진실이라니까. 대충 모르진 않을 텐데."


섬은 대꾸 없이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서 있고, 연은 섬과 번갈아 보고 있었다.


"그럼 댁은 지금 깡팬가요? 나이 많아 보이시는데?"

"내 나이가 어때서? 나 아직 팔팔하다잉. 글고 군대로 치면 별도 4개 달았으. 이 세계가 암만 그래도 죽지도 않고, 도박 안 하면 남는 장사야. 돈이 없거나, 죽어서 문제라."


연은 갈색 눈에 대해 자꾸 묻고만 싶다. 수첩에 적어내려 갔다. '나무가 당신인가요?'


"형님, 저는 오늘 그냥 가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오늘 치는 싱크대 위에 올려놓고 가겠습니다."


형님? 하면서 웃고 있는 '댁', 그리고 고개만 끄덕이는 '섬', 해는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연은 짐을 챙겨서 밖으로 나가면서 한번 더 집을 돌아봤다. 익숙한 이 감정, 이 집이 세상이고, 세상에 셋만 남은 듯한 서글픔이었다. 연은 주먹으로 자기 머리를 세게 쳤다. '그럴 리 없다.'


문이 닫히고, '댁'은 눈썹을 치켜떴다. 그리고는 손으로 입을 막았다. 이내 마른세수를 하고, 선글라스를 다시 꼈다.


"시발놈아, 뭐 한다고 기집을 옆에 끼노? 니 혼자 인생 망친대로 살지, 다른 사람을 왜 끼냐고. 내 동생 하나로 모자라나? 미친 새끼야."

"여자로 만나는 거 아닙니다. 생활비 하려고 인터뷰하는 겁니다."

"나니고레. 인터뷰? 웃기고 있네. 대가리도 안 돌아가는 새끼가."

"형님, 압니다."

"알긴 뭘 알아? 멍청하긴."

"만날 때마다 증명해 보겠습니다."

"증명? 그래봐야 도박 쟁이지. 니, 원이 이야기 꺼내지 마라. 쥐기 뿔라 카다가 떠난 원이 생각해서 봐주는 기다. 미친 새끼, 살려고 발버둥 치지 마라. 니는 내가 구해준 여기서, 개새끼랑, 평생, 가만가만히 살다가 목숨 다하면 되는기다."


방 안에서 담배를 하나 입에 물고는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집을 나갔다. 문이 세게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세상에서 가장 어두운 어둠이 찾아왔다.


실은, 섬은 욕 섞인 문장에 섬은 편안해졌다. 욕이 섞이지 않은 문장들에 둘러싸여 미운 오리 새끼처럼 살아가는 시간이 어색하기만 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도박일까? 깡패일까? 아니면 엄마에게 버림받을 때부터일까? 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눈물이 뺨을 흘렀다. 세상에 가장 큰 위로는 갈색의 작은 생명뿐이었다.


"그래, 내 까짓 게, 행복 같은 거, 욕심내선 안 되겠지."








3월 16일 연재 예고.


창작소설 라이프 느와르

10화. '병(가제)'이 이어집니다.


https://youtu.be/dIB9D5qiU1g?si=AglcxVBuca0FdRw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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