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젊음의 가격

by oh오마주


따뜻한 봄을 살아가는 것보다

추운 겨울을 견뎌내는

작은 새싹이 되어간다.


의미를 가지고 동그란 원을 그리면

원 안을 색칠하지 않아도

그 의미는

나를 위해 선을 긋는 길


예술작품에 가격이 있다면

내 삶도 가격이 있다고

그저 있는 그대로 아는 것







집에만 있으니 가스비가 어마어마하다. 배달음식도 이제 질리고, 사재기해놓은 믹스커피와 즉석식품도 다 떨어졌다. ‘그동안 나는 많은 것을 누리고 살았구나.’ 새삼스럽게 도를 닦고 있었다. 나는 집에게 안락함만을 바래왔는데, 요구사항이 많아졌다.


그래서 나의 집은 나에게 구남과 마지막으로 통화하던 때처럼 응답했다.


“우리 생각할 시간을 가지는 게 좋을 것 같아.”

- “련아, 자존심 상하게 해서 미안해.”


행동이나 말, 마음이 그렇다는 핑계보다 오묘한 질문 같은 대답이었다. 동시에 정답이었다. 가슴에서 ‘파박!’소리를 내며 뜨거웠던 게 고작 자존심이었다. 집착도, 화내는 것도, 만남도 그리고 헤어지는 마지막까지. 사랑이니 행복이니 구구절절하게 말하는 것보다 좀 더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었다.

이 얼마나 명쾌한가. 무릎을 탁, 쳤다.


어차피 이렇게 백지상태가 된 인생이라면, 어디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충동적으로 집을 부동산에 내놓았다. 어떻게 보면 진심까지는 아닌데, 마음의 준비도 없이 반나절 만에 덜컥 계약이 되었다. 잠시 멍했지만,


‘이제 직장과 가까운 집은 큰 의미가 없으니까 팔아도 된다.’

‘베란다에 곰팡이가 좀 있어서 싸게 내놔야 했지만, 그럭저럭 잘 팔았다.’


그런 생각이 나를 평온하게 했다. 다른 가구들도 다 놔두고 캐리어 2개에 옷만 싸들고 나왔다. 5년 전 집에서 나올 때와 같은 상황인데, 경제적 도망자가 되고 나니 정든 가구와 가전들에게 미안하고 한걸음 떼기가 쉽지 않았다. 엘리베이터까지 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오란다 어항으로 향했다. 그리고 다섯 마리와 한 번씩 눈 마주쳤다.

“붕어들, 내가 널 데리고 가지 못해. 마지막까지 고마워.”


출근할 때처럼 운전석에 앉아 핸드폰으로 내비게이션을 켰다. 브레이크를 밟으며 시동을 걸다가 다시 올라갔다.


결국 리빙박스에 물고기 어항을 옮겼다. 보조석에 안전벨트를 채웠다. 사람하나에 어항 하나, 가방 둘. 만석인 채로 예전에 출근하던 출근길로 갔다. 회사들이 즐비한 빌딩들 사이로 달렸다. 호텔 빵집 커피 라운지로 향했다. 나의 이 기분을 거기에 버리고 올 생각이었다.


생명이 그렇다. 작고 어린것들은 작기 때문에 보호받았다. 호텔이지만 작은 산소기 정도는 틀 전기를 내어주었다. 심지어 친절하게도 작동이 잘되는 모습이 동영상으로 짧게 촬영되어 문자로 왔다.

크게 한숨을 내쉬며 커피를 마셨다. 창 밖을 내 눈이 천천히 읽어나갔다.


남들 일할 때, 남들 뛰어다닐 때, 하얀 정수리를 보며 홀짝이고 핸드폰이나 끼적이는 순간이 매우 빠르게 흘러갔다. 역시, 비싼 값. 호텔 카푸치노가 정말 고소했다. 나를 절대 실망시키지 않는 한 모금이었다.


그저 ‘마음만 단단하게 먹자.‘ 뭐든 하고 싶은 걸 해야겠다고 결심한 순간이었다. 내 테이블의 뒤로 고급스러운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 어느 때보다 ‘여탕’스럽달까, 여사님들의 수다스러운 물개박수와 깔깔거림에도 나만 이어폰을 끼면 모두가 행복해졌다. '사모님들의 아들의 직업이 뭔지, 아침에 어떤 스케줄을 소화했는지, 무슨 차를 타고 왔는지, 택시는 모범인지 아닌지, 그 회사의 주식은 언제 상장하는지.'


카푸치노를 다 마셔갈 때쯤 깨달았다. 돈 버는 피곤함과 몸의 불편함이 가장 힘든 게 아님을, 시간이 없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돈이 없어서 못하는 게 제일 괴롭고 서럽다는 것을.


‘엘리제를 위하여’ 피아노 연주곡이 배경음악으로 흐르는 동안 ‘나종련을 위하여’ 모든 것이 초기화되었다. ‘잠시 후진해도 좋다.’는 생각이 ‘0’에서 시작하는 나를 따뜻하게 위로했다. 오늘은 나를 위해 호텔에 하루 머무는 것이 좋겠다.


얼음 꽉꽉 누른 케냐 AA원두의 드립커피와 초코퍼지마카롱을 하나 주문했다. 무심하게도 스스로를 위해서 이런 것도 안 사줬을까. 오늘은 투명한 삿갓을 머리에 쓰고 ‘공상주의 떠돌이’가 되기로 했다. 시원하게 꼴깍 커피를 들이켰는데 다행히 결심을 해도 결심 전 나와 다르지 않았다.


호실을 배정받고 올라가는 동안 투명한 엘리베이터로 밖을 봤다. 삶도 아주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만 같았다.


가지런히 정리된 침대를 보면서 기쁘면서도 어색했다. 오늘 처음 만나는 침대다. 신발도 벗지 않은 채, 침대에 털썩 누워 발을 꼬고 TV를 틀었다.


영화 ‘소공녀’가 나온다. 예전에 봤을 때는 주인공 ‘미소’를 보면서 헛웃음이 많이 나왔었다. 구남은 ‘여자 병맛’이라고 맹비난했었다. 미소가 경제적으로 가난하기에 한 걸음, 한 마디가 안타까웠다. 그녀의 위스키 한 잔이 제일 그랬다. 텐트에 지낼지언정 그녀가 추구한 방랑의 로망은 아름다웠다. 엉망으로 잔뜩 치장했으나, 주인공이 비현실적으로 ‘그래도 예쁜 미모’가 아름다움의 이유일지도 모른다. ‘미소’의 삶은 나에게 허락될 리가 없을 테니, 부러웠었다. 그런데 이렇게 고급스럽게 일부분이 허락되었다.


커피를 연거푸 마시면서 생각을 계속했더니 관자놀이가 시큰했다. 눈썹 끝이 얼얼했다. 쓸데없이 돈 쓰는 재미가 쏠쏠한데, 동시에 비참함이 갱신되어 가는 하루들 속에 뿌리 없는 나무가 되는 착각이 들었다. 두통약을 한 알 입에 털어 넣고 노란 연필에 달린 지우개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재주껏 마사지를 해봐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침대에 누워서 천장을 보는데 거미줄이 보였다. 하룻밤에 30만 원 하는 스위트룸이라서 그런지 거미줄조차 만국기로 보였다. 이렇게 호사로운 날에 첫 자취방이 생각났다. 옥탑방이라도, 거미줄 하나 없어도 한 달에 30만 원 했었는데, 그땐 지독스럽게도 청소했었다.


콩알만 한 월급으로 이자 내고, 세금 내고, 생활하는 '퍼가요~♡' 것들도 좋았다. 열심히 살아온 20대의 일상들이 있었다는 것에 감사했다. 버스비 아낀 돈으로 피자도 시켜 먹고, 2 금융에 적금을 넣어 여행도 가고, 내 젊음 하나만 믿고 보험도 없이 살았다. 십만 원짜리 가방 하나 12개월 할부로 사고도, 카드빚에 아등바등해도 행복했다. 그렇게 견디기 위해 늘 양보하지만 내 마음이 편하고 싶어서였고, 늘 화냈지만 불편하라고 내는 화였다.


문득 평생 중2와 고3 사이를 오가는 기분이 들었다.

늦은 밤, 엄마는 방에 있고, 거실은 불이 꺼져있지만 내 방 소리에 늘 집중하는 기분. 참 불편했지만 나에게 득이라 생각해서 아무 말도 못 했던 십 대. 속으로는 '어른들은 뭐가 그렇게 궁금할까?' 생각했었다.


나도 겪어본 흔한 사춘기이지만, 스물이 되기 전부터 조금씩 느끼고 있었다. 이미 십 대에 알고 있었다. 어른들이 쥐어 짜내었던 청소년기는 정작 이 험난한 세상을 사는데 큰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서른이 넘어가서야 경제적 빈부 격차만큼이나 정신력의 빈부 격차 속에서 스스로 해나가지 못하는 것이 인생에 치명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 말해주지 않았을까. 나의 능력치를 늘 과대평가하고, 잠재능력이라 칭하고 손뼉 쳤지 않은가. 왜 현실에 맞는 충고는 내가 늙고 나서 하는 걸까. 충고가 필요할 때는 방관하더니, 격려가 필요할 때는 충고했다. 어른이 되니 나도 그랬다.


‘어른들도 사실은 잘 모르면서. 자기 인생도 관리 못하면서.’


늘 되새김질한다. 그리고 오늘도 결국 커피와 두통약으로 버틴다. 행동 하나하나가 돈이 되는 것이 쉽고, 쉬웠지만 소중해지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조용히 달달한 스위트룸에서 샤워하고 밤 맥주에 깊은 잠을 청해야겠다.’

몸에 치중되지 않은 삶. 그리고 선명한 정신적 기호와 행복의 길. 브라보.


[너희은행 **2136 나종련계좌에 잔금 3천만 원 입금]


집의 대출을 다 정산하고 나니 3천만 원이라는 큰 여윳돈이 생겼다.


3천억이 생긴 들 이만큼 든든할까.


30만 원을 쓴 그날 밤은 참 포근했다. 밤의 불빛들이 자장가를 불러줘서 행복했다.


잠은 2시간 정도 잤지만 푹 잤다. 그래서 또 아침이 와도 나는 잠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조식도 먹을 수 있었다. 뭐든지 긴급인 인생이라 호텔조식을 먹고 나니 낮술이 한잔 땡겼다. 레트로 느낌으로 대패삼겹살에 밤 막걸리를 시원하게 한잔하고 싶었다. 누렇게 변해버린 벽지가 있는 단칸방이면 뮤직비디오 느낌일 것 같다. 안 쓰는 이면지를 잔뜩 넣어두는 서고 같은 지하창고도 좋다. 낡은 카세트로 김광석 노래를 전곡재생 시킨다면 멋지겠지.


“커피 더 드릴까요?”

“.. 괜찮아요.”


괜찮아요? 아니었다. 내 삶은 차갑게 돌아서는 반응들 속에서 따스한 말은 어색하고, ‘외상 후 스트레스’에 면역이 되어가고 있었다. 뷔페 접시에 대구살튀김, 토스트, 그리고 버터가 있었다. 블랙커피와 시리얼과 우유도 있었다. 크고 동그란 접시를 검지로 뺑 돌렸다. 네모난 창 밖의 도시 풍경은 말하고 있었다.


‘넌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


나의 역사 중에 중요한 사건들이 눈앞에 번쩍였다. 우리들의 대학시절, 2학년이면 어학연수를 가는 분위기였다. 나도 미국 보스턴으로 어학연수의 꿈을 꿨는데, 돈이 생각보다 잘 모이지 않아서 미루다가 결국 졸업직전이 되었다. 방학 동안에 귀남이는 귀한 아들이라 캐나다로 어학연수도 가고 대만 교환학생도 갔는데, 난 마트에서 매일 박스 나르고, 빵공장 알바를 해도 돈이 모자라서 어느 순간 그냥 아르바이트보다 나은 일이면 되었고, 인공호흡에 가까운 직장이라도 나를 살게 하면 되었다.


그동안 나의 젊음에 대해 적정가격을 받은 기억이 없었다.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젊다는 것에 취해, 쉽게 떨이로 내놓은 것이었다. 도시풍경이 애잔하게도 내일 죽는다는데, 미친 짓이 떠올랐다.


나의 마음상태는 빈털터리였다. 취업하기에도 깡통이었다. 스펙이라 말할 번듯한 게 없었다.


지방대 컴퓨터공학과 4년 졸업에 토익 700점. 지금 나이라면 중소기업에도 살짝 애매했다. 사실 컴퓨터 자격증만 있고, 뛰어난 능력도 없고 성격도 사회생활에 탁월한 편은 아니라서 앞으로 버틸 자신조차도 없었다.


취업이 힘들다는 현실에 대고, 시간이 흐르면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현실 부정은 자존심이 많이 상하는 일이었지만,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보다는 조금 쉬웠다.


‘놀아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