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 런던
다섯 마리의 오란다는
내가 소설책을 꺼낼 때쯤
네모난 어항에 들어갔다.
그 어항이라는 세계는
돌과 오란다, 물 빼고
모두 가짜였다.
그 돌과 오란다도
내 세계에서는 가짜일까.
향기도 없는 것이 지독했다. 처음에는 ‘구남과의 이별’이 답이 아니었다. 내가 생각했던 '조건의 취향'때문에 이런 남자를 또 만날지도 모르니까. 한결같은 취향은 늘 치명적이었다.
구남과 헤어지고 후회가 되기 시작한 즈음이었다.
오란다들의 반항기가 시작되었다. 탁한 물부터 시작했다. 지저분해 보이는 것들을 조금씩 정리했고, 환수도 했다. 정화에 좋다는 것들을 어항에 넣어놓았지만, 정말 좋은지 오란다들이 말해주지 않았다. 내가 주는 밥을 먹지 않았고, 배가 병에 걸린 듯 불룩했다. 내가 쳐다보면 외면했다. 4면에 얼굴을 바짝 붙였다. 빼-앵 따라가 돌려가며 계속 쫓아갔다. 홱- 고개를 돌려 똑바로 눈이 마주치면 뻐끔거리는 것이, 요상했다. 그 작은 입으로 십 원짜리 욕을 해대는 것 같았다. 거절당한 기분에 웃으며, 욕을 맞받아쳤다.
결국 다시 전부 분해했다.
새 수세미를 꺼냈다.
온 힘을 다해서 문질렀다.
변함없었다.
블로그를 검색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죽을병이거나 임신이거나.
“헉!”
며칠 뒤, 흰 알들을 어항이 빽빽하도록 낳았다. 오란다들은 한결 가벼운 몸으로 밥을 야무지게 씹었다. 그녀들의 알은 손끝만 닿아도 흩날릴 것 같았는데, 딱 달라붙어서 손으로 알을 떼어야 했다. 낱알의 생명을 손에 닿는 순간, 알이라는 존재가 징그러우면서도 걱정되었다. 부화가 쉽지 않겠구나, 그래도 낮은 물과 조금의 약품처리라면 가능하겠지 생각했다. 수정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기 전까지.
그들과 같았다. 진실이 따로 있겠지.
사춘기가 아니라 산란기일지도 모르는 오늘과 어제. 목표는 단순하고 작을수록 좋다. 기대가 없는 대신에 희망도 없다. 실망은 없지만, 극도의 행복을 누리기 어렵다. ‘좋다.’라는 감정을 상상했다. 다른 존재에게 바라는 것은 어리석었다. 알면서도 시전 하는 것은 인간이라서 그렇다고 하자. 일단 분해하자. 바닥에 풀어헤쳐놓고 시작하자. 전부 잘될 수 없으니까, 최소한만 힘들게 시작하자. 당연하다고 생각하자. 골똘히 의미를 따지는 데에 시간낭비 하지 말자. 나 자신을 꺼내어 정면으로 마주했다. 하나씩 따져 물었다.
벅차올랐다. 가슴에 맺힌 망울이 터져야 끝날 싸움이었다. 부푼 채로 멈췄던 모든 것들이 한 번에 시원하게 터졌다. 단지 입으로, '화'와 함께 상처가 될 만큼 날카롭게. 공기를 타고, 열기를 타고, 감정을 싣고. 나에게만 남아있는 모든 것들이 흐트러졌었다. ‘직업의 유무’가 ‘돈의 유무’보다 중요했었다. 여태 위태로웠다. 어떤 면으로 삶을 끝낼 것만 같았다. 싸우는 것만큼이나 버거운 감정이 역류했다.
‘내 모든 것을 부정하는 시간'의 머리채를 잡고 계단으로 밀었다. 좀비처럼 밀어냈다.
내가 글을 사랑해도 맞춤법을 잘 모르는 것처럼,
돈은 벌고 싶지만 재테크를 공부하지 않는 것처럼,
커피를 사랑하지만 에스프레소에게 친절하지 않는 것처럼.
앞으로도 선택적으로 행동할 것이라 다짐했다. ‘스스로에게 인정받아야겠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잘하는 것들을 해야겠다. 행복할 수 있을 만한 것들을 해야겠다.’ 공상과 이상이 맞물리는 그래프를 그렸다.
출발하자.
스스로에게 생각하는 시간을 주고 싶지 않았다. 결론에 충실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비행기에 오를 생각 하니 겨드랑이 밑이 파르르 떨렸다. 집에 회사를 그만뒀다고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는데, 어항을 거실 탁상에 놓았다.
“영국에 가려고.”
-"영국? 경리도 출장 가니?"
엄마는 몇 달 만에 갑자기 찾아와서 대뜸 하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다 정리했어."
-"또 도망가는 거야?"
아빠는 놀라면서도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엄마는 서랍에서 파스를 찾느라 분주했다. 또 머리에 붙이고 ‘내 팔자야..’ 하겠지. 늘 그랬지만 얼굴의 철판이 닳을 만큼 닳아서 서러웠다. 나만 알 정도로 눈물이 고였다. 얼른 여권만 챙겨서 뛰쳐나오듯이 나왔다. 아빠가 날 막아섰다. 무슨 일인지 묻지도 않았다.
“타고 가.”
혼자 가겠다고 했지만, 꼭 태워줘야겠단다.
“아빠 실망시켜서 미안해..”
- “넌 네가 다 알아서 하는 어른이잖아.”
“차 태워줘서 고마워요.”
-“멀잖아. 영국서 오는 날 아빠가 와서 기다릴게.”
“그냥 내가 주차해 놓고 정산하면 되는데... ”
-“몇 달 동안 장기 주차하면 주차비 많이 나와.”
탁구 치듯 대화들로 ‘아빠에게 나는 미안하다, 아빠는 나에게 괜찮다.’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공항 입구에 들어서자 비상깜빡이를 켰다. 오른쪽 불이 희미해져 있었다.
“얼마 없어. 밥 굶지 마.”
아빠가 비상금으로 모아둔 19만 원을 기어코 손에 쥐어줬다. 마음만 받겠다, 손을 밀어냈다. 아빠의 눈빛에 마음이 내려앉았다. 딸에게 꼭 줘야겠다, 했다.
멀리 손을 흔들다, 얼른 차 빼 쇼, 하는 다른 사람말에 저 멀리 가는 아빠의 차 뒷모습을 봤다.
오란다 다섯 마리, 작은 차, 그리고.. 가진 작은 모든 것들을 향한 마음을 공항까지만 갖고 가려했다.
뒤돌아 걸으며 잊으려 애썼다.
덜컥 결제해서 짐을 싸고 비행기에 올랐다. 천천히 의미를 부여했다. 영어권 나라 중에 영국을 선택한 건 충동적이었다. 사진들을 찾아보다가 남들이 물으면 기차와 빨간 2층 버스 때문이라고 하기로 했다. 김광석에서 시작해서 호돌이 시절까지 거쳐, 내가 원하는 과거로의 여행까지 샅샅이 뒤진 결정이었다.
비행기도 현실이 있었다. 저렴한 비행기를 고르느라 홍콩으로 경유했다. 13시간 정도 걸린다는데 시차가 있으니까 네 끼를 먹었다. 낮술 마시러 가는 늦깎이 어학연수생은 토익단어책을 펼쳤다. 비행기에서 보며 레벨테스트를 걱정하고 있었다. 'romance'단어에서 멈췄다.
내게 비행기란 ‘낭만’이다. 구남과 제주도를 갔을 때에는 ‘사랑과 낭만’이었다. 2박 3일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짧게 느껴졌던지. 그때 구남이 기념으로 립스틱을 사줬었다. 분홍색이었다. 홍조가 있는 볼때문에 분홍립스틱을 바르면 80년대로 돌아간 것 같았지만, 구남의 장단에 기분을 맞췄다.
“나는 분홍색이 여성스럽고 좋더라.”
머리를 쓰다듬으며 했던 구남의 말이 생각났다. 이렇게 좋은 순간에.
비행기의 창문은 언제나 작았다. 검지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작은 창에 손톱으로 자판을 두드리듯 타닥 소리를 냈다. 구름 옆으로 비행기가 지나간 자리가 보였다. 눈이 따라가며 머리가 쉬고 있었다. 토익단어책 제일 뒷부분 빈 공간을 펼쳤다. 연필의 사각거림이면 충분했다. 완성이 되지 않는 헛것이어도 상관없었다.
"어떤 것이든 지나가면 표시가 나고, 그 표시는 언젠가 사라지고, 다른 것들이 또 지나가겠지. 지금의 감정까지 모조리 들고 가서 영국에 닿는 순간 흘려버려야겠다."
런던 공항에서 숙소로 오자마자 숙소에 짐만 두고 어학원으로 갔다. 걱정은 사실이 되었다. 파란 눈이 왜 그렇게 겁났을까, 하나도 대답 못했다. 결국 1단계를 받았다. 전 재산을 털어서 13시간을 날아왔는데, 돌쟁이가 배우는 ‘Hi'부터 배워야 하는 수준이라니, 또 한 번 자격증의 악몽이 밀려왔다.
'영원한 낙방자'
학원에서 준 레벨테스트 결과용지를 들고 힘없이 걸었다. 런던역까지 닿았다. 화장실에 가서 울고 싶은데, 입장료도 내야 하고 화장실 휴지도 돈 주고 사야 한다. 감정적인 순간에 돈을 먼저 떠올리는 모습에, 어깨가 축 쳐졌다. 정말 대졸멍청이, 한국멍청이, 똥멍청이다.
‘으앙’ 자리에 주저앉아 발을 동동이며 크게 울어댔다.
돌쟁이 친구아들이 배고파서 우는 냥일까, 그저 찰싹대는 수돗물 소리정도일까. 신경 쓰지 않았다. 여긴 나를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
“헤이 밤비노, 왜 울어? 도와줄까?”
런던 길에서 처음 말 걸어준 외국인이었다. 그의 어깨에 기타 가방이 눈에 띄었다. 갈색 머리에 회색 같기도 한 파란 눈. 두 번째 단추까지 풀어헤치고 짝다리를 짚고 손을 내밀었다. 발음이 영락없이 영국드라마의 ‘영피플(young people)’었다.
“아임 오케이. 유캔 고. “
괜찮다고 말하며 눈물을 닦는데 콧물까지 났다. 구구절절 말하고 싶었는데, 짧은 영어실력. 그저 부끄럽고, 어색한 관심을 멈추고 싶었다.
“고등학생? 돈?”
손으로 온갖 동작을 해댔다. 누가 가져갔냐고 하는 건가? 30분 동안 손짓 몸짓으로 대화를 하다가 그가 먼저 웃고 나도 웃었다. 그와 한참 웃다가 그는 손목시계를 봤다. 그의 가늘고 긴 손가락이 유난히 하앴다.
“가야 된다. 기차.”
그 두 단어 이후에 크게 한 단어를 말했다. "브락-은"
나중에야 영국인들의 't'는 묵음에 가까운 발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는 무슨 말인지 제대로 이해를 못 해서, what을 재차 외쳤다. 그러자, 그가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나는 브라이튼에 살아. B-R-I-G-H-T-O-N!”
13번 전광판에 ‘도착 : 브라이튼’을 엄지로 가리키며, 내 눈을 정면으로 바라봤다. 심장이 크게 요동쳤다.
“아하, 브라이튼. 쌔.. 땡큐베리머치!”
-“마이 플레져, 럽”
가볍게 악수하려고 손을 내밀었는데, 내 왼쪽 볼에 ‘쪽’ 소리를 냈다. 자연스러운 척하려 애썼지만, 얼굴은 붉어졌다. 울어서 눈, 코도 빨간데 귀까지 빨개졌다. 손등을 얼굴에 갖다 댔다. 양손으로 가려도 가려지지 않았다. 오히려 뜨거워지고 있었다.
그가 설핏 미소 지었다. 뛰어가는 뒷모습을 끝까지 봤다. 그가 탄 기차가 멀어지고서야 얼굴이 다 식었다. 숙소로 되돌아갈 기운이 났다. 비가 오기 시작했다. 런던이라는 도시에 비가 온다고 달리는 사람은 나, 하나였다. 그제야 영국의 비냄새가 코끝으로 닿았고, 처음으로 시원하게 느껴졌다.
좌절은 빨리 회복되었다.
걱정과는 달랐다. 재시험을 통해서 어느 정도까지 레벨이 높게 올랐다. 첫 레벨을 낮게 받아서 다행인 걸까. 한국인친구를 못 사귀었다. 한국인들은 대체로 높은 레벨에 있었다. 낮은 레벨에는 스위스, 스페인, 독일, 일본, 대만 이런 친구들이 가득했다. 왠지 한국대표가 된 기분이었고, 지고 싶지 않았다. 세계의 친구들과 함께 클럽에 가고 데킬라를 잔뜩 먹어도 숙소에 와서 책을 폈다. 고3 때도 안 하던 밤샘 공부를 거의 매일 하고, 다음날 수업시간에 우연히 기억난 것처럼 달달 외운 단어들을 써먹기도 했다. 1등일 수밖에 없었다.
빠르고 깊게 나에게 집중하는 기분이 들었다. 목표를 세우진 않았지만, 영어레벨은 쉬지 않고 올랐다. 원래 머리가 좋은 것처럼. 다 놀고도 밤을 새워 도둑 공부의 효과였다. ‘Clever Korean’(똑똑한 한국인) 이 내 별명이었다. 살기 싫어서 잠깐 고향에서 도망 나온 도망자인데, 괜히 별명에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있는 듯 가슴이 활활 타올랐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다. 돈 쓰는 건 정말 쉬웠다. 몇 년 동안 모은 돈이건만, 1년 연봉가까이 써간다. 런던은 도시였다. 붐비는 도시문화는 말 그대로 반짝였다. 여기 있다는 것만으로도 10평 남짓 내 인생에 영국산 찻잔을 잔뜩 사들인 기분이 들었다. 사치스럽고 호화로웠다. 도시 전체는 묵직한 광이 나는 왕관이었다. 미술관과 박물관, 백화점도 구경할 게 많았다. 눈은 꿈을 책처럼 펼친 듯했지만, 확실히 두 발이 영국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도시의 문화 속에 내가 이방인이라는 것조차 무뎌지기 시작했다.
영국에서 영어공부 한다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질 때쯤이었다. 벤치를 찾기 시작했다. 밤에 술을 마시러 나가지 않았고, 밤새어 공부하지 않았다. 더 이상 연기하지 않았다. 가장 좋아하는 곳은 센트럴파크였다. 인천에 가면 사계절이 더 멋있는 공원이 있다는 걸 알지만, 영국에 있기 때문에 센트럴파크는 그냥 공원이 아닌 낙원이었다.
평소대로 숙소에서 나와서 스타벅스에서 1파운드 오늘의 커피를 하나 사고, 영자 신문을 팔에 하나 꼈다. 12월이 가까워오지만, 한국 있을 때처럼 코트는 아직 입지 않았다. 체크 남방 위로 갈색 재킷을 걸치고 진을 입었다. 그 위로 검은 머플러를 걸치고 진회색 모자를 썼다. 별안간 비가 오는 일이 잦아서 ,우산을 펼 겨를도 없이 비를 맞을 때가 많았다. 쓰다 보니 편하고 심적으로 안정감이 들었다. 영국귀족들이 쓰던 탑햇(Top hat)보다는 부드럽고, 버킷햇이라기엔 빳빳한, 영국에서 흔하디 흔한 모자를 썼다. 그런 내 모습이 너무 익숙해진 날이었다.
커피를 홀짝이며 센트럴파크로 향하는데 어느 여자 외국인 한 명이 두리번거리면서 울고 있었다. ‘지갑을 도둑맞는 일은 흔하니까.’ 라며 커피를 한 모금했다. 그러다가 예전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도움이 필요하냐'물었다.
그날 그냥, 그 브라이튼 남자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 후로 며칠 동안 계속 생각했다. ‘브라이튼!’
긴 호흡,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