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퇴사하면서 차마 버리지 못한 것.

바이 바이(bye-by)

by oh오마주


바이 바이(bye-by)


간다고 밀어내도

붙잡는데도 간다.


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중요해서 간다


잘 가라고 눈인사

고맙다는 거짓 웃음


있어도 많은 이들 중 하나이고,

없어도 많은 이들 중 하나였다.








이야기하고 싶었다. 시간이라는 게 알아서 흘러가는 건데, 스스로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주어진 시간을 꽉 채우지 못해 늘 아쉬웠다. 결국 미련들도 추억으로 포장했다.


27살이라는 나이의 흙이었다. 흙덩이에서 인삼은 캐면 고이 모시지만, 흙은 탈탈 털어낸다. 입에 넣어야 하니까. 그런 흙과 같은 부수적인 것들에 스스로 썩어가고 싶어 했다. 살짝 바람 든 무처럼, 물기에 젖은 양파처럼.




회사를 그만두고 방구석에 박힌 지 다섯 달이 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실패자의 길을 '열심히 걷는 것'만 같다. 잘되라고 마음은 기도 중, 상관없이 입은 늘 열일. 행동반경이 5평 안팎이라 예상은 했지만 10Kg은 너무 쪘다. 질끈 묶은 머리 사이로 새치가 삐죽 나왔다. 미용실에 안 간 지 일 년도 더 된 듯. 거울 앞 수분크림 뚜껑 위로 뽀얀 먼지가 켜켜이 쌓였다. 침대 위에 작은 상, 컴퓨터 배경화면이 보였다. 마카롱과 카푸치노는 나의 최애다. 그러나, 맛난 것들도 위로가 되지 않는 날이었다. 왜냐, 유일하게 노력하는 자격증은 또 떨어졌다. 취업이 잘된다던 세무자격증은 따야만 취업이 잘되는 것인가. 강사님이 열심히 하기만 하면 중학생도 딸 수 있다고 했는데, 나는 '대졸 똥멍청이'가 확실했다. 대충 했나? 미세하고 사소한, 고작 자격증이라고 방금 말했지만 또, ‘이 아줌마 왜 이렇게 사나.‘ 한숨 쉬었다.


냉혹한 연나이 27세.


선이는 나에게 ‘회사-환승’ 하라고 했었다. 영희는 끊고 맺음은 치킨 시킬 때나 쓰라고 했다. 현정이는 그냥 그러지 말라고 했다.


그날이 매달 5일이었던가. 이미 저만치 '안녕'해버린 월급생각에 아쉬웠다. 그만둘 때는 당나라 회사였지만, 다닐 때는 회사님이셨다. 새벽 4시면 월급이 들어왔다. 월급날 아침이면 여름장마에도 마음이 쾌청했다. 잠시나마 내가 산초 판사인 줄 알았다. 수지타산에 빠른 소작농 시중이 딱 내 역할 같았다. 심지어 나는 영리한 일꾼인 편이라는 착각에 쇼맨십을 발휘했다. 내 자리에서 컴퓨터 자판을 빠르게 칠 때면 괜스레 뿌듯했다.


그 일은 별안간, 순식간에 닥친 일이었다.


아무래도 나는 돈키호테다. (동생 귀남이의 별명이 ‘당-나귀남’이다.) 변하지 않는 사실들 중에서 늘 변하고 싶은 나는 나귀남의 누나 돈키호테다. 값싼 정의감으로 현실감 없이 기상천외하게도 어렵게 들어간 회사를 정의롭게 퇴사한 나종련호테.


또 별안간 순식간에.


나의 둘시네 공주, 구남친. 구 남자 친구이니까 그를 구남이라고 하자. 구남은 업무상으로는 날카롭고 까칠하지만 인간적으로는 배울게 많은 선배였다. 엄마와 겹치는 듯이 잔소리를 하는 것, 한 번씩 본인이 내 성격을 아주 잘 안다고 말하는 것, 사소한 그런 것들이 유일하고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거슬리기는 했다. 그래도 구남에게 더 다가가고 싶었다.


구남과의 남녀사이 시작은 회식 후에 단둘이 했던 술자리 이후 ‘원-나잇’이었다.

다음날 아침에 구는 자고 있는 나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슬피 우는 아침 알람소리도 우리를 방해하지 못했다.

“아침밥은 따뜻한 국밥이 좋겠지?”


대답하지 않았다. 젊음의 탐닉이 아름다웠고, 어젯밤이 싫지 않은 정도의 감정이었다.


그냥 그렇게 시작했다. 이후로도 구남은 사귀자고 정확하게 말한 적은 없다. 좋았던 기억도, 그렇게 싫었던 기억도, 유쾌했던 적도 없었다.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것들이 싫지 않게 자연스러운 사람..


구남에게 조금 더 다가가고 싶었다. 여름에는 계곡에 텐트를 치고 밤새 술을 마시고, 가을에는 인천 앞바다에 꽃게탕을 먹으러 가기도 하고, 겨울에 눈이 엄청 쌓인 공원에서 손잡고 걷다가 포장마차에 어묵 몇 꼬치를 먹으며 코를 훌쩍였다. 가까워지는 우리가, 좋았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모텔을 가본 적 없다, 우리가 가본 곳 중 가장 어두운 곳은 영화관이다.’라고 했지만.. 알프스, 뉴욕, 올림푸스까지 5만 원짜리 여행을 여권도 없이 갔다.


내가 소름 끼칠 정도의 외모, 재력, 하다못해 작은 귀여움이라도 내재되었다면 이용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푸석한 연애에 그에게 날 만나는 것은 ‘사랑’이외 이유는 없었다.


그런 ‘구남’이었다.


구남은 내 선택을 적극적으로 응원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 육체적으로 많은 밤을 보냈고, 눈물과 애정으로 서로를 위로해 온 시간이 있었으므로 내 편이 당연했다. 구남은 생각과 달리 표정관리를 하지 못했다. ‘그것’을 생각해 본 적은 있었지만, 구남이 생각하는 ‘그것’까지 미처 생각하고 행동하지 못했다.


‘결혼!’


"조금만 참지... 임신하면 그만둬도 되잖아. 이제 와서 이직이 되니?"


우리의 3년 연애의 끝, 결혼을 생각하고 있었다. 상의 없이 쉽게 직장을 그만둔 내가 얼마나 미웠을까. 구남은 나라를 잃은 표정을 지었다. 독립투사가 되어 나를 처치할 듯했다. 그의 얼굴은 점점 붉어지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울 것만 같았다. 생각했던 반응이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괜찮다, 말하는 ‘구남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었다.


서로의 지지대라 생각했다. 선전포고를 밑바닥에 깔고 시작하는 구남과의 일방적인 대화. 우리의 사랑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내 얼굴도 붉어지고 있었다. 계획 따윈 없는 내가 당당한 것이, 구남에게 거짓말을 들킨 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공감이나 위로가 아닌 원망이었다. 전개가 예상 밖이라, 질문에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질문도 아니었다. 가족이라는 틀로 들어가려면 최초에는 직업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망각했다.


돌이켜보면 구남과 사귀게 된 것도 그의 돌직구 때문이었다.


“후배님, 일하면서 힘들어도 웃는 모습이 아주 예뻐. 특급 칭찬해.”


그런 구남이었다. 이런 정확한 감정표현은 어쩌면 당연했다. 말릴 사이도 없이, 일방적으로 직장생활을 끊었다. 변함없이 지금이 유지되길 바랬을 것이다. 둘이 벌어서 신혼살림할 생각을 해왔다니. 우리 둘이 월급이 얼마고, 둘이 생활하면 얼마나 쓰고 모을지.. 은근하게 말해왔던 것들이 생각났다. 구남의 목소리는 격앙되어 ‘솔’에서 ‘시’까지 올라갔다.


“퇴근 후에 다시 이야기하자.”

퇴근 후에도 구남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았다. 결론이 난 상황에서 다시 만나도 서로 할 말이 더욱 없어졌다. 가끔 만나도 관계 후에는 잠을 자거나 진지하지 않은 이야기들만 오가고, 정적이 흐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구남이 회사에서 안 좋은 일이 있기만 하면 화를 억누르며 꾹꾹 눌러 말하기 시작했다.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입을 크게 열지 않았다. 더 이상 나와의 미래를 꿈꾸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바뀌지 않는 현재에 무참히 우리 관계를 부숴가기 시작했다. 사회생활이 뭔지 제대로 모르는 아이 대하듯이.


구남은 가속도를 내어 진도를 빼기 시작했다.


곧 결혼할 줄 알았는데, 취업준비는 고사하고 배알도 없이 구슬로 팔찌나 꿰고 즐겁다고 온라인에 사진이나 찍어 올리는 내가 어처구니가 없었을 것이다.


“수제 팔찌는 온라인 판매하면 돈이 되려나?”


시기적으로 취미보다는 직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나 보다. 무례하다는 생각을 할 틈도 없이 대화가 이어졌다. 밥을 먹으며 ‘사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활동이 거의 없는 블로그인데 계정을 40만 원에 사겠다는 쪽지를 받았다. 사기니까 당연히 안 팔겠다고 했다.


“팔지! 왜 안 팔았어? 지금 몇 만 원도 아쉬울 땐데...”


대화는 늘 구남의 ‘왜?’로 시작해서 ‘너랑 대화가 안 된다.’로 끝났다. 늘 다투고 헤어지고 자기 전에 의무적으로 ‘잘 자, 싸우지 말자.’ 하고 잠들었다. 구직활동이 3개월이 지나가면서 구남은 늘 바쁘기 시작했고, 그런 그를 기다리는 모습이 싫어서 나도 바쁘게 살았다. 집에서 먹고 자고 원서 쓰고…


구남과는 정확히는 작년 커플 연말모임에서 헤어졌다. 가을에 커피숍에서 괜한 일로 싸우고 연락도 없다가 한 달 만에 만났다. 옆자리에 앉았는데도 쳐다보기도 힘들 정도의 거리감이었다.


여러 커플들 사이에서 술잔이 오가고 자랑 같은 험담들이 이어졌다.

남편을 옆에 앉혀놓고 돈도 잘 벌어오고 애들한테도 잘하는 좋은 남편인데, 신었던 양말을 세탁실에 놓지 않고 안방 화장실 앞에 차곡차곡 쌓아 수집한다며, 찡끗 눈웃음 지었다. 자랑인지 앙탈인지 구분이 잘 안 되지만, 구남은 ‘신나게’ 씹어대는 친구 부인과 ‘신나게’ "제수씨 한잔 하시죠!" 하며, 술잔을 총알처럼 탕탕 부딪쳤다.


다들 회사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서 혼자만 어색해지기 시작했다.

내 앞의 안주만 깨작거렸다. 구남은 연거푸 술을 들이켜다가 만취해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우리 둘만 아는 사실로 진실게임을 시작했다.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냐고! 어느 누가 성질이 없어서 가만있냐? 사회생활이 다 그런 거잖아! 왜 혼자 그러는데? 그걸 왜 못 참는데?"


구남 안에 있던 내가 나왔다. 그리고는 나의 숨은 껍데기를 확 벗겨 보였다. 모임에 있던 사람들 모두 당황해 얼굴을 붉혔지만, 틀렸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이미 구남은 나의 퇴사로 인해서 상처받고 화나 있었다. 상처 때문에 사랑이라는 어설픈 조건으로 현실을 함께 나누기엔 의리조차 남지 않았던 것 같았다.


"야, 너희 회사에 계약직 경리 자리라도 없냐? 좀 꽂아줘!"


무지막지한 공격자의 자폭 한방에 숨이 멈추고 화생방 공기들에 명치가 답답했다. 내 얼굴에 주름이 여러 겹으로 겹치며 궁상맞은 노인이 된 느낌이 들었다. 선전포고는 이미 해왔던 것인데, 꽁꽁 묶인 채 급습당한 듯 반격 한 번 못했다.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혼자 핑크색 원피스로 연말분위기를 냈나 보다. 80년대 읍내 나온 산골처녀의 향기가 나에게서 느껴진다. 방금 보따리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홀딱 다 빼앗겼다. 앞으로가 막막해서 ‘허’ 소리만 낼뿐 눈물도 나지 않았다.’


그 정도의 느낌.


이런 기분이 처음 든 것은 아니었다. 단지 지난 순간에는 직업이 있었다. 그게 어떤 죄목으로 불릴지 모르겠지만, 결국 ‘결혼을 가로막은 죽일 년’이 된 셈이었다.


‘적당히 다듬어진 것’에 대하여 이야기 나눴던 순간이 떠올랐다. 중간쯤 공부하는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했고, 주말에는 쉬면서 야근 없이 월급을 중간정도 버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했고, 음악이나 미술, 체육을 전공하고 최소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사람들, 혹은 학원강사,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말했다. A급 스타가 아닌 사람들이 아니면 반짝이지 못하는 것을 한탄했다. 우리는 학교 때 중간정도의 성적에 주말에도 가끔 근무하며, 월급은 중간보다는 적었다. 물론 중간만 있는 것도, 양끝만 있는 것도 아니다. 사회학과를 나온 구남은 영업일을 하고 있고,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나는 경리일을 했다. 완벽하지 못하지만 적당히 다듬어진 것만 같다. 우리는 원래 보석인 사람들과 같은 원석이었다는 전제하에..


“최고가 아니면 할 필요 없다. 공부도 일도 예체능도...”

구남은 격렬하고 성급하게 결론 냈고, 이에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었다.

“그렇지 않아?”


다시 확인하는 구남에게, 무슨 생각이었을까... 정말 화가 났다.


“조연으로 계속해서 살아가도, 내 역할이 있다는 게 다행인 거 아니야?”


현재에 만족하며 살아가겠다는 나의 말들에 구남은 한심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주식창을 열면서 자리를 일어섰던 그 모습이 기억났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구남은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본인도 행복하지 않은 채, 웃으며 내 마음을 갉아먹고 있었다. 그때처럼 구남은 나를 한심하게 생각하리라, '농담인데 어떠냐'는 말은 물어보는 게 아니라 '괜찮아야 한다고 협박'하는 것이었다. 행복해도 되잖아, 즐거워도 되잖아, 울지 않아도 되잖아. 본인을 대신해 인위적으로 즐겁게 만들어줄, 기대게 해 줄 그런 협박이었다. 그런 하찮은 ‘따위’의 취급을 당하며 구남을 ‘따위’로 취급하지 못하는 내가 싫었다.


술을 핑계로 커밍아웃해 버린 구남에게 심지어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우리는 더 상처받기 전에 밑바닥을 확인했고, ‘시간을 갖자.’는 말로 서로의 무게를 내려놓았다. 조심스럽게 서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헤어졌다.


‘직업이 없는 채로 결혼해서 가족이 되고 수순대로 아이를 낳았다고 치자.

갑자기 구남이 직장을 잃고 경제적으로 위태롭다. 결국 놀고 있다고 치자.

무능력한 나를 나는 견딜 수 있을까?

그렇다고 구남이 갑자기 타고난 정신력이 생길까?’


경험에서 알게 되었다. 그리고 적당히 무시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반복적인 짧은 경험들은 단순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단순한 삶이 아니었다면, 이 또한 나 같은 상대방을 다루는 방법이었으리라. 결국 희미하게 남는 것은 자괴감이었다.


‘불행하게 만든 것은 나였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나를,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 도저히 할 수 없는 결혼이었다.

결혼을 생각하고 연애하는 사람과 사랑하는 척할 수 없었다.



퇴사하면서 구남을 버리지 못하고, 그런 그를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