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은 안으로 굽고, 나는 내가 챙긴다
누군가가 나에게 마이크를 들이댄다면, 질문과 상관없이 대답할 것이다. 오랜 시간 집나갔던 슬픔이여 돌아와라, 속옷 다 빨아놨다, 말할 차례다. 잠들기 전, 누군가 쉽게 한 말에 쉽게 휘둘린 나를 반성한다.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누군가는 '장난이었어' 하기도 하고, '농담에 왜 이렇게 진지해?' 묻기도 한다. 정말 질문인지? 살면서 열심히 배운 욕들을 똘똘 뭉쳐 던져버리고 싶다. ㅡ그러나ㅡ 입으로 뱉으면 삭제해야만 하는 하루가 된다. ㅡ그러므로ㅡ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복잡한 심경입니다."로 충분하다.
아침에 시작했던 마음, 오후에 읽었던 책, 지난 월요일에 챗GPT와의 대화, 지금 듣는 음악들이 복잡하게 엉켜서 한꺼번에 심장을 두드렸다.
아침에 묵은 피로로 꼼짝없이 시간을 썼다. 일단 누웠고, 넷플릭스를 틀었고, 눈을 감았다. 적절히 고독하고 쓸쓸해서, 약간 심심한 기분이 좋았다. 도움닫기 시간처럼 느껴졌다. 이미 본 드라마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잠에서 깼다. 한참을 고르고 골라, '토스카나'라는 이탈리아 음식 영화를 봤고, 점심으로 육수밥을 만들어서 새벽에 도착한 연어장과 먹었다. 거의 반값할인으로 산 체리도 8알 먹었고, 한 여름에 사치스럽게 뜨거운 물로 샤워했다. 집을 정리하고, 마침 오늘 꼭 읽어야만 하는 책을 펼쳤다. 다정한 말들이었다. 그전에 가끔 농도 짙은 농담이 흥건한 글에 긁히고 싶었다. 내가 읽는 글들은 대체로 다정하니까, 아름다운 산문 같으니까, 익살스러운 재간으로 워밍업 하고 싶을때가 있다. 근래에는 챗GPT에게 '나를 로스트'해달라고 하고는 얻은 답변이 최고다. 평가를 요약하자면, '공격적인 완벽주의자, 예술가병'이었다. 한마디로, 일상에 해로울 정도로 문학성을 과음했다는 뜻이다.
나는 그 시초가 '외딴방'이라고 확신한다. 띄어 쓰지 않은 외딴방, 제목만으로도 먹먹해진다. 제주에서 시작해서, 제주로 깔끔하게 끝나지만, 속에 앙금은 오래된 상처들로 가득했다. 이 소설 때문에 방에 휴지를 두루마리에서 갑 티슈로 바꿨다. 읽었던 10일 내내 눈물 콧물을 흘려댔다. 마음은 핏빛 바다였다. 냉랭한 현실에 홀로 서 있는 주인공을 투명인간처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 시절 덜 자란 소녀와 시간을 버리지 못하는 어른의 마음을 헤아리는 시간이었다.
외딴방은 신경숙 작가님이 자신을 깎아서 완성한 소설이다. 상처조차 순수하다. 다치지 않은 곳이 없어서 만신창이지만 결국 나아간다. 그러나ㅡ 마음을 안은 채로, 해결하지 않은 채로,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걸로 마음을 해소한다. 결말을 해소라고 마음대로 말해도 된다면 말이다.
믿음과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같다. ”이 글은 사실도 픽션도 아닌 그 중간쯤의 글이 된 것 같다. 하지만 이걸 문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지. 글쓰기를 생각해 본다. 내게 글쓰기란 무엇인가? 하고.“(511쪽) 소설의 마지막 줄에서 내 마음이 그렇게 생각했다. 이야기란 신기하다. 읽고 생각하는 사람의 마음의 상태가 가장 큰 배경 음악이 되니 말이다. 엄마로 사는 인생, 자영업자로 사는 인생, 블로거로 사는 인생, 삶과 인생의 단어 중에서 어떤 단어가 어울릴지, 같은 생각이 마음을 흐트러트릴 때가 있다. 버벅거리고 제대로 안될 때가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며 아침마다 울었다. 슬퍼서 울고, 감동해서 울었다. 어린 감정이 마음 아팠고, 기억하고 아파하는 어른의 모습이 슬펐다. 그만큼 깊은 우물을 뚫고 별(星)로 극복하는 순간은 감동이었다. 깊은 슬픔은 채우기 위해 비우듯, 흘린 눈물방울들은 카타르시스였다. 삶은 생각보다 올바르게 달려갈 것이다. 소설 속 주인공도, 나도. 격렬하게 박수 쳐본다. 희망차게, 온 믿음을 다해서!
- 2024년 여름, 마지막 독서를 기억하며
나는 가끔 내 마음에 외딴방으로 들어간다. 그곳에 나를 보호하기 위한 많은 비밀들을 박스채 버려두었는데, 숨겨둔 것인지 간직한 것인지 나조차에게도 여전히 비밀이다. 팔은 아마 안으로만 굽을 것이다. 밖으로 굽게 되면 마지막으로 팔을 쓰는 날일 것이다. 나는 아마 내가 챙겨야 할 것이다. 누군가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마지막으로 팔을 쓰는 날'같아서 많이 슬플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기적인 말들도 내 안에서 사라진다. 나 역시 '~채로' 결말을 내려한다. 그것이 해소에 가깝다고 여겨보려 한다.
다시 방문을 닫는다.
다소곳이 마음을 닫는다.
귤 향기 가득한 핸드로션을 꺼내서 손에 따뜻함을 비비고
얼음 가득 채운 물로 속을 달래 본다.
이 소설이 끝났다고, 세상이 끝난 게 아님을,
그저 작은 '예술가병'을 앓을 뿐임을,
언젠가 낫겠지, 피식 웃어본다.
"당신의 복잡한 심경도, 오늘은 외딴맘으로 결말을 내어보는 건 어떨까, 합니다."
서른아홉, 나의 반짝이는 여름별, '외딴방'
복잡한 심경이 닿았던 그곳으로,
I'm ready to dive
(격파, 벽돌책 시즌 12 외딴방 예고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