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무소 카드 되나요?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사고판다 : 모순(양귀자 소설)

by oh오마주

"동사무소 카드 되나요?"


칠순은 지났을 법한 고객이 내게 물었다. 최근 가장 크게 내가 현실에서 느끼는 정책은 '소비 쿠폰 카드'다. 정부에서 30억 미만의 소상공인을 위하여, 즉 서민경제를 살리기 위한 방책으로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지원금을 나눴다. 동사무소에서 발급받았으니, 동사무소 카드도 맞는 이야기다. 연세가 있는 고객들은 인터넷 검색을 잘하지 못하니, 동네를 돌며 사용처를 찾는다. 우리 가게에도 직접 찾아와서, 실질적으로 동네 마트(웬만한 큰 마트는 연 매출이 30억이 훌쩍 넘는다)에서 우유나 계란 등을 사야 하는데, 쓸 곳이 탐탁지 않다고 했다. 혼자 있으니, 가장 저렴하고 작은 음식으로 그 서운함을 달래로 들어왔을 것이다. 소상공인으로 섭섭한 마음은 있었지만, 아쉬워하는 마음도 이해했다. 서로를 달래기 위해 다정하게 말했다.


"아번님, 수혜는 국민이 받지만, 목적은 서민경제를 위한 소상공인부흥이라 하더라고요."


그저 '아'하고는 메뉴를 골랐다. 그러나, 섭섭함은 가시지 않는다는 듯이 마른침을 삼켰다.


우리 시대는 코로나 이후로 절묘하게 개인화되어가고 있다고 피부로 느낀다. 지원금으로 은근슬쩍 가격인상하는 개인 사업자를 피해서 편의점이 소비 1위를 했다는 뉴스에 고개를 끄덕였다. 개중 가장 재밌는 기사는 사실 내 주변에서도 일어난 일이다. 어린 학생들은 자기 이름으로 나온 지원금을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부모가 받는 것에 '부당하다'라고 했다.


갑론을박 가운데, 나는 내 삶을 사고파는 광경을 떠올린다. 아이를 서른에 낳고, 출산 6개월 만에 남편의 실직, 그리고 30대를 갈아 넣어 이 가게를 유지하고 있다. 힘든 일과 좋은 일들은 극과 극이라 눈물과 기쁨을 오갔다. 부모 아래 삶이 얕은 바닷가의 파도 같았다면, 지금은 망망대해 깊고 깊은 검은 파도라 눈앞에 바위만 있어도 척박한 소리를 내곤 한다. 앞으로도 40대도 갈아야겠지만, 박박 갈지는 않았으면 좋겠다ㅡ 한숨 내뱉는다. 돈 벌어 좋지만 돈 벌어 싫은 것, 살기 싫지만 그나마 좋은 것. '그래서'와 '그래도'가 함께 하는 삶, 삶의 모순을 찾는다.



모순은 내 일기장과도 같다. 한국 여자들의 일기장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똑같은 상황, 똑같은 마음이 아니더라도, 똑같은 감정들을 무수히 가슴에 품고 산다. 나는 '안진진'보다 '안진진 엄마'에 내 감정을 더 많이 이입한다. 닮은 꼴이며, 표방한다. 어쩌면 이 소설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일지 모른다. 깊게 파고들었을 때, 이 소설의 결말은 무엇일까? '이모의 죽음'일까? '안진진의 결혼'일까? 혹은 '끝나지 않은 인생'일까? 읽을 때마다 바뀐다. 마지막으로 읽었을 때, '엄마를 닮고 싶은 안진진 발악 성공'이었다. 언제 읽어도 잔잔한 그녀의 말들이 줄곧 슬펐다. 엄마와 이모는 쌍둥이지만, 다른 인생을 살았고, 서로를 부러워하는 삶을 살았다. 그러나 제 3자인 딸이자 조카딸의 선택은 경제적 풍요였다.


가능성이 슬픔보다는 기쁨에 가깝다는 이유로,

이 소설의 흐린 결말은 새드엔딩보다 해피엔딩에 가깝다.


이 소설이 더 많이 와닿는 이유는, 유명세나 부드럽게 감정이 교차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만났다. 안진진의 이모와 같은 사람을. 사랑이라 믿은 사람을 만났으니, 이모보다는 긍정적이다. 그러나 그녀는 후회했다. 그녀가 어떤 선택을 후회하는지 보았다. 지금 자신에게 처해진 현실이 아니라, 자기가 버린 것들이 어떤 모양으로 남는지 후회했다. 자신이 행한 나쁜 짓이 누군가를 어떻게 망쳤는지, 자책했다. 사랑이 아닌 목적이란 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고 했다. 자신도 망가질 때로 망가지고, 엎어질 대로 엎어졌지만, '그때가 행복인지 몰랐다, 그게 사랑인지 몰랐다' 후회했다. 자연스레 옅어지는 사랑에 외롭고 힘들어졌을 테고, 끝나가는 여자의 인생을 슬퍼했을지 모르겠다. 사랑의 종류를 나열해 본다. 남녀의 핑크빛만이 사랑이라 할 수 없다. 모든 관계는 최소한 애정으로 이루어져, 마음이 커질수록 다른 빛깔과 다른 이름으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면에서 소설 속 안진진이 분홍빛보다 조금 영롱하고 선명한 사랑을 선택했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나는 안진진이 되어 질문했다.


"왜 다 버리고 새로 시작하지 않았어요? 사랑이 아닌 걸 알았다면, 함께 할 이유가 없어졌잖아요?"

"난 친정도 없고, 이젠 가족도 없어. 돌아갈 곳이 없어. 나를 반기는 사람이 없다고."


173쪽 : 삶은 그렇게 간단히 말해지는 것이 아님을 정녕 주리는 모르고 있는 것일까. 인생이란 때때로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악을 선택하게 만들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모순과 손잡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주리는 정말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안진진이 아니라 주리였다. 나의 치명적인 단점 중 하나는 다른 사람들의 어려움을 '왜'부터 따져 묻는 것이다.


"왜, 시작하기 힘들다고 하는 거야? 하다가 힘든 부분이 있는 건 인정, 물론 힘들다가 어렵다가 비슷한 말이라면 말이지. 그저 시작하는 게 어렵다는 말은 약한 것과 무능한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잖아?"


힘들다, 어렵다, 난해하다, 곤란하다, 시간이 없다, 그런 핑계들을 이해하는 게 참 '힘들다'. 그게 외로움에서 기인할 거라는 생각도 해본 적 없었다. '고독하지만 외롭고 싶지는 않아.'라는 말도 참 이해하기 힘들다. 실제로 외로움과 고독함이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혼자일 시간이 없다면, 함께 일 시간에 늘 기대기만 할 것인가? 이기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나를 사고파는 것과 다르지 않아?"


그런 말에 다다랐을 때, 이해했다. 포기해야 하는 게 완벽하게 각지고 선명할 때, 보석이 아닌 무기로 보이는 반짝거림은 공포가 된다.


어느 겨울, 작별 인사도 없이 그녀가 모든 걸 청산하고 다른 곳으로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의지할 곳 없이 힘들어 매일 울 것 같아 마음이 쓰였다. 최소한 내가 쉽게 뱉은 말들을 '잘못 생각하고 쉽게 뱉은 말들'이라고 말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다신 못 보더라도 그녀가 좋은 기억만 남기길, 생각보다 좋은 일들로 앞으로의 시간을 채우길 기도했다.


288쪽 : 이모는 그렇게 떠나갔다. 이모가 이 세상과 하직하는 사흘 동안 하늘은 내내 음울했고 겨울 끝의 찬바람은 한없이 모질었다. 내 머릿속은 모래를 가득 채운 것처럼 부석부석했고, 먹먹한 가슴 한 켠으로 쉼 없이 이모의 편지 구절들이 흘러내렸다.

진진아, 나 이제 끝내려고 해... 그동안 너무 힘들었거든... 나도 그렇게 사는 것처럼 살고 싶었어... 무덤 속처럼 평온하게 말고.


이 문장을 꺼내놓고 꺼이꺼이 소리를 내며 울었다. 그녀가 살았던 지난 삶들이 내가 동경했고, 내가 살아가는 삶이 그녀가 갖고 싶었던 세상이었을까? 내 마음에 깊게 박힌 마음을 끄집어냈다. 그녀가 포기하고 선택한 것들이 나를 위한 경고처럼 느껴졌다. 내가 체험하지 않고, 마음으로 듣지 않은 말들을 무섭도록 현실에서 보여주는 것이었을까? 미안한 마음이 쿵쾅거리며 나를 다그쳤다.


그래도 그녀 역시 그저 평범한 일상에 살며,

'동사무소 카드 되나요?'라고 질문하였으면 좋겠다, 생각한다.

삶이 아니라 음식이나 옷과 같은 작지만 꼭 필요한 것들을 사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기도한다.


그녀에게 말해주고 싶은 나의 문장, 양귀자 소설가님의 작가의 말이 마음으로 전해지길 기도한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모순 > 296쪽, 양귀자 작가노트 '모순-생의 비밀을 찾아서' 중에서)


나에게도 꼭꼭 씹어 말해본다.


되풀이되는 모순,

그래서ㅡ 더 살만하고

그래도ㅡ 더 살만한

어제였고, 오늘이고, 내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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