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에서 북토크를 한다는 것
나는 독서애호가다. 그러나, 그 누구에게도 직접적으로 독서를 권한 적 없다. 책은 분명 유익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좋아해야 할 이유는 없다. 강요할 이유는 더더욱 없다. 그저, 어떤 책 이야기도 함께 할 준비가 되어 있다. 주변인들은 목적을 가지고 글을 만나는 사람들이 많다. 아들이나 조카는 '학교 수업'을 위해, 누군가는 자격증을 따기 위해 책을 펼치기도 한다. 동네 엄마들은 육아지침서로 공부하고, 남편 친구분은 회사에서 의무적으로 한 달에 한 권 독후감을 내라고 해서 읽는다. 그런 이야기를 들어도 '책 이야기'는 늘 즐겁다.
독서 자체가 목적인 사람은 늘 질문받는다. '그럼 넌 왜 읽어?'라는 질문에 '즐거움'이라고 대답한다.
독서의 즐거움은 태초에 육체 육아가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힘든 시기가 지나고, 지금은 자아를 위한 독서를 한다. 책 읽는 워킹맘, 내 정체성이다. 엄마의 역할을 빽빽하게 해내진 못하지만, 내가 제자리라고 여기는 순수한 엄마의 보조 역할을 충실히 한다. 아이를 키우는 12년 동안 주변에 도와줄 사람이 많았고, 고마웠다. 그런 마음과 별개로, 육아의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에 더욱 혼란스럽기도 했다. 때론 단순한 게 답이다. 단순한 결론은 '기본에 충실하자'였다.
아이가 어릴 때는 "예의와 안전"만을 훈육했다. 학교를 들어가면서부터는 "자립과 자조", '나를 스스로 만들고 결정하는 것'을 강조했다. 아이를 잘 키운다,라는 말이 경제적-사회적 성공과 연결시키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서울의 좋은 학교, 대기업, 초고도의 연봉등도 '행복'이라는 주관적이고 추상적인 개념 앞에서는 큰 이점이 되지 않는다. 오직 인생에 지켜야 할 당당한 정의의 기초는 '자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원하지 않는다면 공부나 독서를 강요하지 않는다. 은연중에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엄마인 내가 잘하면, 아이는 따라오는 건 당연하다. 내가 읽으면, 아이도 읽는다.
우리 집 서재는 내 방, 그리고 연결된 거실이다.
책장 주변에 아직 애벌레에 불과한 책벌레가 어슬렁거렸다.
무엇을 먹고 얼마나 클지, 앙증맞은 엉덩이를 토닥였다.
"엄마, 방학 동안 읽을 책 추천 해줘."
"흠, 방학 동안 한 권의 책을 추천해야 한다면, 현대지성의 '곰돌이 푸 전집'! 이거 한 권만 읽어도 좋을 것 같아. 그림도 많고, 이야기도 따스해. 딱 네 취향이야."
"헉, 너무 두꺼운데?"
추천한 책은 552쪽의 두꺼운 책인데, 하드케이스라서 더욱 두툼해 보였다. 아들은 난색을 표했다. 여름 방학숙제가 책 다섯 권을 읽고, 인상적인 구절과 생각을 짤막하게 남기기였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얇은 책'을 뒤적였다. 이중 삼중으로 놓여있는 책들을 헤맸다.
소설책은 재밌다, 재밌으면 읽어야지, (묵직하네) 패스!
"시집은 어때? 시를 읽고 뒤를 이어서 쓰거나, 감동적인 구절에 대해서 남기는 거야. 하나의 시만 제대로 읽어도 시집 한 권 완독과 같지."
"오, 좋다! 어떤 거? 엄마가 좋아하는 걸로 추천해 줘."
"이병률 시인님 시집은, 좀 어렵겠지. 페르난도 페르소아, 아, 이것도 어렵네."
'당신의 그림자안에서 빛나게 하소서(이문재)' 시집을 골라, 필독 시로 정호승 시인님의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를 집었다. 또 다른 거, 하는 아들에게 시집은 권하는 게 쉽지 않았다.
얇은 책은 시집, 시집은 어렵다, 어려우면 패스!
결국 소설책으로 다시 돌아갔다. 아들과 나는 이야기를 참 좋아한다. 나는 모든 책에서 '표현'에 집중해서 읽는 편이다.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작가가 어떤 단어와 표현을 썼는지, 어떤 감성이 남는지 글로 남기는 작업을 좋아한다. 반면에, 아이는 서사와 갈등요소를 캐치하는 데에는 나보다 소질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물 일대기에 대해서 깊게 파고드는 'WHO시리즈'를 매우 좋아한다. 이야기를 자신의 언어로 요약하고, 반문하는 데 즐거움을 느끼는 편이다. '나라면 그렇지 않을 거야, 나라도 그랬어'와 같은 말을 자주 한다.
그런 아이가 '인물'을 주제로 한 소설이 종착점이라는 건 필연이었다.
아이는 이번 여름도 어김없이 '회색 인간(김동식)'에 멈췄다.
예상된 결과에 마주 보고 까르르 웃었다. 숙제는 꼭 해야 하지만, 스스로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긴 코멘트는 생략했다. '스스로 잘할 거라는 신뢰'와 '언제든지 도와줄 여지'를 남겼다. 그걸로 우리의 북토크는 아침식사 메뉴를 고민하는 걸로 끝났다. 서재에서 많은 책들과 함께였으니, '북스토크(books talk)'라고 해야 할까? 혼자 또다시 웃었다.
어린 시절이 스쳤다. 아버지의 서재에는 시집과 낚시, 바둑 잡지가 그득했다. 일련번호까지 매겨서 베란다(아버지의 서재)를 꽉 채웠었다. 그런 아버지가 좋았다. 그래서 책이 좋았다. 아이는 어떨까? 일 하면서, 좋아하는 일을 하는 엄마를 보는 아이의 '부모 평가'가 궁금해진다. 비록 밀키트가 없었다면, 빵점일지 모르지만, 책 읽는 엄마라는 이유로 10점 정도는 더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아이의 또 "이 책 재밌겠다!"라는 문장이 튀어나오길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