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간 시집_상실의 시간_ 12. 밤구름

살다 보면 살아진다

by oh오마주
밤이지만 구름은 제 몫을 하려 한다


밤구름


처연하게 울었던 하루가 무색하게

밤구름이 피었다


하루 내 쏟아진 비는 사연이 많았다

누군가에게는 계절 시작이었고

누군가에게는 버는 돈이었고

누군가에게는 닿아버린 감정기폭제가 되었다


그 마음을 구름이 다독이는 밤

연결하고 싶은 마음

그 연결들을 매듭짓고 싶은 마음

옭아매어지는 순간을 천천히 바라봤다


남들 스산하여 팔을 꽁꽁 싸매도

피부 안까지 땀으로 흠뻑 젖은 나는

구름더러 놀아 좋겠다 했다


구름사이에 얼굴들이 피어났다

살아서 뭐하겠노 하던 구십의 노인과

주말 시내 다섯이 놀러 나가 셋처럼 아껴먹던 아이들과

돈 받고 체험한다 생각한다던 어린 청년과

한 시간 일찍 퇴근하고는 자유라 외치던 중년의 남자와

이제 대봉만 따면 끝이라 웃던 머리 히끗한 내 아버지와

내가 아는 엄마들의 모든 얼굴과

내 얼굴이 있었다


밝은 하늘에 하루 세 시간쯤 꽁으로 생긴 듯

오늘 맥주를 마시며 상실의 시대를 읽겠다던

드르륵 바퀴와 질질 신발과 흐흐 웃음과

밤구름보다 더 아침처럼 넘실대던 내가 있었다


계단을 오르기 전 한번 더 올려다보면

온통 어른들의 말주머니와 따옴표들이 구름처럼 있었다

살다 보니 살아지더라는 온순한 말들이

지겹고 텁텁한 삶이라는 글자들이

밤에도 온전히 구름으로 몽실몽실 피었다


밤구름이 그랬다

모두의 밤구름도 그러하다

아침이 아니더라도 밤은 그럴 것이다

끝까지 안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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