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를 잊고 살았다.
여유가 있으니 그런 생각이 든다.
향기가 옷 속에서 흐르고,
음표를 달고 두둥 두둥
파도처럼 꿀렁 꿀렁
연기처럼 하랑 하랑
옷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코를 킁킁한다.
향기를 쫓다가
여유씨의 심장어귀에서 멈춘다.
여유동에
여유 있는 여유씨는
여유동에서 살고 있다.
여유 있는 말과
여유 있는 행동과
여유 있는 몇 십년
여유동에는 많은 여유씨가 살고 있다.
매일 쓰는 섬유유연제보다 진한 향기가 몸에 밴다. 오랜 시간 몸에 밴 여유는 어떤 것도 따라올 수 없다. 동네로 성격을 분류하는 건 오류일지 모르지만, 그 성향을 나누는 것은 사실이다. 살아가면서,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 많이 느낀다. ‘말과 행동의 차이가 곧 나의 동네 일지도 모른다.’ 라고.
세븐시스터즈로 향하는 녹색 버스 안에서 차분해진 나에게 이런 생각이 문득 따라왔다. 지금 내가 여유가 있는 것인가? 분위기가 달라진 것을 나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 창 밖을 보고 있는 톰을 보면 그런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그와 짧았다면 짧았던 키스를 하고 나서도 톰은 자신의 집이 아닌 원래 목적지인 세븐시스터즈로 가자고 했다. 익히 들었던 외국의 '적극적인 사랑확인방법'을 각오하고 있었던 것같다.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톰은 무슨 마음일까. ‘어떤 것도 여유롭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톰이 왼쪽 블루투스 이어폰을 건넸다. 핸드폰에 저장되어있는 기타연주곡을 함께 들었다. ‘원투쓰리포’ 하는 목소리가 들리면서 시작되는 선율에 톰은 리듬을 탔다. 신선한데 익숙했다. 버스 안의 덜컹거림이 박수를 유도하듯 했다. 연주가 꼭지에 올랐을 때, 톰은 눈을 감고 코를 찡그렸다. 리듬이 빨라지기 시작했고, ‘오-’라는 감탄사들이 몇 번 나왔다. 감탄사도 연주의 일부분 같았다. 꿈의 응원가였다. 함께하고 싶은 감정을 이끌어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응원가.
‘사랑이 인생의 전부일까?’, ‘현실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사랑과 이상은 같은 단어인가?’
‘Cake maker'라는 독일-이스라엘 영화가 생각났다. 우리는 금지된 사이는 아니었지만, 허락된 사이 역시 아니었다. 평화만이 있는 음악이 귓가에 흐르는 동안 머릿속은 전쟁이 나고 있었다. 전쟁 와중에도 아이는 태어나듯, 아침이 오듯, 또 숨쉬어지듯 시간은 흘러갔다. 세련되지 않았다. 바란적이 없기에 작은 불빛만으로도 황홀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 윤슬, 갈색지붕의 단층 건물들이 모여 있는 마을 광경이 뮤직비디오였다. 우리는 서로 보고 웃었다.
“톰. 넌 나의 꿈이야. 깨도 행복한 꿈.”
톰에게 말했다. 다짐하듯이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톰의 파랗고 큰 동공이 더 커졌다. 이내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영광입니다, 퀸!”
볼을 살짝 꼬집고는 눈을 깜빡였다. 그가 웃을 때 마음이 잠금해제 되었다. 호감만으로 톰에게 나이나 직업을 물어본 적 없었다. 질문하면 더 많이 궁금해질까 겁도 났다.
정류장에 빨간색이 아닌 초록색 전화부스가 있었다. 사진을 한 장 찍으며 웃고 나니 방금 전 지나간 시간은 잊혔다. 행복에 대한 많은 생각이 들지만, 지나간 시간을 비댈 행복은 없을 것이다.
이 음악이, 이 풍경이, 기억이, 나의 미래에 감정의 안식처가 될 것이다. 곧 현실로 돌아가야 하기에 지금은 좋은데, 앞으로가 두려웠다. 힘들거나 아프기 전에 위로를 받는 것 같아 기분이 괜찮았다.
우리가 함께 하는 세븐시스터즈는 숨이 막힐 듯 했다. 엄청난 바람에 우리는 손을 잡았다. 내 손을 만지작거리는 톰의 온기가 느껴졌다. 말뚝을 박듯이 한걸음씩 찍어 내다 갈 때, 하얀 절벽과 굴곡진 바닥, 새파랗다 못해 노랗게 보이는 바다는 눈부셨다. 톰이 나지막히 말했다.
“연, 세븐시스터즈를 매번 올 때 마다 가슴이 두근거려. 사람은 누구나 외롭고 우울하잖아, 그냥 그렇게 인정하고, 이지(easy) 라이프“
그가 말하는 ‘이지’라는 게, 내가 알던 이지가 맞을까? 우리는 서로의 추억이 되고 살아가는 날들에 큰 위안이 될 것이라는 걸 알았을까. 보이지 않는 감정에 집중하는 시간에 형태감이 느껴졌다. 머리 위로 부는 작은 환풍기의 회전처럼, 내가 숨을 쉬는 동안 움직이고 있었다. 바람이 부는 통에 입술에 힘을 꽉 줬다. 대답할 수 없었지만 내 가슴이 크게 요동쳤다. 바람이 더욱 크게 불었다. 그는 두 손을 크게 펼쳐 보였다. 마음을 여기서 멈추는 것이 생각보다 쉬운 일이었다. 사랑이라는 어려운 말을 하지 않아도 우리는 서로가 소중했다. 햇빛이 눈부셔서 그의 모습이 그림자처럼 보이면서 그가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
She told me add a bass line
그녀는 베이스 라인을 넣으라고 했지
And everything will be alright
그러면 모든 게 괜찮아질 거라고
She told me that the beat is mine
그녀는 이 음악의 리듬은 내 것이라 했지
It will rock us through the night
우리를 밤새 흔들어 놓을 거야
And where I go
그리고 내가 갈 곳은
Can't explain I'll never know
설명할 수 없어 알지 못하는 걸
But it's beautiful
그렇지만 그곳은 아름다울 거야
You can't take this away from me
나에게서 이 음악을 떼어놓을 수 없어
The way I hear the melody
내가 멜로디를 듣는 방식 말이야
The waves bring clarity
움직임은 선명해지고
Running through me
음악을 내 귓가에 맴돌아
-
< It runs through me> , Tom misch
“넌 지금 어떤 사람이니?”
톰에게 나는 그 질문을 해서는 안됐다. 톰은 듣던 음악을 껐다.
“연, 내가 어떤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그 사람으로 할게. 그게 어떤 사람이든 네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 알고 싶은 대로, 하고 싶은 대로.”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래. 그것도 괜찮네. 그런 남자.”
우리는 버스를 타러 가면서 쓸데없는 이야기로 어깨를 부딪치며 깔깔 웃었다. 우리는 아직 어린 학생들이나 되는 것 마냥 정말 아무이야기에도 웃어댔다. 양들이 녹초를 저벅이듯, 바람을 가로 질러 오르 내렸다.
“톰, 내일 나는 리즈로 가. 그 곳에서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그리고 다시 런던으로... 런던에서는 한국으로 갈거야. 정확히는 돌아가. 너를 런던에서 처음만나고 이렇게 브라이튼에서 마지막으로 만나고... 사실은 만나기를 기다렸어. 우리에게 약속이 의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약속할게. 너의 이 모습과 우리의 모습을 마음에 담아갈게. 잊지 않을게.”
갑자기 현실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마무리를 하고 있었다. 모든 꿈을 기억할 순 없겠지만, 그 향기와 순간들의 감정들은 내 안에 녹았다. 현실에 돌아가도 그 감정들에 조금 취할 것이다. 런던의 미술관을 기억하며 전시회를 찾는다. ‘윤종주’작가의 ‘시간을 머금다’ 작품을 보면서 ‘나의 심장과 같다, 나의 마음과 같다, 나의 기분과 같다, 나의 현실과 같다, 그렇지만 나의 꿈과 같다.’ 고 생각한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가지는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보통사람들 중 하나다.
어딜 여행해도 새로웠기에 브라이튼을 조금씩 잊어갔다. 특히, 리즈(Lees)에 갔을 때, 반성의 순례를 했다. 길을 잃어 힘들어 하는 와중에 도와준 것은 동네 사람도 아니고, 동양인도 아니고, ‘파키스탄’ 사람이었다. 아이와 부인이 있음에도 ‘타국에서 길을 잃는 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기 때문에 모른 척 할 수 없었다며 도와줬다. 5살쯤 되어보이는 아이는 걷는 것이 힘들어서 징징대고 콧물을 흘리고, 오지랖에 부인은 화가 났다. 절박했기에 괜찮다고 거절할 수 없었다. 미안함과 감사의 표시로 작은 돈을 건냈다. 그러나 한사코 거절하였다.
공원에 앉아서 샌드위치를 먹는 내게 ‘소시지라도 사줄까?’ 했던 초등학생정도의 노랑머리 꼬맹이, 기차에서 자신의 발밑에 샌드위치가 썩어가는 것도 모르고 다짜고짜 나에게 ‘너한테 냄새 난다.’했던 노랑머리 아가씨. 너무 화가 나서 한국어로 쌍욕을 해댔다. 영국이 아니었다면 느껴보지 못했을 불쾌함이었다.
이유가 있지만, 이유가 될 수 없는 불쾌함이었다.
대구의 팔공산을 내 집의 정원 드나들 듯이 했던 나는 스코틀랜드가 감동까지는 아니었다. '아름답다'라고 칭송하는 풍경, 얼핏 뒷산보다 작은 언덕을 보며 너무나 흔했다. 오히려 문화 충격이었던 가게들의 폐점 시간, 스코틀랜드의 시간이 어떻게 움직이는지가 가장 신비로웠다. 가령 오후 2시부터 어두워지기 시작해서, 6시에는 한밤중과 같은 어둠들. 9시면 도시가 마무리되고 다시 새벽이 와서야 사람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들.
직접적으로 나의 환상을 깬 계기는 글래스고에서 만났던 노랑머리 영국학생 덕분이다. 다인실, 스무 명 남짓 여행 온 전 세계인이 공유하는 곳에 숙박했다. 입실과 동시에 침대와 사물함 번호를 받는다. 비어 있어야할 곳에 누군가 침대를 정리해놓아서 무슨 일인가 했는다. 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모른다고 하고, 카운터에 갔다. ‘자리가 정돈 되어 있던데, 빈 자리를 쓰는 것이냐?’ 물어봤다. ‘자기 자리를 써야한다.’고 무뚝뚝하게 말할 뿐이었다. 알고 보니 친구들 무리끼리 같은 자리를 쓰기 위해 일명 '세팅'을 한 것이었다. 혼자 왔고, 어디든 상관없었는데, 룰을 따를 뿐이었다. 학생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모르겠지만, 정리를 하고 놀러 나가버렸으니, 그리고 밤늦게 들어왔으니, 알 방법이 없었다. 자리에 누워서 그 학생은 술도 취하고 분에 못이겨 'fucking'이라는 영어로 욕을 섞어가며 나를 비난하는데, 모르는 척했다. 처음에는 모든 사람들이 웃었다. 10분 가까이 끊임없는 그 말을 듣고 있자니, 고 부장의 말들이 사실인가, 하는 착각도 들었다. 울컥했다. 서른 가까이 되어서 듣는 외국어로 가득한 욕, 일종의 인종차별같은 것들이 작은 것에 화가 나 있던 나를 숙연하게 했다.
분명한 것은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도 ‘Sorry'라고 사과해주는 갈색머리를 가진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영국은 꿈의 궁전이었다. 톰과 추억들이 아름다울 수 있었다. 그것만 잊지 않기로 했다.
보통사람들 사이에서도 나만 아는 나의 특별한 시간들. 헤매고 방황해도 내가 버틸 수 있게 해주는 날들. 행복의 일상을 바라는 그런 보통날들. 보통사람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