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머니도 안 보여 / 2. 큰 싸움, 작은 싸움
'1. '일기' 파트는 작가가 하는 말 중에 내 가슴에 꽂힌 몇 구절, 문단이다. 노트에 기입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손으로 쓰는 문장은 머릿속에 박히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즐겼던 공부 방법이기도 했다. 하지만, 무리해서 손을 쓰기에는 손목과 손가락이 하는 일이 많다.(돈 벌어야지, 책도 산다.)
'2. 'omg'는 Oh_hoMmage_oriGinal이다. 아주 짧게 작가가 쓴 글을 보고 나의 생각과 감정에 연결시킨다.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고 싶었다. 인간의 창작은 한계가 있다. '나'의 생각에 '작가의 생각'이 부분적으로 스며드는 것이 신기했다. 다르더라도 비교하며 즐기는 시간이 매우 즐거웠다. 독보적인 표현에는 감탄과 존경, 오마주가 있었다. 소설을 따라가면서도 멀리서 관망하기도 하고, 가까이서 등장인물의 감정에 휘말리기도 했다. 글을 읽는 모든 사람에도 그 순간을 선물할 수 있기를.
(표지의 띠)
매일 생각하고, 매일 걱정하고, 매일 꿈꾸는 것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자, 그 누구인가!
11쪽 : 녹차가 아니라 무슨 쓴 약이라도 마신 듯 이태하에게는 씁쓰레한 웃음이 입가에 어리고 있었다.
17쪽 : "다른 중독들은 남을 해치는 일 없이 스스로 허물어지고 망가지는데, 돈 중독은 상대를 가리지 않고 사람을 마구 죽여대니까."-중략-
이태하는 두 어깨 처지도록 좀 과장되게 한숨을 토해 냈다.
21쪽~22쪽 : 그런데 그의 재학 중 고시 패스를 더욱 신비롭게 만드는 것이 있었다. 그가 한때 운동권 출신이었다는 사실이었다.-중략-그만큼 그의 연설은 내용이 예리했고, 목소리가 카랑카랑 철성이었고, 선동성이 뜨거웠던 것이다.
23쪽 : 그런데 어느 날 그가 갑자기 법복을 벗고 변호사가 되었다.
그를 향해 바로 사람들의 입이 모아졌다.
"벌써 돈 욕심이 생겼나?"
36쪽 : 그리고 김 서방한테 내 말 전해라. 지금 대한민국에서 대박 날 사업은 절대 없다고.-중략-
박현규는 '알겠냐!'를 호통치듯 외쳐댔다.
39쪽 : "사람, 싱겁긴. 세상 좀 살아보니 이거고, 저거고 사람이 할 만한 일이 아무것도 없어." 박현규가 콧등을 찡그리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하긴 그래. 우리도 허둥지둥 꽤나 살아왔으니까. 가끔씩 엉뚱하게 '내가 애 사는가', '이러고 사는 게 옳은 것인가'하는 생각으로 멍하니 서 있을 때가 있는 나이지." 이태하는 고적한 느낌이 드는 엷은 웃음을 피워냈다.
46쪽 : 그러나 속으로는, '요게 아주 시건방지고 싸가지 없다니까. 차남 주제에 그 돈까지 넘보고 까불어'하며 경계의 발톱을 세우고 있었다. -중략-
"두 동서가 마주 앉아서 무슨 얘기가 그리 꿀맛일까. 시아버지 돌아가신 슬픔은 하나도 없이." 큰 딸 정보연의 말이 꼬여 돌아가고 있었다.
51쪽 : 어머니는 혼자 신식인 척 다 해가며 평생 으스대고 살았지만 죽음 앞에서는 케케묵은 조선 여인의 구태를 그대로 드러냈던 것이다. 어머니의 가슴속에 그런 엉뚱한 생각이 담겨 있었다니, 도저히 믿기 어렵고, 끔찍스럽기까지 했다.
56쪽 : 자식들이 가장 빨리 잊어버리는 것이 부모 죽음이라는 말이 있었다.
68쪽 : 정일준은 머리가 복잡했다. 법을 들고나오는데 아버지의 유언대로 밀어붙일 수가 없었다. 두 여동생은 돈을 향해 이미 의기투합이 되어 있었고, 법도 벌써 알아본 것이 분명했다. 소송을 하고 나오면 그건 피할 길이 없었다. 그게 법의 힘이었다.
71쪽 : " 신념과 노력...? 그거 어려운 말일세."
"어렵긴. 욕심 안 부리고 자기가 정확하게 세운 계획에 따라 협잡꾼 없고, 훼방꾼 없이 진실한 협조자들을 이끌고 꾸준히 일을 해나가니까 그 신념이 차근차근 이루어져가는 거지."
74쪽 : 그 사회적 기여와 보람을 위해 민변(민주 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 가입했었다. 그것은 사회적 기여라기보다는 자기 구원을 위한 한 가닥 끈을 마련한 것인지도 몰랐다.
79쪽 : 한 선배의 긴 편지에서는 한 선배다운 싱싱한 의욕과 진정성이 생생하게 전해져 오고 있었다.
89쪽 :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지치지 말고 성실히 합시다. 그 과정에서 하나하나 이루어져 나아가는 것이 기쁨이고 보람이고, 진정으로 행복한 자족적 삶이 아니겠소. 그 길을 향해 우리 함께 지팡이가 됩시다.
1) 세상 좀 살아보니 이거고, 저거고 사람이 할만한 일이 아무것도 없어.
80이라는 숫자는 작가의 역사다. 젊은 작가의 이야기였다면, 그럴싸하게 '포장'된 문장이라 했을 것이다. '행복을 좇거나, 환상을 뒤쫓거나.' 상상의 말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작가의 나이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린아이가 그런 마음을 가지지 않는 것도, 나이가 차올라 찰랑인다고 아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그의 역사가 진실을 말했다. 깊고 짙은 그의 문장은 꾸밈없이 표정과 마음을 시적으로 표현했다. 감동이라는 게 있다면, 이런 무결한 문장일 것이다.
2) 한 선배는 이태하의 종교였다.
자신을 공부하게 만들고, 검사가 되게 만든 한 선배. 정치권에 입문했으나, 야당 역시 또 다른 보수세력임을 깨닫고, 고향으로 가서 농사를 짓는다. 도시로 떠난 자리를 채운 이주노동자의 국가적 처우개선을 위해 노력한다.
이태하의 검사 시절 이야기가 나오며, 염세주의적인 그의 태도가 이해되었다. 신념의 가치가 배반되었을 때, 흔히 오는 결과들을 보며, '조직'의 '조직'들이 만연한 대한민국 사회를 소설이기에 제3자의 위치에서 봤다. 국민이라는 당사자로, 직접 해결하지 못하는 현상들을 근거 없이 흘리듯 보는 죄책감이 들었다.
3) '황금종이'를 시작하며,
'돈'은 무거울까, 가벼울까? 세상에 있는 종교 중에서 가장 사이비는 '돈을 믿는 종교'일 것이다. 절대적으로는 필요하지만, 상대적으로는 많을 필요는 없는 '돈'을 주제로 한 소설이 내 손에 있다. 오늘의 분량까지 마치고, 헤드셋을 벗고, 커피를 가지러 가면서 책장을 지나쳤다.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이 되는 경제 서적이 눈에 들어왔다. 문득, 많이 가지지 못하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이런 소설에 위로받고, 경제책을 보는 것도 도움이 되니 말이다. 아직은 노력하면서 사는 아름다운 삶이다. 살면서 더 많이 가질 날이 온대도 이 마음을 꼭 기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