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기' 파트는 작가가 하는 말 중에 내 가슴에 꽂힌 몇 구절, 문단이다. 노트에 기입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손으로 쓰는 문장은 머릿속에 박히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즐겼던 공부 방법이기도 하다.
'2. 'omg'는 Oh_hoMmage_oriGinal이다. 아주 짧게 작가가 쓴 글을 보고 나의 생각과 감정에 연결시킨다.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고 싶었다. 인간의 창작은 한계가 있다. '나'의 생각에 '작가의 생각'이 부분적으로 스며드는 것이 신기했다. 다르더라도 비교하며 즐기는 시간이 매우 즐거웠다. 독보적인 표현에는 감탄과 존경, 오마주가 있었다. 소설을 따라가면서도 멀리서 관망하기도 하고, 가까이서 등장인물의 감정에 휘말리기도 했다. 글을 읽는 모든 사람에도 그 순간을 선물할 수 있기를.
281쪽 : 고야스씨가 독신이라는 사실에 대해 소에다 씨는 ‘워낙 그런 분이었으니까 ‘라고 평했다. ’그런‘이란 게 무슨 뜻일까? 그리고 왜 그녀는 과거형을 썼을까?
282쪽 : 고야스 씨 얘기만 나오면 갑자기 이상하게 말투가 무겁고 모호해졌다. 그리고 그들의 개인적 의견, 혹은 총체로서의 의견은 지저분한 세탁물처럼 저 안쪽 어딘가로 황급히 치워지고 말았다. -중략- 수호신을 모신 숲 속의 사당 문을 함부로 열고 들여다봐선 안 된다. 하는 것처럼.
287쪽 : 글쎄요. 연애란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정신질환이다,라고 말한 게 누구였더라?
292쪽 : 때가 되면 동이 트고, 이윽고 햇살이 창으로 흘러드는 것처럼, 나는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상당히 근사한 표현이다.
301쪽 : 설령 지독한 졸음이 덮쳐온다 해도 여기서 낮잠을 자고 싶을 것 같진 않다.
307쪽 : 게다가 나는 굳이 말하자면 적당한 - 그럭저럭 참을 수 있을 정도의 - 추위를 사랑했는지도 모른다.
317쪽 : 정사각형 반지하 방은 몹시 조용했다. 소시라 할만한 건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때때로 난로 안에서 무언가가 탁탁 터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것 말고는 오직 침묵뿐이다. 네 개의 말없는 벽이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319쪽 : 퍼뜩 정신이 들면 책상 위에 팔꿈치를 짚고서 턱을 괴고 눈을 감은 채(손에 쥐고 있던 연필은 어느새 사라졌다) 사고의 미로를 정처 없이 헤매고 있다. 왜 나는 여기 있을 까, 왜 나는 저쪽에 없는 것일까... 그렇게.
325쪽 : 그 시계탑과 똑같다, 나는 생각했다. 벽에 둘러싸인 그 도시의 강가 광장에 서 있던 시계탑과 똑같다. 문자반은 있지만 바늘은 없다.
시공이 미세하게 일그러지며 뒤틀리는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와 무언가가 뒤섞인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경계의 일부가 무너지고, 혹은 모호해지고, 현실이 여기저기서 뒤섞이기 시작한다.
327쪽 : 딱딱하고 작은 의자라 자세가 편하진 않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짧고 농밀한 잠이었다. 그 농밀함에는 꿈 한 조각 끼어들 틈이 없었다.
329쪽 : 내뱉은 숨결이 공중에서 희고 딱딱하게 덩어리 지고(그 위에 글자를 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맑은 아침공기는 수없이 투명한 바늘이 되어 피부를 날카롭게 찔렀다.
330쪽 : 상록수의 푸르고 넓은 가지는 밤사이 새로이 쌓인 눈을 버텨내느라 분투하고 있었다. 이따금 산에서 불어노는 바람이 강 너머 펼쳐진 나무숲 안쪽에서 보다 가혹한 계절의 도래를 예고하는 날카롭고 통절한 소리를 냈다. 그런 자연의 풍경은 애가 탈 정도의 그리움과 옅은 슬픔으로 내 가슴을 채웠다.
338쪽 : 그 홍차에는 설탕도 밀크도 레몬도, 다른 어떤 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 자체로 훌륭하게 완결된 홍차였다. 온도도 그야말로 완벽하다. 농밀하고, 향긋하고, 따뜻하고, 또한 기품이 있었다. 신경을 온화하게 어루만져주는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만약 거기에 무얼 더하면 그 완결성은 틀림없이 손상될 것이다. 짙은 아침안개가 햇빛에 지워져 버리는 것처럼.
아직 어두운 겨울 새벽은 짙은 초록빛의 표지를 닮았다. 짐이 많아서 고민하다가 그래도 하루키 책을 챙겼다. 새벽 늦게 잠들고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 알람을 끄고 30분을 더 뒤척였다. 이러다가 ‘꾸준한 즐거움’을 놓칠 것 같아서, 책상에 앉았다. 양쪽 어깨가 뭉쳐서 파랗게 질리는 것 같았다. 어깨가 하는 말을 무시하고 책을 폈다. 다음 페이지의 윗줄을 읽다가 깊은 잠에 들었다. 꿈에서도 책을 읽고 있었다. 읽고 쓰는 동안에 힘이 풀렸던 목덜미가 깨어났다. 나를 재촉하기로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 날은 마음이 바쁘다. 오늘은 하루키가 어떤 이야기를 해주려나, 기대했다. 벽의 도시에 대한 궁금증 하나가 해결된 날이다. '벽의 도시, 그림자를 잃은 사람들'의 내용이 고야스 씨를 통해 그 이야기가 전해졌다. '36파트'의 말미의 한 줄이 마치 '내일 이 시간에'라고 하는 것만 같았다. 내일도 눈이 엄청 빨리 떠질 것 같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