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 쓰는 편지
하루키 작가님, 안녕하세요? 저는 oh오마주라고 합니다.
작가님, 모든 작가님들이 독자들을 어미닭이 계란을 품듯 아낀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직 부화하지 않은 계란처럼 저도 작가님의 소중한 독자겠지요. 그래서 용기 내어 공개 편지를 씁니다.
고백하겠습니다. 작가님의 천재성을 사랑합니다. 도덕성을 무시한 채 훔치고 싶다는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동시에 애증 합니다. 작가님의 이야기를 날 것 그대로 보지 못해서 억울합니다. 혹은, 그래서 다행일지 모릅니다. 원문을 제대로 읽었다면, 그 세계에 미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작가님의 광팬은 아닙니다. (전 장류진 작가가 제일 좋습니다.) 작가님의 작품이 좋을 뿐입니다. BTS도 노래만 좋아한다고 하면 노하지 않으시려나요. 이름만 보고 좋아하는 건 제 아들뿐입니다. 작가님을 어미닭으로 여기는 달걀은 아니지만, 특유의 파란-회색빛깔의 작가님의 문장을 매일 생각합니다.
지금은 작가님의 도불벽을 '벽돌책'이라고 부르고, 조금씩 부수고 있습니다. 가끔 일본어가 한국어로 직역되어 어색한 부분에서는 작가님이 여기에 살고 계시고, 제가 이방인처럼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어색한 그런 상황이 벽의 도시에 서 있는 것만 같아서 낯설지만 오로라의 중앙을 손으로 주무르듯 신비롭습니다. 그런 여행 같은 독서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고 있는데, 다행히 글을 올리면 읽어 주시더라고요. 다 작가님 덕분입니다. 욕심스럽게도, 나쁜 마음이 드는 날도 있습니다. 제가 쓴 글을 작가님 작품이라고 올리고 싶은 마음이 솔직히 매일 듭니다. 전반적으로 그런 나쁜 생각으로 책상에 앉습니다.
전 사실 김 하루키입니다. 시간과 장소에 따라 여러 자아가 공존하는데, 장사치로, 집에서는 엄마로, 그리고 아이가 잠든 새벽이면 늑대인간이 변신하듯이 약간의 조작으로 하루키인간으로 변합니다.
남동생이 행복하자며, 올해 에어팟프로를 사줬어요. 책상에 앉아 일종의 의식처럼 또깍 소리를 내고 열어 귀에 닿는 부분을 입으로 후후 불고, 귀에 꽂습니다.
재즈음악이나 뉴에이지를 듣습니다. 류이치사카모토, 빌 에반스, 팻 메시니, 에디 하긴스 등.. 흑백사진으로 썸네일이 있는 영상의 음악을 즐겨 듣습니다. 그게 작가님께 닿는 가장 짧은 길이거든요. 최소 5분에서 10분을 들어야 김하루키가 장착됩니다. 버퍼링이 좀 있어요.
유튜브프리미엄도 가입했어요. 음악이 중간에 끊기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되더라고요. 작가님이 되는 순간은 10분 남짓, 컴퓨터에서 가장 많이 누르는 버튼은 'Backspace'입니다. 최소 병아리가 되면 이 김하루키 생활을 청산하고, 제 본연의 삶을 살겠습니다.
편지를 드리는 토요일은 제 휴무입니다. 그래도 보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주중에만 작가님을 만나는 일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글을 쓰는 인생'을 살 거니까, 저희 가족들도 숨 쉬는 시공간이 있어야 합니다. 평생을 위해 연습을 해둬야죠. 윤석열나이로 10살인 아들은 엄마가 필요하고, 주말외식을 좋아하는 남편은 부인이 필요하고, 저의 부모님들도 딸의 안부가 궁금하니까요. 제가 사는 인생이라고 마음대로 하는 것은 가족의 그림자를 뺏는 것과 같습니다. '있을 때 잘해'야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해요.
어디선가 내려다보는 것만 같아서 작가님의 책을 마음대로 해석하고 생각을 갖다 붙이는 것도 조심스럽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책을 읽으면 생각이 넘쳐흘러서 그렇게 받치지 않으면 방 안 공기가 파란 회색으로 가득 차버리는걸요.
무라카미 하루키.
그 웅장한 작가님의 이름을 운운하며 편지를 쓸 수 있어 영광입니다.
같은 하늘이지만, 못 뵈어도 부디 건강하시길.
한일 역사를 거슬러 작가님의 작품을 존경합니다.
손흥민이 호날두를 좋아하듯,
저도 그런 의미의 존경이 되길,
작가님의 토요일도 아름답길 바라봅니다.
2024년 1월 20일 아침,
오마주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