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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파,벽돌책] 2.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6일차)

by oh오마주 Jan 19. 2024

파트 설명



'1. '일기' 파트는 작가가 하는 말 중에 내 가슴에 꽂힌 몇 구절, 문단이다. 노트에 기입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손으로 쓰는 문장은 머릿속에 박히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즐겼던 공부 방법이기도 하다.


'2. 'omg'는 Oh_hoMmage_oriGinal이다. 아주 짧게 작가가 쓴 글을 보고 나의 생각과 감정에 연결시킨다.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고 싶었다. 인간의 창작은 한계가 있다. '나'의 생각에 '작가의 생각'이 부분적으로 스며드는 것이 신기했다. 다르더라도 비교하며 즐기는 시간이 매우 즐거웠다. 독보적인 표현에는 감탄과 존경, 오마주가 있었다. 소설을 따라가면서도 멀리서 관망하기도 하고, 가까이서 등장인물의 감정에 휘말리기도 했다. 글을 읽는 모든 사람에도 그 순간을 선물할 수 있기를.





1. 일기


346쪽 : 의식이란 뇌의 물리적 상태를 뇌 자체가 자각하는 것이다. 


347쪽 : "네, 의식은 그대로 확고하게 존속합니다. 육체가 없어도 의식은 멀쩡합니다. -중략- 네에, 이렇게 죽어서도 여전히 모르는 것이 있다는 게 왠지 기묘하답니다. 일단 죽고 나면 살아 있을 때와 달리 수수께끼 따위와는 관계가 없겠거니, 생전에는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는데 말이죠."


354쪽 : 아아, 그렇다. 이 사람은 정말이지 특별하다. 이 사람은 나의 존재를, 일시적인 육체를 동반한 의식으로서의 나의 상태를 충분히 이해하고 오롯이 받아들일 것이 분명하다고. 뭐랄까요, 생각지도 못한 기적적인 해후였습니다.


358쪽 : (성경, '시편') '사람은 한낱 숨결에 지나지 않는 것, 한평생이래야 지나가는 그림자입니다.' 네, 이해하시겠습니까? 인간이란 숨결처럼 덧없는 존재고, 살면서 영위하는 나날도 지나가는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365쪽 : 소에다 씨는 내내 묵묵히 내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꾸밈없는 한쌍의 눈이 안경알 너머에서 내 얼굴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내 이야기 뒤에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 무언가를-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읽어내려는 것처럼.


369쪽 : 소에다 씨는 다리를 가지런히 모은 채 스커트 무릎 위에서 양손을 맞잡고 있었다. 가느다란 열 손가락이 뜨개질한 털실처럼 섬세하게 얽혀 있었다.


374쪽 : 자신이 그동안 소중하게 지켜온 가치관이 갑자기 아무 의미 없는 빈 상자로 전락해 버린 느낌이었다. 대체 나는 이제껏 무엇을 위해 살아온 걸까? 혹시 지구가 반대 방향으로 돌기 시작한 건 아닌지, 진지하게 불안해질 정도였다.


377쪽 : 오히려 만나는 시간이 제한됨으로써 그의 행복은 보다 깊고 넓어졌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만나지 못하는 동안에는 주말에 그녀를 만날 때를 몽상하며, 풍부하고 컬러풀한 기대감을 키워나갈 수 있었다.


381쪽 :  아들이면 신(森), 딸이면 린(林)으로 하자. 그렇다, 푸요로운 자연에 둘러싸인 산속 작은 마을에서 생을 시작하는 아이에게 참으로 어울리는 이름 아닌가. (森:수풀 삼, 林 수풀 림)


382쪽 : 아들이어도 좋고 딸이어도 좋다. 그 아이가 나의 가능성을, 가능성으로서 계승해 준다면.


392쪽 : 누군가를 향해 말하는 게 아니다. 자기 자신을 향해 말하는 것이다. 그건 그녀 안에 뚫린 어두운 공동(空洞)에 울리는, 일련의 공허한 메아리다. 고야스 씨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네이버 한자사전 참고↑


394쪽 : 거기에는 틀림없이 어떤 비정상적인 요소, 병적인 요소가 있었다. 대파 두 뿌리를 침대 위에 둠으로써 그녀는 남편에게 대체 무엇을 알리려 했을까(그것이 그를 향한 메시지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 기이한 광경을 바라보는 고야스 씨의 몸이 안족부터 차갑게 식어갔다.


403쪽 : 말하자면 '무해하고 일시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404쪽~405쪽 : "실은 정말로 다른 인격이 되었는지도 모르죠." 나는 말했다. "지금까지의 인생과 결별하기 위해서, 그리고 고통스러운 기억을 잊기 위해서."


 작가는 독자가 어디쯤에서 끊어 읽는지 아는 걸까? 마치 드라마처럼 어제 읽었던 부분이 초반에 조금씩 나온다. 전 챕터가 현 챕터에서 짧게 언급되는 게 정말 신기했다. 바로 본론으로 이어 가지 않는다. 그게 흥미롭기도 하고, 마치 배려 같기도 하다. 


 고야스의 힌트는 참으로 기묘하고 아련했다. 인간의 생과 사의 표현 중에 가장 아름다웠다. 삶에서 그림자가 주는 의미는 '살아있다'라는 그 자체였다. 빛에 반응하는 삶을 감사하는 마음이 샘솟았다. 


39 챕터를 들어가기 앞서, 책이 반쪽으로 나뉘었다는 걸 깨달았다. 왼손으로 잡지 않아도 책이 홀로 지탱하고 있었다. 두꺼운 책을 이런 맛에 읽는구나, 하고 마라탕을 처음 먹었던 그날을 떠올렸다. 가끔 생각하는 거지만, 나는 먹는 것으로 표현하는 것을 참 좋아한다. 좋은 것은 맛있는 것. 삶이란 이토록 자신이 중심이 되어 돌아간다. 하루키의 세상에서 하루키의 그림자 있는 삶을 영유하는 아침 독서 시간이 수영만큼이나 큰 호흡이 된다.


'나'와 사서, 소에다 씨와의 면담에서 소에다 씨의 동작을 면밀히 묘사하는 몇 장면이 나온다. '영화라면 가능할까?' 생각이 들었다. 직접적으로 내레이션을 넣지 않았다면, 모를만한 광대역 표현이었다. 소설에서만 가능한 멋진 의역이었다. 


 고야스 씨의 5살 아이의 죽음,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나와서 반바지를 입은 다리에 소름이 끼쳤다. 다리를 손으로 비벼도 온도는 올라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도로에서 아이가 사고 나는 걸 본 적 있고, 친정아버지의 아끼던 어린 강아지, 차순이가 도로에서 택배차에 치여 죽은 일도 있었다. 고야스의 부인이 한 달 만에 입을 열었고, 자책할 때 나도 참았던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어린 생명의 죽음에 알아도, 몰라도, 눈물이 났다.


 중반부 이후부터는 빠른 전개와 해답들이 나오고 있다. 사실 블로그 서평들을 보면 1부는 지루하고 2부부터 볼만하다는 평이 많다. 지루하지는 않았으나, 2부부터 재밌다는 말에는 극히 공감한다. 읽을수록 '하루키의 멀미화법'에 익숙해져 가는 것은 무시하지 못하겠다. 하루키에게 조정당하고 있다. 뜨겁게 달궈진 냄비에서 익힌 이야기의 맛있는 향기에 배고픔을 느끼는 어린 승냥이가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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