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기' 파트는 작가가 하는 말 중에 내 가슴에 꽂힌 몇 구절, 문단이다. 노트에 기입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손으로 쓰는 문장은 머릿속에 박히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즐겼던 공부 방법이기도 하다.
'2. 'omg'는 Oh_hoMmage_oriGinal이다. 아주 짧게 작가가 쓴 글을 보고 나의 생각과 감정에 연결시킨다.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고 싶었다. 인간의 창작은 한계가 있다. '나'의 생각에 '작가의 생각'이 부분적으로 스며드는 것이 신기했다. 다르더라도 비교하며 즐기는 시간이 매우 즐거웠다. 독보적인 표현에는 감탄과 존경, 오마주가 있었다. 소설을 따라가면서도 멀리서 관망하기도 하고, 가까이서 등장인물의 감정에 휘말리기도 했다. 글을 읽는 모든 사람에도 그 순간을 선물할 수 있기를.
421쪽 : 그래도 컴퓨터 없는 일터는 나름대로 신선했고, 다른 세계에 길을 잃고 흘러든 것처럼 불가사의한 어긋남이 느껴졌다.
426쪽 : 이곳은 높은 벽돌 벽의 안쪽일까, 아니면 바깥쪽일까.
427쪽 : 아니면 나인 척하는, 내가 아닌 나인지도 모른다. 거울 속에서 마주 보는 건 내가 아닌 나인지도. 영락없이 나처럼 보이는. 그리고 나와 똑같은 동작을 하는 다른 누군가 인지도 모른다. 그런 기분도 없지는 않다.
432쪽 : 맑은 겨울날 아침에 어울리는 따뜻한 미소였다. 매뉴얼대로 만들어낸 미소가 아니다.-중략-화장이 옅다. 마음먹으면 더 젊어 보일 수 있을 텐데, 별로 그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 같다. 그런 면에도 적당히 호감이 갔다.
434쪽 : 역 근처 커피숍에서 흘러나오던 콜 포터의 스탠더드 넘버 제목을. <Just One of Those Things(흔히 있는 일이지만)> -중략- 그러나 독서에 집중할 수 없었다. 온갖 이미지와 소리가 머릿속을 맥락 없이 돌아다녔다. 다른 세계에서 발신하는 의미 불명의 메시지처럼. 소리 나지 않는 자전거를 탄 얼굴 없는 메신저들이 그 메시지를 차례차례 문 앞에 놓고 그대로 사라졌다.
441쪽 : 영혼이란 어디까지나 과도적 상태에 지나지 않지만 무는 그야말로 영원합니다. 아니, 영원이라는 표현을 초월한 것입니다.
448-449쪽 : 티 없이 순수한 사랑을 한번 맛본 사람은, 말하자면 마음의 일부가 뜨거운 빛에 노출된 셈입니다. 타버렸다고 봐도 되겠지요.-중략-어찌 보면 성가신 저주이기도 합니다.
452쪽 : 무언가를 강하고 깊게 믿을 수 있으면 나아갈 길은 절로 뚜렷해집니다. 그럼으로써 이다음에 올 격렬한 낙하를 막을 수 있을 겁니다.
473쪽 : 스케일이 장대할 뿐 그 소년이 하고 있는 일도 근본은 같을지 모른다. 젊고 건강한 지식욕은 지칠 줄 모른다.
파도가 심히 몰아친 뒤, 평온한 바다의 모습이었다. 비밀이 수면 위로 올라와 읽는 내 마음도 편해졌다. '나'가 고야스씨 가족의 무덤을 찾았을 때, 17살 소년의 데이트 때처럼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고야스가 '정말' 죽었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가족의 묘비에 쓰인 이름과 '생몰년'(생사년)을 자세히 봤다.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는 ''나'의 기분은 좋을까, 슬플까?' 생각하며 숙연해졌다.
둘이 대화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고야스가 '백종원'과 같은 모습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골목식당에서 솔루션을 주던 모습과 '나'의 이야기를 진중히 들어주던 모습이 겹쳤다. 신기하게도 후덕함과 인자함은 세트로 생각된다. '나'가 고야스와의 대화를 통해 벽의 존재를 공감받고,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음에 의문을 내려놓아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하루키'는 '나'일까, '고야스'일까? 아니면 둘 다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내가 하루키라면 둘 중 하나는 나를 빗대어 쓸 것 같았다. 그런 통쾌한 맛이 있을 것만 같았다.
어떤 한 소년을 만난다. '천재'보다는 '서번트 증후군'에 가까운 아이인데, 책의 내용 전부를 머리에 욱여넣는다. '구석구석까지 먹어치운다.'라는 표현을 쓰는데, 뇌가 책을 잡아먹는 모습을 자연스레 상상했다.
재밌는 상상으로 시작한 하루였다.
하루키가 곧 사라질 것 같다. 얼마 남지 않아서 벌써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