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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오마주 Mar 12. 2024

엄마의 진심, 온통 가족

가족이야기 1. 나라는 엄마


힘들었겠다.


 양파를 썰다가 라디오 사연에 칼을 멈췄다. 코로나로 인해 할 일이 많아지고, 스트레스로 지난 10개월간 우울증 치료를 받는 워킹맘 이야기였다. 잠 오는 오후, 빈 공간에 낮은 음성을 채워 일하는 나를 달래고 싶었다. 매번 라디오에 나오는 사연들을 들을수록 내 상황인 듯 깊게 몰입하는 것 같다.


"엄마들의 노력은 왜 희생되어야만 할까?"


 이미 슈퍼에서 잔뜩 샀는데 우리 가게 음식까지 포장 주문을 한 여자 손님이 있었다. 손이 문어나 오징어처럼 여러 가닥 달린 것도 아닌데, 자기 몸집보다 큰 가방을 들고 땀을 닦는다. 계산하면서 ‘엄마가, 참 힘들죠?'라는 한마디를 건넸다. ‘애들도 스트레스가 쌓이니까, 엄마가 편하니까, 어쩌겠어요. 엄만데.’ 헛웃음 지으며 대답하는데 애잔했다. 양손 한가득인데 전화로 아이들의 추가 주문을 받고, 거의 뛰어가다시피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은, 곧, 타들어 갈 것 같았다. 짐이 많아서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를 붙잡지도 못하고 길을 헤치고 갔다. 특별한 엄마가 아니다. 모든 엄마들의 모습이다. 엄마들의 양쪽 어깨의 연골을 아랑곳하지 않고, 손목 터널 증후군은 코로나 이후로 병도 아닌 게 되었다. 총칼 없는 전쟁에서 '엄마들의 전우애'가 느껴졌다.


 최신곡을 들어도 조선시대 창가처럼 느껴지는 날이 있다. 공감대가 없어지는 날, 목덜미부터 꼬리뼈까지 뻣뻣하니 돌덩이 같다. 요즘은 멍하니 창으로 지나가는 '엄마들'을 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뭘 저렇게 잔뜩 사들고 바삐 움직일까. 손에 든 것들은 죄다 먹을 것들이다. 돈 쓰면 되는데 뭐 어려울까? 하겠지만, 나한테만 쓰는 돈이 아니니까 힘들다. 같은 집에 살아도 입맛도 다 다르다. 진정한 극한 직업이다. 양손 가득 자식들 먹을 것을 사는 것은 '우주 만물의 모성애'다.



 ‘평생 꿀 직장’에서 가장 힘든 ‘노역’으로 바뀐 직업 중 하나였다. '공무원, 의사, 그리고 주부'. 힘든 일을 도맡아도 쉽게 놓지 못하는 위치다. 그렇다고 워킹맘이라고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회사일, 집안일, 아이일, 일에 치이고 받치는데, 남편도 한몫한다. ‘애 엄마가’, ‘집안 꼴이’, ‘어딜 그렇게 아침마다’. ”조선시대 살인 사건은 '부녀자 배우자 살인사건'이 70%가 넘는다던데...”라며 부르르 떨었다. 그렇게 쇼미더머니 디스랩을 능가하는 말들을 하고도 화가 안 풀려서 나서 인터넷 검색창에 ‘이혼 잘하는 방법’을 찾아봤다. 이혼하는데 그렇게 준비가 철저하게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일단 마음만 먹으면 앱에서 통닭 시키는 것만큼 쉬웠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정신학적 분석’으로 이해해 보자는 것이었다. 가장 가까운 것이 ‘아스퍼거 증후군’. ‘나르시스적 성향’인가? 생각도 해봤지만, 가족에게만 단순하게 공감 능력이 부족한 것은 '가스라이팅 인가?'. 뭐가 되든 나를 정상인, 상대는 아픈 사람이라고 하면 개운하다.


 아직도 공존하고 있지만, 극심했던 시절의 코로나는 삶을 단축시켜서 보여주는 요약이었다. 내 삶의 역경과 히트를 한꺼번에 느껴보는 것이었다. 여태껏 '실패에도 끝까지 도전하는 것은 일말의 희망이 있을 때 가능하다.'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몇 번의 시도 끝에도 거의 꿈을 포기해 버렸지만, 만족감이 모자란 상태에서 행복을 느끼는 방법을 알아냈다. ‘포기’가 처음이고, ‘희망’이 마지막이었다. 열린 결말로 사는 인생이야말로 부족한 나를 성장시켰다. 지금의 시대는 우리에게 삶에서 의외성을 갖고 평범한 행복은 다양하다고 말해주고 있다. 실패의 순간이 영원하지 않다는 희망만이 나를 위로했다.


 엄마들이 해주는 것들이 당연하다고 여긴다면 좀 억울하다.  모든 이가 엄마에게 사랑을 명목으로 갑질, 진상 부르지 말고 착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할 일을 뚝 덜어내어 함께 하지는 못해도 서로 응원하며 살아가는 가족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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