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빠랑 완전 똑같아!"

2024년10월16일_수요글방

by 오밀조밀

분만실 앞엔 아빠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간호사가 갓 태어난 아이를 안고 분만실 밖으로 나올 때면 아빠들은 죄다 엉거주춤, 간호사를 쳐다봤다. 산모의 이름을 듣고서야 아이의 아빠가 간호사에게 다가왔다. 나머지는 다시 자리로 돌아가 자기 아이는 언제 나오나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 그렇게 하나 둘, 아빠들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를 만났다.


“너는 간호사가 산모 이름도 얘길 안 했대. 그냥 아빠한테 단번에 갔대.”


나는 기억도 못하는, 분만실 앞 상황을 몇번이나 들었던지. 어디까지 사실이고 얼마만큼의 과장이 더해졌는진 모른다. 하도 들어서 이젠 그 상황을 내가 봤던 것 같기도 하다. 생김새부터 성격까지, 아빠를 빼 닮았다는 말을 어릴 때부터 들었다. 물론 부녀지간에 당연히 들을 법한 얘기지만. 가끔은 나조차 소스라치게 놀랄 때도 있었다. 갑자기 둘이 동시에 똑같은 말을 해 ‘찌찌뽕’을 외쳐야 하는 순간도 많았다. 너무 오래돼 가물가물하면서도, 가만히 앉아 기억을 더듬어보면 어제와 같은, 이제 더는 없을 시간들.


초등학교 6학년 개학을 앞둔 어느 날, 갑자기 미국에 있는 회사로 발령을 받았다며 이민가방 서너개에 짐을 챙겨 달아나듯 한국을 떠났다. 그렇게 2년쯤 지내다 어느 날 갑자기 아빠는 먼저 한국으로 돌아갔고, 그 뒤 1년이 지나서야 우리도 한국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아빠는 없었다. 중국으로 일을 하러 갔다는 아빠의 소식에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았고, 우린 그렇게 할아버지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그러다 아빠는, 내가 고등학교 졸업을 앞뒀을 때 한국에 들어와 함께 지냈다. 대학에 들어가선 기숙사 생활을 하며 매일같이 문자를 주고 받았다. 어느 날 밤 보낸 문자에 며칠 답장이 없어 엄마에게 물어보니 아빠가 다시 중국에 갔다고 했다. 그때만 해도 아빠가 정말 중국에 가서 일을 하는 거라 생각했는데, 이제 생각해보면 어디까지 진실이었는지 모르겠다.


엄마 방 청소를 하다 우연히 본 아빠가 보낸 편지의 봉투에서 사서함 번호를 발견했다. 뜯겨진 봉투 안엔, 지난 겨울 가져온 내복을 잘 입고 따뜻하게 지냈다던 아빠의 인사로 시작되는 편지가 있었다. 안에서 만난 사람들도 생각보다 괜찮고 일요일마다 예배를 보며 안정을 찾는다는 식의 말들. 요리를 배웠고 목공도 하고 있다는 근황을 전하는 아빠가, 일을 하러 중국에 간 적은 없을 거란 생각이 든 건 그때부터였다.


이후 대학을 졸업할 때쯤 다시 집으로 돌아온 아빠는 늘 그럴싸한 말들을 하기 바빴다. 아빠의 말에 할아버지는 집을 팔아 목돈을 떼 줬다. 그 돈으로 우리 네 식구는 할아버지를 떠나 이사를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엄마는 보증금을 낮추고 월세를 올렸다. 전세인줄만 알았던 집이 월세였다는 건 한참 뒤에나 안 사실이지만. 낮춘 보증금에서도 얼마를 더 떼주고 나니 이제는 월세가 높아져 살 수 없었다. 결국 우린 터무니 없이 낮은 보증금에 한 주상복합으로 이사를 갔고, 또 월세를 내고 지냈다. 아빠가, 아니 사실은 엄마가 월세를 부담하다 더는 낼 돈이 없어 보증금에서 월세가 나가기 시작했고, 이젠 보증금에서 나갈 월세도 얼마 남지 않았을 때쯤. 사실을 알게 된 나는 이사를 가야 한다고 말했다. 대출 없이, 최대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선에서 월세는 내 월급으로 부담할 수 있는 정도의 집을 찾는 것이 좋겠다. 그때 아빠는 곁에 없었다. 일자리를 구했다며 지방에 내려가 있었다. 이사를 가게 됐다는 말에 별다른 말이 없었다. 직접 오지도 않았다.


아버지에게 아내에게, 딸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자식이자 남편이자, 아빠가 되고 싶어서였을 거라고 생각하기로 하면서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럴싸한 말들로 진실을 감췄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할아버지와 엄마를, 나와 내 동생을 위로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일테니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두렵다. 산모의 이름도 호명할 필요가 없었던, 어린시절 아빠와 마주 앉아 ‘찌찌뽕’을 수없이 외쳤던 나의 삶이 혹 아빠의 삶과 닮아있는 건 아닐지. 긴 잠복기를 거치는 바이러스처럼, 내 안에도 그런 무언가가 흐르고 있는 것은 아닐지. 그래서 언젠가 내가 나를 속이고, 내 가족을 속이고 주변을 모두 아프게 만들게 되진 않을지 두렵다.


“와, 진짜 아빤 줄. 아빠랑 진짜 똑같아!”


아빠와 따로 지낸 이후로도 엄마와 동생은 종종 이런 말을 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기를 쓰고 화를 냈다. 하지만 이젠 그 마저도 사라졌다. 화를 낼수록 아빠와 닮았다는 걸 인정하는 것 같아서. 나는 더는 아빠를 닮지 않았다고, 적어도 아빠의 삶만큼은 닮아선 안 된다고 속으로 되뇌면서.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더 이상 아무 것도 아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