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10월23일_수요글방
대학 입학을 앞두고 전공을 고민하던 19살 여고생은 의상디자인학과에 지원했다. 옷을 만든다는 게 멋있어 보였다. 누구나 아는 명품 옷도 멋있었지만, 자신의 이름을 걸고 옷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나도 저런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대학을 졸업하고서는 잠시 파트타임으로 일을 했다. 보조, 조수에 가까운 일이었지만 새로웠고 재미있었다. 외향적이고 활발한 성격은 아니지만 낯선 사람들과 새로운 일을 한다는 게 좋았다. 한동안 그렇게 일을 했다.
남자친구는 교회에서 만났다. 교회에서 청년부 회장을 하던 친구였는데 적극적인 모습이 보기 좋았다. 좋은 대학에 다닌다는 이야기를 듣기 전에도, 그 친구가 똑똑해 보였다. 청년들이 우왕좌왕 무언가 결정을 하지 못할 때, 의견이 너무 많아 갈피를 잡지 못할 때 항상 그 친구가 해결책을 제시했다. 나는 우유부단하고 앞에 나서지 못하는데, 멋있어 보였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 연애를 하다 결혼을 했다.
시부모님도 좋은 분들이었다. 어머니는 여성스럽기보단 괄괄한, 남자 같은 성격이었다. 아버지는 호랑이 같은 분이셨지만 며느리에게만큼은 유한 분이었다. 결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일은 그만두었다. 파트타임으로 시작한 일이지만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팀장도 되고 다른 지점으로 갈 수도 있을텐데, 그런 아쉬움을 떠올리진 못했다. 주변에 친구들도 대부분 일을 하다가도 결혼을 하고 그만 두었으니까. 집에서 시어머니와 함께 하루 종일 있는 여자가 심심해 보였는지, 어느날 시아버지는 며느리에게 집 근처 요리학원을 다녀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여자는 요리를 잘 하진 못했지만 좋아했다. 그래서 시아버지가 등록해 준 요리학원을 다니며 요리를 배웠다.
부유하진 않지만 남 부럽지 않게 지내던 여자는 마흔이 넘어서부터 남편 때문에 마음 고생을 했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는 일도 많았다. 그때마다 여자는 방에 앉아 울었다. 처음에는 눈에서 눈물이 났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으로 울었다. 더는 나올 눈물이 없는지, 눈에서 눈물이 나지 않았다. 그래도 그녀에겐 언제나 며느리 편을 들어주는 시아버지가 있었고, 무럭무럭 자라는 두 딸들이 있었다. 그래서 여자는 힘들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도 힘을 냈다. 아주 오래 전 시아버지가 등록해 준 요리학원에서 배웠던 요리들을 응용해서 두 딸들에게 맛있는 저녁을 차려주는 일상을 보냈다.
쉰이 조금 넘어, 시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의 나이가 되자 형편은 더 어려워졌다. 늘 여자를 지지해주던 시아버지는 세상을 떠났고, 성인이 되어 직장을 다니는 두 딸만 남았다. 언제는 일을 한다며, 언제는 공부를 한다며 집을 떠난 남편은 아주 가끔 50만원이, 10만원이 필요할 때만 연락을 해왔다. 끔찍하게 싫었지만 아이들의 아빠였고, 남편이었다. 그래서 여자는 남편에게 50만원을, 10만원을 부쳤다.
큰 딸의 월급으로 월세를 내고, 자동차 할부금을 냈다. 어린시절 아이를 키우는 데 부모가 돈을 썼다 한들, 200만원을 벌어 절반을 생활비에 보태는 딸에게 미안함이 컸다. 돈을 벌어야겠다 생각했다. 시아버지가 살아계실 때에도 여자는, 시아버지의 부담을 덜기 위해 돈까스집에서 만두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80만원, 100만원 큰 돈은 아니었지만 시아버지 돈을 덜 받기엔 충분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르바이트론 안 됐다. 요양보호사 시험을 준비했다. 큰 딸이 매달 40만원, 할부금을 내는 차를 타고 실습도 나갔다. 시험에 붙고나서도 일자리를 바로 구해, 매일 같이 그 차를 타고 출근을 했다. 여자는 남편이 큰 딸의 이름으로 60개월 할부로 차를 살 때, 막지 못한 것을 늘 후회했다. 그 차를 탈 때마다, 먼 미래엔 큰 딸에게 할부금보다 더 큰 보탬을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여자는 요양보호사로 5년째 일하고 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의 대소변을 받고, 치매 노인들의 물리적 정신적 폭력도 그러려니 하면서 매달 230만원을 받는다. 그 중에 50만원은 여동생에게 보낸다. 오래전 남편이 여동생 이름으로 은행 대출을 받았다. 원금은 갚을 엄두가 나지 않는 금액이라, 여동생의 이자를 대신 내주고 있다. 남편이 여자의 이름으로도 이런저런 대출을 받은 탓에, 여자는 한때 신용불량이 되기도 했다.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꼬박꼬박 갚았고, 요양보호사가 된 지 2년만에 신용불량 꼬리표를 뗐다.
올해로 예순넷인 여자는, 일흔이 될 때까지 일을 할 생각이다. 결혼한 큰 딸이 매달 보내주는 생활비가 있지만 그 돈은 잘 모아뒀다가 나중에 딸들과 여행을 갈 때 써야 하니까. 작은 딸도 언젠가 결혼을 해 분가를 하면, 적어도 방 한칸은 얻을 돈이 필요하니까. 기회가 돼서 둘이 살기엔 좀 큰 집에 살게 되면, 엄마와 같이 살고 싶어 하는 큰 딸이 있긴 하지만 더 이상 짐을 지우고 싶진 않아서. 여자는 아주 가끔, 결혼을 하고도 옷을 만드는 일을 계속했다면 어땠을지, 아주 가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