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지 않았어도 나는 당신에게 줄 수 있다는 믿음
反面敎師
반면교사
사람이나 사물(事物) 따위의
부정적(否定的)인 면(面)에서
얻는 깨달음이나 가르침을 주는
대상(對象)을 이르는 말
그래, 우리 부모님은 자녀들에게 나름대로 사랑을 주었다. 그러나 ‘나름대로’라는 것은 안타깝게도 효과적이진 않았다. 슬픈 일이다. 노력은 했지만, 가닿지 못한 애씀. 이들은 자신의 슬픔과 불안이 자녀들의 울음소리보다 더 커서였을까? 자신의 그것을 달래고 달래느라 아마 자식이 잘 보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
뒷모습. 바라봐주지 않는 부모의 뒷모습을 따라다니다 지친 아이는 공허하고 비어있는 마음으로 몸이 컸다. 나는 그저 따뜻한 포옹, “아이구 괜찮아. 실수해도 괜찮아” 이러한 정서적인 만남이 필요했던 것 같은데, 뭐 그렇지만 그런 만남이 없어도 살 수 있긴 하다는 점이 또 인간의 굳센 생명력을 증명하는 듯하다.
이중적인 메시지 속에서 사랑을 안달하며 자라나기. 안달이 가득 났는데, 반응이 오지 않으면 할 수 있는 건 강력한 침투나 강력한 철수 둘 중에 하나가 아닐까. 안달하는 몸과 목소리가 대상에게 먹히지 않으면서 나는 점점 무던해졌고 물러서게 되었다.
감정적으로 힘든 어른이 모는 격렬한 감정의 롤러코스터 속에서, 나는 티켓을 끊지도 않았는데 강제로 탑승하고, 빈약한 안전벨트를 착용한 뒤 공포에 떨며 자주 벼랑으로 떨어지는 듯한 감정을 느꼈다. 그래도 나는 그들의 손을 잡고 있는 게 좋았을 것이다. 부모니까. 태어나서 내가 만난 세상의 전부였을 테니. 그리고, 어느 날들은 정말 이런 날들이 계속 됐으면 하며 행복하기도 했을거다.
무언가를 보고 배운다는 건 무섭게도 체득된다. 마치 향기가 스며들듯 나도 모르게 들어와서 나도 모르게 발현된다.
나에게 아주 상처였던 것을 몸이 기억해서 비슷한 상황이 오면 나도 모르게 상흔을 낸다. 말로 행동으로, 나 혹은 애착하는 대상에게. 나는 그걸 너무 막고 싶었다.
‘놀라지 않아야지’ 다짐하고 또 다짐을 해도, 자신이 고통스럽기 때문에 본인의 생명을 걸겠다고 죽음을 예고하는 공포의 예고장이 예상치 못하게 날아오면 속이 울렁거리고 평온한 흐름의 몸이 언제 있었냐는 듯 심장이 뛰고 쌓여있던 분노가 마침내 기회인가 하며 목에서 터질 것 같은 느낌으로 타오른다.
이러한 분위기에 내가 스며들까 봐 억울하기도 하고 그냥 포기하고 내던져버릴까 싶기도 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도무지 어떻게 그럴까?’ 생각을 도돌이표 노래처럼 계속 읊조린다. 닮고 싶지 않아, 스며들고 싶지 않아. 계속 계속 생각하며 인간은 스스로 미래를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을 주문처럼 계속 떠올린다.
‘내가 경험한 것이 비록 - 라도. 난 + 를 지향할 거야. 나의 태도는 내가 선택할 수 있어. 난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절대 그러지 않을 거야…’
반면교사로 배운다는 말에 위안을 얻는다. 나에게 주어진 것이 ‘실제 경험’이라면 그 경험을 그대로 활용하기보다는 발판 삼기. 실제 경험 그 반대의 무수한 긍정의 경험 속에서 풍요롭게 선택하기.
나에겐 내가 선택한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에게 내가 선택한 태도와 마음가짐으로 사랑할 것이다. 절대, 내가 받았던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나를 아끼고 사랑할 거다. 슬플 땐 슬프더라도 사랑스러울 때 사랑스럽고 귀여울 때 귀엽고 이게 어려울 땐 어려워하며. 나는 따뜻하고 지지적인 포옹을 몰랐더라도, 뚝딱대더라도 노력해서 당신에게 할 것이다. 당신에게 새로 배웠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