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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와우 Aug 24. 2024

반면교사, 나는 다름을 선택하며 사랑하기

받지 않았어도 나는 당신에게 줄 수 있다는 믿음

反面敎師
반면교사

사람이나 사물(事物) 따위의
부정적(否定的)인 면(面)에서
얻는 깨달음이나 가르침을 주는
대상(對象)을 이르는 말

여름이 찾아오던 어느 날의 달

비어있는 마음을 긁으며


그래, 우리 부모님은 자녀들에게 나름대로 사랑을 주었다. 그러나 ‘나름대로’라는 것은 안타깝게도 효과적이진 않았다. 슬픈 일이다. 노력은 했지만, 가닿지 못한 애씀. 이들은 자신의 슬픔과 불안이 자녀들의 울음소리보다 더 커서였을까? 자신의 그것을 달래고 달래느라 아마 자식이 잘 보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


뒷모습. 바라봐주지 않는 부모의 뒷모습을 따라다니다 지친 아이는 공허하고 비어있는 마음으로 몸이 컸다. 나는 그저 따뜻한 포옹, “아이구 괜찮아. 실수해도 괜찮아” 이러한 정서적인 만남이 필요했던 것 같은데, 뭐 그렇지만 그런 만남이 없어도 살 수 있긴 하다는 점이 또 인간의 굳센 생명력을 증명하는 듯하다.


이중적인 메시지 속에서 사랑을 안달하며 자라나기. 안달이 가득 났는데, 반응이 오지 않으면 할 수 있는 건 강력한 침투나 강력한 철수 둘 중에 하나가 아닐까. 안달하는 몸과 목소리가 대상에게 먹히지 않으면서 나는 점점 무던해졌고 물러서게 되었다.


감정적으로 힘든 어른이 모는 격렬한 감정의 롤러코스터 속에서, 나는 티켓을 끊지도 않았는데 강제로 탑승하고, 빈약한 안전벨트를 착용한 뒤 공포에 떨며 자주 벼랑으로 떨어지는 듯한 감정을 느꼈다. 그래도 나는 그들의 손을 잡고 있는 게 좋았을 것이다. 부모니까. 태어나서 내가 만난 세상의 전부였을 테니. 그리고, 어느 날들은 정말 이런 날들이 계속 됐으면 하며 행복하기도 했을거다.


나는, 나는 절대 그러지 않을 거야

아무 생각 없이 걷다, 뜨거운 빛이 확 눈부셔 쳐다보니 태양과 눈을 마주쳤다. 내 가슴 속 이 커다란 감정도 저렇게 빛을 아름답게 내고 이내 져서 나에게 쉴 시간을 줬으면 했다.

무언가를 보고 배운다는 건 무섭게도 체득된다. 마치 향기가 스며들듯 나도 모르게 들어와서 나도 모르게 발현된다.


나에게 아주 상처였던 것을 몸이 기억해서 비슷한 상황이 오면 나도 모르게 상흔을 낸다. 말로 행동으로, 나 혹은 애착하는 대상에게. 나는 그걸 너무 막고 싶었다.


‘놀라지 않아야지’ 다짐하고 또 다짐을 해도, 자신이 고통스럽기 때문에 본인의 생명을 걸겠다고 죽음을 예고하는 공포의 예고장이 예상치 못하게 날아오면 속이 울렁거리고 평온한 흐름의 몸이 언제 있었냐는 듯 심장이 뛰고 쌓여있던 분노가 마침내 기회인가 하며 목에서 터질 것 같은 느낌으로 타오른다.


이러한 분위기에 내가 스며들까 봐 억울하기도 하고 그냥 포기하고 내던져버릴까 싶기도 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도무지 어떻게 그럴까?’ 생각을 도돌이표 노래처럼 계속 읊조린다. 닮고 싶지 않아, 스며들고 싶지 않아. 계속 계속 생각하며 인간은 스스로 미래를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을 주문처럼 계속 떠올린다.


‘내가 경험한 것이 비록 - 라도. 난 + 를 지향할 거야. 나의 태도는 내가 선택할 수 있어. 난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절대 그러지 않을 거야…’


반면교사로 배운다는 말에 위안을 얻는다. 나에게 주어진 것이 ‘실제 경험’이라면 그 경험을 그대로 활용하기보다는 발판 삼기. 실제 경험 그 반대의 무수한 긍정의 경험 속에서 풍요롭게 선택하기.


나에겐 내가 선택한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에게 내가 선택한 태도와 마음가짐으로 사랑할 것이다. 절대, 내가 받았던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나를 아끼고 사랑할 거다. 슬플 땐 슬프더라도 사랑스러울 때 사랑스럽고 귀여울 때 귀엽고 이게 어려울 땐 어려워하며. 나는 따뜻하고 지지적인 포옹을 몰랐더라도, 뚝딱대더라도 노력해서 당신에게 할 것이다. 당신에게 새로 배웠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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