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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온 오리 May 23. 2024

대학병원 신생아실 1차 면접 통과

일과 생활의 균형과 조절을 맞춰 가며 새로운 적응기를 가지려 한다.



나는 아들의 진료를 위해 병원 바로 앞에 주차를 하느라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핸드폰 벨이 울려 대는데 내 핸드폰에 저장돼 있지 않은 처음 보는 번호였다. 나는 핸들을 조심스레 틀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알바몬에서 OO병원 신생아실 지원해 주셨죠?"


"아! 네."


나는 그 전화 가 반가웠다. 집에서 자차로 7분에서 8분이면 도달하는 곳에 위치한 대학 병원이다. 자격증도 필요 없고, 초보도 가능하다고 해서 이력서를 전송 시켜 봤었다. 병원 일이란 게 생소하긴 하지만 안정적인 월급에, 4대 보험에, 명절 보너스에, 한 달에서 3개월 뒤에는 연차에, 너무나도 좋은 조건이었다.


"지금 통화가 가능하실까요?"


"지금 아이 병원에 가느라 주차 중이긴 한대요."


"아! 그러면 제가 5분 있다가 전화 드려도 될까요?"


"네, 네. 감사합니다."


나는 차 안의 스피커와 블루투스로 연결돼 있어 핸드폰 통화 음이 끊기는 소리를 차 안 가득 퍼지도록 선명하게 들으며 주차를 마무리 했다. 그리고 아들과 함께 재빠르게 병원으로 올라 갔다.

오전에 등교 시키고 후딱 예약을 하고 갔었지만 앞에 진료들이 밀렸는지 기다려야 했다. 기다리며 OO병원 신생아실에 지원한 사항에 대한 이력서 통과로 다음 날 오전에 1차 면접 약속을 통화로 마무리 했다.









나이 40대 중반, 결혼과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대한민국 경단녀, 자격증 없는 전직 방송작가, 그게 나의 현실이었다. 그래도 다시 돈을 벌며 직장을 가져 보겠다고 지난 1년 몇 개월 동안 아르바이트와 계약직을 전전해 봤다.

hy 야쿠르트 배달 매니저 9개월, 롯데 렌터카 인바웃 상담직 3개월, 재택 십자수 아르바이트 5개월, 쿠팡 물류 창고 물품 분류 노동 3일, 기업 내 직원 식당 주방의 세척 아르바이트 2일, 학습지 선생님 1달, 전철 자판기 사업 프리젠테이션 도전, 자영업까지 고려 했었다.

틈틈이 Daum 브런치에서 집필도 하고, 책 출간도 했다. 시민 위원으로서 상반기 1번, 하반기 1번으로 시청 회의도 참석하고 시의 육성 재단 교육이나 행사 부분 모니터링 활동도 했다.


그렇게 1년 몇 개월을 직업을 찾기 위해, 다시 사회인으로서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나와 아들만이 존재하는 새 삶을 당당하게 꾸려 나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만 컸다.


나는 아들을 지키고 챙기기 위한 변명 아래 내 품 안의 아들을 내 스스로 놓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아들의 모든 걸 내가 챙기지 않음 안된다는 불안과 우려에 내 스스로를 가두기만한 거 같다.

아들도 이제 초등 고학년을 눈 앞에 두고 있고, 사춘기 전조 증상이 슬슬 보이는 거 같고, 친구들과의 어울림에 점점 촛점을 맞추고 있는데 말이다. 하나씩 아들 개인으로서의 독립을 준비해도 될 나이인데 말이다.

아들을 온전히 내가 책임지려 하기보다 아들이 엄마를 전적으로 믿으며 의지하고 사랑하는 그 정서만 계속 잘 지켜 줘도 이제는 괜찮다는 걸 나는 자각하지 못히고 있었던 거 같다.  지금의 힘든 상황도 엄마 껌딱지로 엄마인 나와 잘 버텨 나가고 있는대도 말이다.

아들을 온전히 붙어서 케어하는 시간 보다, 아들에 대한 엄마의 사랑과 아들이 믿고 있는 엄마의 굳건함만 잘 지켜주면 내가 다시 경제 활동을 시작하는 직업인으로서도 서로 잘 적응하고 하나하나 잘 맞춰 나갈수 있을 거라는걸 부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했던 거다.

그래서 생각을 조금 바꾸고 변화 시키기로 결심 했다.


다시 돈을 벌어야하는 직업 사회로 나아가며 현실을 나의 상황과 시간에 맞추지 말고, 나를 현실의 상황과 시간에 맞추어 일상을 리모델링 해야 함을 뼈때리게 깨달은 거다.

11년 주부로서, 경단녀로서 살아 오다가 다시 나의 직업을 찾기 위해 좌충우돌 하며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찾아 온 거다. 그리고 그 현타는 제때 나를 찾아와 준 것 같다.


솔직히 나이 40대 중반, 결혼과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대한민국 경단녀, 자격증 없는 전직 방송작가였던 나에게 저만한 안정적인 직장도 없다. 자격증도 필요 없고, 초보라도 배워서 잘만 하면 오래 다닐 수도 있는 4대 보험 되는 직장 찾는 게 쉽지 않다.


아줌마 소리 듣는 이 나이에 쉽게 면접 오케이 하는 곳은 기본급 없고, 아쉬운 소리 섞어 가며 맨 땅에 해딩해 수수료를 악착 같이 챙겨야 하는 보험 영업이었다. 솔직히 나는 영업 하시는 분들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정말 자신 없는 분야고, 실제로도 나는 영업이 섞인 일에서 돈을 벌어 본 적이 없다.

시장 조사하고 분석하고 트랜드 살피는 일은 할 줄 알지만 막상 사람들 앞에서 영업의 '영'자도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성향과 능력 때문이다. 솔직히 먹고 살려면 그런 게 어딨어, 그냥 죽어라고 해야지가 답인데, 그게 맞는 건데 참 배부른 소리일 수도 있다.

하지만 'MBTI' 유형이다,  혈액형별 성격 유형이다, 사주팔자형 타고난 성형이다 등 등 우리가 각자의 고유 성향과 재능과 장점을 나누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고 본다. 어느 분야에서는 유난히도 안 되는 사람들이 있다.


솔직히 전공한, 임신 막달까지 해 온 작가 일로 다시 복귀하면 좋겠지만 꿈과 현실의 간극의 차이는 너무나도 크다.


결국 난 되도록이면 안정적인 직장을 찾기로 했다. 쿠팡 택배 배달 업무도 이력서를 전송하려던 중이었다. 그 순간에 집 가까이 있는, 내가 어릴 때부터 동네에서 봐 온 대학 병원에서 이력서 통과로 연락이 온 것이다.


나는 너무 감사하고 기뻐서 다음 날 약속한 시간 10분 전에 면접을 보기 위해 사무실로 달려 갔다.


대학 병원 신생아 실은 중환자 실이라고 보면 된단다. 인큐베이터로 들어오는 아이들을 위해 간호사를 도와 청결히해 주고, 언제 있을지 모를  신생아 중환자실 아기들을 위해 기본적인 것들을 준비해 주는 보조 업무란다.

저출산과 병원 의료 사태로 지금은 일이 많지 않아 2명만 뽑는단다. 새로 들어 오시는 분들이 여유 있게 일을 배우며 시작할 수 있는 좋은 시기라고도 하셨다.

오전에서 오후까지의 근무와 오후에서 밤까지의 근무로 2교대라고도 했다. 한 달의 근무 스케쥴은 병원에서 정해 준단다. 휴일도 본인의 선택은 아니란다.

따박따박 배달 월급에 4대 보험도 되고, 명절 보너스도 있었다. 일 하다 적응하기 시자함 연차도 쓸 수 있으며 1년씩 계약하는 형태란다. 그렇게 애기를 나누고 1차 면접을 통과 했다.


2차로 병원 수간호사와의 면접이 있단다. 수간호 면접에서 합격함 바로 신체 검사에 들어 가야 한다. 신생아실이라는 특성상 일반 신체 검사와 특수 신체 검사 두 가지를 다 해야 한단다. 2주 후에 신체 검사 결과가 나오고 신체 검사 결과도 통과 되면 그 다음 주부터 출근이란다.


나는 2차 수간호사 면접 일정이 잡히는 대로 통보해 주시겠다는 말을 듣고 나왔다. 나와서 10년 만에 동네 스튜디오로 가 명함 사진을 찍었다. 병원 양식으로 지원서는 다시 써서 바로 제출을 했지만, 사진을 제출하지 못해 이력서용 반명함 사진을 제출하기 위해서였다.

10년 만에 찍는 명함 사진이라 조금 떨리기도 하고, 이 나이에 사진이 잘 나올까 싶어 신경도 쓰였다.


이제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해, 아들과 둘뿐인 새 삶을 제대로 준비하고 적응할 생각이다. 마음만 먹으면, 아들과 서로 잘 의논하고 협의해 헤쳐 나가며 적응하면 괜찮을 거라고 본다.


브런치에서 작가 활동으로 집필도 꾸준히 해 나갈 생각이다. 이제는 내 상황과 시간에 현실을 맞추려 하지 않으려 한다. 현실에 나와 아들이 맞춰 나가며 나와 아들의 생존과 일상의 적응기를 펼쳐 나갈 생각이다.


나는 이제 40대 후반 문턱 앞에 선 채 직업을 가진 사회인이 되기 위한 한 발을 제대로 내딛고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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