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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온 오리 Oct 23. 2023

40대에 서 있는 출발선!

꿈을 꾸는데 경단녀라는 내 현실이, 40대라는 내 나이가 방해가 될까?

배고플 때가 있다. 나를 위해 뭔가를 찾지 못해 배고플 때 말이다. 나이 40대가 넘으니 그 배고픔을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도 이제는 잘 모르는 거 같다. 


내 나이 46세, 서른 후반대에 뒤늦게 결혼을 하고 아들을 하나 낳아 키우면서 나는 나를 잃어 버리고 살았다. 처음 해 보는 집안 살림에, 처음 해 보는 와이프 노릇에, 처음 해 보는 육아에, 늦게 결혼해 얻은 아들의 신생아기와 유아기가 나를 정신 없게 만들었다. 어떻게 저렇게 꼬물거리는 생명이 내 배 속에서 태어났을까 싶은 신기함에 어린 아이와 집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느라 경단녀가 되어 가느라 나를 잊고 살았다.


영업과 사업으로 바빠 신혼 때부터 항상 늦게 들어 오고, 주말에도 거의 집에 없는 남편 덕에 혼자 노는 법도 많이 터득했다. 지금까지도 동네에서 다 알 정도로 주말이든 평일이든 어린 아들하고만 항상 둘이만 같이 잘 다니다 보니 어린 아들과 대화를 하고, 투닥거리는 게 일상이 되었다. 그런데 이제 그 아들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더니 어느 새 키가 140이 넘어 섰다. 

아들이 얼집에 다니고 유치원에 다닐 때까지 남편은 내가 슬슬 일하고 싶어하는 것을 별로 달가워 하지 않았다. 그런데 코로나가 터졌다. 초반까지는 괜찮았던 듯 하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커 가는 아들에, 무섭게 오르는 물가에, 긴 코로나 상황에, 갑자기 터지는 해외 전쟁에 나는 집에만 있는 게 고민이 되었다. 점점 힘들어 하는 남편도 이제는 나도 아르바이트라도 다니거나 파트 타임 직장에 다니면서100만원이라도 벌었음 좋겠다고 했다. 경제가 IMF 때보다도 더 안 좋다고 했다. 


나는 그때부터 이것저것 찾기 시작했다. 뭘 하면 좋을지 고민도 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나는 장래희망 란에 한 번도 빠짐 없이 꾸준히, 일관 되게 '작가'라고 적어 왔다. 아빠가 우스개 소리로 그러셨다. 조그만게 어릴 때부터 어찌나 드라마 보는 걸 좋아하든지 어이가 없으셨단다. 

책 읽는 것도 좋아했다. 아빠가 갖고 계시는 고급 양서로 돼 세로로 글씨가 씌여진 일본 단편 소설집, 중국 단편 소설집, 러시아 단편 소설집 등 10권 정도로 돼 있는  종합집을 중학교 때 일주일만에 다 읽었다. 그리고 아빠한테 그 양서 단편 종합집을 나 주면 안되냐고 묻기까지 했다. 고등학교 때는 시 쓰는 게 재미있어 국어 선생님들만 쫓아 다녔던 거 같다. 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님이 내가 시 쓰는 걸 너무 좋아하니까 청소년 시 대회에 내보내 주셨었는데 상은 타지 못했었다. 그냥 글 쓰는 게 재밌고 좋았다. 


그렇게 나는, 아주 유명한 대학은 아니지만 문예창작과를 졸업했고 드라마 작가가 되길 꿈꾸고 꿈 꿔 왔다. 드라마 작가를 꿈꿨지만 시도 열심히 쓰고 동시도 열심히 쓰고, 대본도 열심히 쓰며 연습했다. 그 당시 시인협회 회장님이셨던 시 교수님께서 너무 열심히 한다며 강의 다 끝나고 남으라고 하셔서 한 시간 넘게 개인 작품 지도까지 해 주셨었다. 동시계 신현득 교수님이 오전 7시에 본인한테 전화하라고 하시더니 한 달 동안 전화로 작품 개인 교습도 해 주셨었다. 엄마가 작가가 되는 걸 너무 반대하시는 상황이라 눈치가 보이는 상황에서도 나는 너무 감사한 기억이라 잊을 수가 없는데, 아직까지도 제대로 찾아 뵙고 감사 인사도 못 드렸다.


그리고 나는 방송국 직원으로서가 아니라 프리랜서로 방송작가 일을 10년 넘게 했다. 여의도 한국작가협회에 다녀야 한대서 내가 돈 벌어 작가 협회 지망하고 면접도 합격해서 강의를 들으러 다니기도 했다. 아이템도 많고 글도 잘 쓴다고 칭찬도 받아서 나는 잘되겠지 하고 희망을 가득 품었던 때였다.

그렇게 작가가 되겠다고 자격증 하나 딴 적 없고, 다른 건 해 본 적이 없던 나다. 

코로나 사태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온라인으로라도 뭔가 공부를 해서 자격증을 따 보자 싶었다. 그래서 아들이 온라인 수업을 하거나, 학교에 등교한 시간에 온라인 한국지식교육협회에서 혼자 강의를 들으며 공부를 해서 방송sns콘텐츠전문가 1급, 아동폭력예방삼담사 2급 합격, 자기주도학습코칭 1급, 바리스타 1급 자격증을 취득하긴 했다. 한국지식교육협회에서는 이력서에 쓸 수 있는 자격증이라고는 하지만 나중에 알았다. 취직을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그 분야 협회에서 자격증을 다시 따야 함을 말이다.


그런 내가 나이 마흔이 넘은, 몇 년 있으면 나이 오십이 되는 지금 이 시점에 따지는 거 많은 이 대한민국에서 뭘 할 수 있을지 겁이 났다. 작가로 다시 돌아 가고 싶었지만 나는 일과 집만 오가느라 인맥도 없었다. 누구한테 물어봐야할지 막막했다. 더구나 긴 코로나 사태로 지금 막대한 돈을 들여 찍어 놓은 영화들까지도 극장 개봉을 다 하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이래저래 어느 분야나 힘든 시기인가 싶었다.  

더구나 나는 누가 먼저 찾아줄 정도로 유명한 작가도 아니었다. 결혼하고 임신한 몸으로 마지막에 영화 소재를 소설로 보고 싶어 하신 대형 제작사 회장님의 은혜로 소설 1권을 쓴 게 끝이었다. 얼결에 얻은 고마운 기회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작가로 돌아가는 것도 현실적으로 인맥도 없고, 방법도 모르고 어려웠다. 결국 알바몬과 잡코리아 등을 열심히 뒤지기 시작했다. 이력서들을 전송 했다알바몬잡코리아알바천국벼룩시장시에서 운영하는 일자리 정보 홈페이지 등을 매일 검색 했다그리고 10년 만에 써 보는 이력서를 나름 꼼꼼하게 써 나갔다쓸 수 있는 건 다 채워 넣었다자격증이라고 해 봐야 운전 면허증과 문예지도사 자격증어린 아들이 학교에 가 있는 동안 온라인에서 혼자 공부하고 온라인에서 시험봐 딴 자격증 방송sns콘텐츠전문가 1급 (한국지식교육협회), 아동폭력예방삼담사 2급 (한국지식교육협회), 자기주도학습코칭 (한국지식교육협회), 바리스타 1급 (한국지식교육협회)이 다였다

얼마 전에 동네 백화점에서 하는 취업 행사에 갔다가 알았다온라인에서 혼자 공부해 딴 바리스타 자격증은 현실적으로는 실용적이지 못하다는 걸 말이다바리스타 협회에서 교육 받고 필기실기를 다시 따야 한단다

어차피 큰 기대감도 없는데 철판 깔자는 마음으로 나이 40대 중반에 경단녀인 나는 내가 이력서를 집어 넣을 수 있는 곳은 다 전송을 해 봤다

이마트 물품 정리가까운 동네의 기업 구내 식당의 세척 일블로그 마케팅온라인 쇼핑몰 물품 관리 겸 사무 보조프리랜서 작가마트 캐셔집에서 가까운 배민 물류창고 물품 정리리서치 업무자택 근무 인바운드 상담카카오톡 쇼핑 상담웹툰 스토리 작가 등이었다. 어차피 연락 오는 곳도 없었다. 나는 다시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영업과 사업으로 바쁘다는 남편이다. 그런 남편이 집안 일과 아들의 라이딩과 케어를 전혀 신경 안 쓰게 해 주길 바라는 덕에 나는 아들을 케어하며 다닐 수 있는, 나이 제한을 하지 않는 파트 타임만 이력서를 지원했다. 

야쿠르트 배달 매니저 일도 9개월을 경험해 봤고, 렌터카 고객센터 상담사 일도 3개월을 경험 했다. 

야쿠르트 배달 매니저 일은 아들이 학교에 있는 시간에만 배달을 하다보니, 영업을 처음 해 보는 나는 버벅 댔고, 수입이 당연히 점점 줄어들기만 했다. 날씨랑 상관 없이 배달을 해야 하는 처음 해 보는 노동에 허리가 아프고 몸도 힘들었다. 결국 9개월을 다니고 그만 두었다.

렌터카 고객파트 상담 일은 일주일 교육을 재미있게 받고, 용어들이 생소하고 어려웠지만 바로 상담 일에 투입 됐다. 다양한 고객들을 전화로 상담해야 했지만 집에서 너무 가까웠고, 출 퇴근 시간도 아들 케어하며 하기에 너무 적당했고, 월급도 안정적이고, 4대 보험도 돼서 좋았다. 하지만 갑자기 서울로 사무실을 옮긴다 하고, 마침 그때 또 2년 반 전에 찾아 온 편두통이 출근한 어느 날 너무 심하고 고통스럽게 찾아 왔다. 전화 상담을 친절히 해야 하는데 신경을 너무 힘들게 건드리는 그 편두통으로 나는 그날 점심 시간에 조기 퇴근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진료 받으러 간 의사한테 편두통이 너무 심한 거 같아 큰 병원 검사를 한 번 받아 봤음 좋겠다는 권유에 의뢰서까지 받았다. 그래서 결국 3개월 만에 퇴사를 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온라인으로 작가 활동 승인을 받은 곳에 꾸준히, 끊임없이 글을 써 올리고 있었다. 글을 쓰면 스트레스가 풀렸다. 그리고 늦었지만 다시, 제대로 날개를 달아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미련한 희망을 버리지 못했다. 소설도 써 올리고, 에세이도 써 올리고, 시도 꾸준히 써 올렸다. 


물론 한편으로는 나를 현실적으로 달랜다. 여기는 미국이 아니다. 나이 마흔이 넘은 나이에도 열정과 일을 배워 잘 할 태도와 의지가 있고 비전만 보인다면 늦은 나이에서 비서일을 하고, 스튜어디스 일도 하는 나라가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경단녀이고 아줌마이자 애 엄마인 경단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보험일, 배달, 물품 조립, 상품 포장, 식당에서 설거지와 매장 서빙 등 정말 한정돼 있다. 하지만 내가 경험해 보니 무조건 그렇게 아줌마인 나를 받아주고 일하게 해 주는 곳만 찾아 이력서를 쓰고 교육을 받아 일한다고 또 다 되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이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들고, 심리적 방황에 빠지기도 한다.


나이 40대의 날개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해 진다. 거울을 쳐다보면서 그래도 포기만 안한다면 날개를 다시 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빠지다가도 현실적인 상황들에 한숨만 나온다.

그 한숨으로 나는 다시 이력서를 쓰고 있다. 아들 케어와 집안 일을 병행하며, 미련하게 온라인으로 글을 꾸준히 써 올리며,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르는 날개를 찾아 뒤늦은 방황을 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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