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저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아들의 얼굴에 내 얼굴을 가까이 갖다 댔다. 그런데 뭐지, 아들은 평소와 달랐다. 머뭇거렸다. 대놓고 고개를 돌리고 주변을 둘러 보지는 않았지만, 살짝 시선을 피하는 듯 눈둥자를 다른 곳으로 조심스레 내리더니 주변의 눈치를 살피는 듯 했다.
"이제 밖에서는 하지마."
"어? 뭐?"
나는 알아 듣지 못했다. 아들은 짜증을 내지 않았다. 퉁명스럽게 외면하지도 않았다. 뭔가 알 수 없는 조금 낯설은 표정을 지으며, 조용히 말했다.
"엄마, 이제 밖에서는 하지 말라고."
나는 순간 섭섭했다. 섭섭했지만 뭐라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민망해서 애써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아들에게 차 뒤 문을 열어 주고 나도 운전석에 올라 탔다.
"어머니 모르셨어요? 쟤네 C.C에요."
나는 순간 멍했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건지, 내가 왜 벌써 저 말을 듣는 건지 웃음도 안 나왔다. 그저 선생님 앞에서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4살 아들이 담임 선생님을 따라 어린이 집의 현관문 안으로 깊숙이 걸어 들어가는 뒤 모습을 쳐다볼 뿐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아들과 나란히, 참으로도 친하게 걷고 있는 같은 반 동갑내기 여자 애의 뒤 모습도 함께 말이다.
그랬다. 우리 아들은 4살 때 첫 C.C인 같은 반 여자 친구가 있었다. 그렇다고 무슨 4살 짜리가 어른들이 말하는 그런 C.C는 당연 아니다. 그저 야외에 나가면 유난히 둘이 나란히 걸어 다니고, 우리 아들이 유난히 엄마를 보고 싶어해 표정이 안 좋을 땐 그 어린 여자 친구가 등을 토닥거려 주며 위로해 주는 정도다. 다른 친구들 보다 둘이서 더 간식을 나눠 챙겨 먹고, 서로가 더 대화를 많이 하고, 같이 잘 노는 정도다.
그래, 그런 정도일 뿐인 게 어린이 집 다니는 4살 아들의 첫 이성 교재였다. 그런데 참으로 나는 유치했다. 담임 선생님에게 아들 등교 시키며 그 말을 듣자마자 기분이 묘하게 이상했다.
'내가 왜 벌써 저런 얘기를 들어야 하지? 아니, 벌써?'
나는 평소 아들을 내 소유라고 생각할 정도의 마인드를 가진 엄마가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자식일뿐 아들도 하나의 독립체인 인격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말하는 그래도 생각이 트여는 있는 엄마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래도 그렇지, 벌써?
4살 아들에게 C.C가 있다는 담임 선생님의 말을 듣고 종일 기분이 좀 묘하고 이상했던 나는 결국, 아들이 하원할때 픽업 가서 세상에서 제일 유치한 엄마의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너 엄마가 좋아? 네 여자 친구가 좋아?"
4살 아들은 망설임 없이, 별 대수롭지도 않은 질문이라는 듯 대답 했다.
"엄마."
세상에서 제일 유치한 모습을 보인 나는, 정말이지 창피하도록 유치하게도 아들의 말을 듣고 '그지!'하는 마음으로 씩 웃었었다.
지금 생각해도 어찌 내가 그리도 4살 밖에 안된 아들 앞에서 유치 찬란할 수 있었는지 알 수가 없다.
"나보고 이제 밖에서는 하지 말라고 그러더라고. 아직도 밖에서 같이 걸어 다니면 여전히 엄마한테 팔짱을 끼면서 이제 밖에서는 하지 말라 그러더라고."
나는 좀 심란한 표정으로, 아니 그래 받아들여야지 하면서도 섭섭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들을 비롯해 또래 남자 아이 세 놈이서 놀고 있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같이 지던 같은 학교, 동네 동생은 푸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언니, 우리 눈에만 애기야. 밖에서는 이제 내가 뺨에다 뽀뽀하는 것도 슬쩍 피하더라고요. 이제 애들도 4학년 됐다고 친구들 눈치 봐요."
"그건 그래. 마마 보이 소리 들을까봐, 지들도 또 남자라고 이제 좀 주변 눈치도 보고 그러더라. 이제 내년 돼 봐. 우리랑 쇼핑도 안 다닐 걸! 친구들이랑 약속 있다고 용돈이나 달라고 하지. 이제 금방이야."
또 옆에 앉아 있던 같은 학교, 동네 언니도 웃었다. 언니는 아들 친구인 늦둥이 막내 아들 위로 누나 둘을 키워 본 경험이 있다. 그 언니가 말했다. 이제 정말 금방이라고 하며 말이다.
좋고 싫은 게 분명하고 자기 의견은 확실한 울 아들은 절대 마마 보이가 될 기질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엄마와 애착 관계가 좋았을 뿐이다. 가정적이지 않은, 밖으로만 도는 지 아빠 덕에 24시간 엄마랑 붙어 다니며 엄마와의 관계가 좀 더 애정 어릴 뿐이다.
그런데 내가 당연히 성장해 가고, 하나의 인격체로 커 가는 아들의 그 말에 왜 이리 은근한 섭섭함을 느껴야 하는지 모르겠다. 나이 마흔 중반이 넘어 가고 있는 나이에 참으로 유치 찬란한 엄마란 생각만 든다.
나도 이제 준비를 해야 한다. 나도 내 일을 찾고, 나를 위한 인생의 노후 계획을 세워야 한다. 성장해 가는 아들이 서서히 내 품에서 놓아지며 자신의 인생을 찾아가는 모습을 그저 흐뭇하게 지지하고 응원해 주는 보호자일 뿐이라는 점을 내 스스로에게 인식 시켜 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