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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온 오리 Jun 19. 2024

엄마는 잠을 자고 싶단다, 아들아!

아들아, 침대는 잠이 들라고 눕는 곳이란다. 밤에는 잠을 자야 한단다.



"많이 먹어. 더 시킬까?"


친정 아빠와 남동생의 말이 고마웠지만, 메뉴판을 보고 나는 침만 꿀꺽 삼켰다. 아무리 코로나에 경제 불황에 물가 고상승이라지만 너무 한 거 아닌가 싶었다. 소곱창 1인분이 3만원 돈이라니!

나는 속으로 헉 했다.


"아니, 괜찮아. 맛만 보면 돼. 볶음밥 먹으면 배 부를 텐데 뭐."


내가 내는 돈도 아닌데, 아무리 먹고 싶다한들 염치 없이 친정 아빠의 지갑을 계속 털어 대고 싶지는 않았다. 안그래도 지금은 만나면 남동생과 친정 아빠가 커피 값까지 다 결제하고 있는데 나이 마흔 후반으로 치닫는 나이에 '에라, 모르겠다.'는 식의 철판을 까는 얼굴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정말 3년 만에 먹는 곱창을 맛만 봤다. 아직도 편식 심한 아들 덕에 고기 집과 돈까스 먹으러는 지겹게 다녔지만 정말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은 몇 년 만인가 싶어 눈물이 나려 했다.

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타오르고 있는 저 소곱창처럼 내 마음도, 가슴도 지금 속타오르며 지글지글 타오르고 있었다.









"날 위해서 뭐든 한다며?"


그랬지. 증거 빼박인 이혼 소송과 상간녀 소송으로 1월 말부터 너와 나의 힘든 안방 칩거 생활이 시작 되었고, 나는 널 지키기로 마음 먹었고, 너를 위해서 열심히 돈 벌이가 되는 일 자리를 구하고 있고, 널 위해서는 뭐든지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아들, 밤에는 빨리 잠이 들어 주면 안되겠니 제발?, 엄마는 요즘 하루 하루가 피곤하단다. 왜 너는 잠 자는 시긴만 되면 그 놈의 끝말 잇기 놀이로 시간을 끄는 건지, 엄마는 정말이지 방 불을 끄고 누우면 곧바로, 아무 생각 없이 잠이 들어 버리고 싶단다.


"한 판만 더 하자고, 더 해."


아, 돌아버리기 일보 직전이다. 안그래도 안하무인으로 상식이하로 시간을 끄는 상대 피고들 때문에 나는 혼자 피식 거린다. 기가 막힌 피식 거림이다. 저것들 때문에 내가 미쳐 가는 건 아닌지 싶을 정도다.

변호사도 이건 판사도 받아 들이기 힘든 상식 이하의 피고들이라고, 본인들 무덤을 본인들이 스스로 파고 있다며 어이 없어 한다.


나는 갱년기가 다가오는 시기라 안 타던 더위를 타고, 새벽에 한 두번 씩은 잠에서 깬다. 꼴보기 싫고, 불편한 인간과 동거를 하느라 하루하루가 피곤하고 불쑥불쑥 욱해 온다.

누가 봐도 미친 짓을 하고 있는 피고들 때문에 나는 예민해져 있다. 물론 아들도 예민해져 있다. 이렇게 에 들어 오는 피고는 처음이라는 호사와 경찰 말처럼 자신 밖에 모르고 자신의 이익만 챙기려 어린 아들의 의견과 감정 따위는 나는 모르겠다는 피고 때문에 죽을 맛이다.

어린 아들은 언제 정리 되냐고 눈물 어린 눈으로 나에게 화를 내기도 했다.


그래 아들, 지금 너와 나는 그런 상황이다. 더구나 이 엄마는 갱년기를 눈 앞에 두고 있는, 그런 내 몸과 정신 따위가 지금 전혀 나를 돌아볼 시간을 안 주고 있다.


그런데 아들도 사춘기 전조 증상이 오는지 자신의 주장과 고집이 더 쌔지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은 안아 달라고 엄마한테 투정을 부리고, 사랑한단 말을 주고 받는 정말이지 꽁냥꽁냥인 나의 하나뿐인 아들이다. 길 거리 지나가는 할머니들도 "어머, 쟤 좀 봐."하고 웃으며 쳐다보고 갈 정도로 나와 아들의 꽁냥꽁냥은 하루에도 몇 번씩 보여진다.

지 아빠가 낯짝도 두껍게, 그 누구도 이해 못할 정도로 뻔뻔하게 양육권 주장을 해 온 뒤로는 내가 백화점에서 화장실만 가도 따라 온다. 그런 손자를 보며 친정 아빠는 진짜 인간 이하인 피고에게 화가 나시는지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떠신다.

어쩌랴! 이 상황이 미안하기도 하고 어떻게든 지켜 주고 싶고 ,뭐든지 해 주고 싶고, 내가 저 하나뿐인 아들을 위해서는 무엇을 못하리 싶은, 나는 그런 엄마일 뿐이다.


그런데 너는 왜 나를 잠이 들지 못하게 하려는 거니? 이 엄마는 방 불을 끄고 눕는 순간 그냥 잠들고 싶기만 하다는 걸 왜 계속 못 들은 척 하는 거니?


달래도 보고, 협박도 해 보고, 그러다 또 나는 아들에게 진다. 결국 나는 너를 이길 수 없는 건가 싶은 마음으로 나도 모르게 끝말 잇기를 한 판 더 하고 있다.


아! 제발 그렇게 빌고 빌었잖아요.

40대 후반으로 치닫고 있는, 이제 예비 싱글맘으로서 할 일이 많은 나의 갱년기와 끔찍이도 내게 소중한 저 초등 아들의 사춘기가 겹치지 않게 해 달라고 빌었어요. 그런데 그 빌고 빌었던 갱년기와 사춘기가 겹칠 거 같은 이 불길한 예감을 굳이 지금 제게 주시는 연유는 무엇입니까?


올해는 저에게 너무 많은 시련과 고난과 고민들을 주시는 것에 대해 저는 그냥 웃어야 할까요? 아니면 울어야 할까요? 그 어떤 것도 명확한 끝냄과 해결책을 주시지 않는 것에 대해 계속 힘들어야만 할까요?









노트북 앞에 앉았다. 나는 이제 돈을 벌기 위해, 살기 위해 글을 쓰고 있다.

주말 연속극식 영상 소설인 '돌아온 세 자매'를 집필하며 또 다른 16부작 미니 시리즈식 영상 소설의 소재가 떠올라서 손이 근질하다. 제대로 써 내고 싶어서 나는 이 놈의 노트북을 뚫어져라 노려보며 벌써 35도인 더위 속에서 쎠큘레이터를 등 뒤에서 열심히 돌리고 있다. 그런더 너무 졸립다.  나는 두 눈을 부릅 뜨고 나 자신과 싸우고 있다. 일찍 시작된 폭염과 싸우고 있다. 새소설 제목은 '무죄'다.

이 '무죄'라는 16부작 미니 시리즈 형식의 영상 소설은 언제부터 연재를 시작할지도 아직 모른다. 스토리를 탄탄하게 기획하고 싶어서다. 주요 캐릭터와 핵심 주제와 줄거리는 대충 이미 머리 속에 담겨 있고, 메모 중이다.


아들은 내게 말한다.


"엄마, 돈 많이 벌어. 돈 안 많아도 엄마랑 살 거지만, 그래도 백억 정도 벌 수 있어? 나는 엄마가 너무 좋아."


고맙다. 나도 끔찍하도록 소중한 네가 세상에서 제일 좋단다. 엄마가 지금 소송 중으로 사람이기를 거부한 피고 없이는 거뜬히 살아도, 너 없는 삶은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단다.

그래서 이 엄마는 너의 말에 한숨을 쉬며 돼지 저금통에 있는 동전들을 탈탈 털어 로또를 사러 가야 겠구나 싶다. 그 로또가 안 될 확률이 99.99999%고, 될 확률이 0.1%이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널 위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저금통을 탈탈 털어 로또라도 사 보는 게 현실이란다.


스스로 자신들의 무덤을 파며 상식이하로 시간만 끌고 있는 피고들 때문에 정리 되지 않고 있는 당장은 그렇단다. 우리 조금만 참자. 그리고 다가올 너의 사춘기와 나의 갱년기를 현명하게 이겨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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