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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온 오리 Jun 22. 2024

조정 기일이 잡히고, 기분이 묘한 오늘

어차피 내가 원하는 대로 이혼은 확정이라면서 시간을 끄는 법원을 어찌..



"OO이 아빠 좋아?"


"아뇨."


"아빠 싫어?"


아들은 잠시 머뭇거렸다. 인자하면서도 사람의 눈과 마음을 들여다 보듯 들여다는 보는 의사 선생님의 시선과 질문에 지켜 보고 있던 나는 이게 무슨 일이지 싶었다.


"아빠 미워?"


아들은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일듯 말듯 가만히 앉아서 머뭇거리며 의사 선생님의 시선과 맞닿아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시면서 뭔가 좀 안타깝다는 표정을 애써 감춘 표정이었다.


"아빠 미워는 하지마."


의사 선생님은 그제야 나를 쳐다 보셨다.


"애가 참 선한 애네. 그런데 뭔가 눌려 있어. 엄마가 잘 안아 줘요. 나도 애를 셋을 키웠어요. 첫째가 이번에 결혼하는데 내가 첫째한테는 미안한 점이 있어요."


학교에서 하라는 건강 검진을 하러 갔을 뿐이었다. 마지막 문진 시간에 의사 선생님은 뭔가 지금의 우리 상황을 알고 계신 것처럼 아이한테 부드럽고 꽤나 자연스럽게 몇 가지 물으셨고, 자신의 얘기도 아주 잠간 해 주셨다. 그리고 나와 아들을 다독여 주시는 듯 했다.










"문진하는데 의사가? 우리 , OO이는 잘자라고 있다고 한 마디만 하시고 1분도 안돼서 끝났는데."


"언니 문진하는데 보통 그런 얘기 안 묻죠?"


"그러게. 희한하네."


"기분이 이상해요. 되게 부드럽고 자상하게 그러면서도 상대의 심리나 감정을 들여다 보듯한 표정과 눈빛으로, 그것도 부답스럽거나 거부감 없이 그런 말들을 하시며 다독이기까지 해 주시는데, 뭐지 싶었어요."


나는 기분이 이상했다. 안 그래도 법원에서 7월 중순에 이혼 조정 기일을 잡았다는 통보를 받고 기분이 너무 안 좋았다. 되도록 빨리 끝내 줬으면 했는데, 얼굴도 마주 하기 싫고 목소리도 듣기 싫은 사람과 나란히 마주 앉아서 판사와 명망있는 교수 등으로 구성된 심의관들 앞에서 또 그 사람의 변명을 들어 주고 내 얘기를 하라니, 너무 잔인했다.

나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변호사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 몇 마디 했다. 경찰이 아이를 위해서라도 판사한테 접근 금지 요청을 적극적으로 해 봐서 집에 안 들어오게 하는 방향을 생각하라는 조언까지 해 준 상태다. 그런데 변론 기일도 아니고 조정 기일이라니, 도대체 법원은 무슨 생각인지 무지한 나에게는 이해가 안 가는 통보였다. 고통스러운 사람에게 고통을 더 덧 입혀 주는 기일 지정 같기만 했다.


법원도 나름의 과정이 있고 규정은 있겠지만 우리나라 이혼 소송 과정이 피해자들에게 더 고통인 것은 맞는 거 같다. 나와 아들이 이 고통을 언제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 나와 아들은 언제나 법원의 보호를 받는 판결을 받을 수 있는 건지 솔직히 욱하기도 한다.

어차피 내가 원하는 대로 이혼은 확정이고, 법적인 정리가 필요할 뿐이라면서 왜 이렇게까지 시간을 끌며 피고의 상식이하의 행동들을 감당하며 고통 속에 미성년자와 피해자인 원고를 방치하는지 평범한 머리로는 이해가 가질 않는다.


그런데 학교에서 건강 검진 받으러 가라고 한 종합 병원에서 아들의 검진을 다 끝내고 마지막으로 문진 시간에 만난 의사의 말들이 계속 머리 속에 남았다.


혹시 조정 기일날 오시는 심사관 중 한 분이신가? 아니면 우연인가? 시력 얘기 하다가 갑자기 애한테 아빠에 대한 얘기는 물으신 걸까? 나는 왜 그 자리에서 왜 그런 질문을 하시는지 조심스럽게 여쭤 보질 못했을까?


그러다 그냥 우연이겠지, 설마 그럴리가 없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저 오늘은 참으로 묘한 날이라고만 생각하기로 했다.










거실에서 또 아들의 이름을 부르는 그 인간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들은 들은 척 하지 않다가 또 부르자 어쩔 수 없다는 듯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나는 나가기 싫으면 안 나가도 된다고 말해 줬다.

아들은 방문을 열고 나갔닥 몇 분 있다가 다시 침대 방으로 들어 와 털썩 누워 버렸다.


"끝말 잇기라도 해줘야 빨리 가게 할 거 같아서 얼른 끝내 주고 왔어."


그러면서 아들은 그 인간 땜 나가기 불편하다고 나보고 냉장고에 가서 치즈 좀 갖다 달라고 했다. 솔직히 나도 정말 꼴보기 싫지만 아들 요청에 어쩔 수 없이 후딱 방문을 열고 냉장고에 가 치즈만 집어 가지고 다시 침대 방으로 들어와 방문을 쾅 닫았다.


나와 아들은 저녁 8시나 8시 30분이면 다른 방들과 거실에 불을 다 꺼버리고 그렇게 작은 화장실 딸린 침대 방을 들어와 그 인간을 피해 방문 꼭 닫고 칩거 중이다. 너무나도 기막히게 밤이면 집에 들어와 팬티 차림으로만 소파를 점령하고 누워 TV를 크게 틀어 놓고 보다가 매트까지 구매해 아들 방바닥에 깔고 아들 방을 자신의 잠자리로 점령한 그 인간을 피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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