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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온 오리 Sep 21. 2024

이사를 했다. 임차인이 됐고, 동시에 임대인이 됐다.

아들과 둘만의 주거 공간으로 이사를 했다. 몸살날 거 같다.



"건물 안에 식당도 있고, 카페도 있고, 좋다 엄마."


"새 집 좋은데. 화장실이 작아진 것만 빼고."


초등 아들은 나보 낙천적이고 긍정적이다. 하얗고 포동해진 얼굴로 웃는 모습이 너무도 사랑스럽다. 나는 속으로 '네가 나보다 낫다.'라고 생각하며 웃었다.


그래, 위치도 좋고 사는데는 큰 불편이 없을거 같다. 얼리베이터만 타고 내려감 건물 안에 카페, 편의점, 슈퍼, 빨래방, 식당, 세탁소, 인테리어 업체, 등 편의 시설이 다 있는 편리함도 있다.

나의 능력과 경제력을 빨리 해결해야할 뿐이다.









나가는 이사짐들을 쳐다 보다가 아들을 학교에 등교 시키고 돌아 갔다. 년 넘게 살았고, 년을 채우지 못하고 어쩔 수없이 이사를 나가는 집이었다.


더구나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비가 내리는 날의 이사는 처음이었다.

아침밥 챙겨 먹을 시간도 없었다. 오전 일곱시가 넘어 원래 시간보다 15분 정도 일찍 도착하신 이사짐 센터 덕분에 급하게 아들을 깨웠다. 깨워서 미리 양해를 구한 대로 빵과 야쿠르트, 홍삼 음료를 챙겨 먹였다. 나는 아침밥 챙겨 먹을 정신도 없었다.


이사짐 챙기는 것을 지켜 보고 있다가 아들을 학교에 등원 시키고 다시 돌아 왔다. 돌아 오면서 이사짐 날라 주시는 센터 분들 드시라고 아이스 바닐라 라떼 네 잔을 구입해 왔다. 이사짐 센터 사장님과 직원 분들도 아침 밥도 안 챙겨 먹고 출근해 오신거란다. 작은 거지만 그래도 수고해 주시는데 시원한 아이스 바닐라 라떼라도 드시면서 하시라고 하고 싶었다.

상하수도, 전기세, 도시가스 정산을 하느라 내 손과 핸드폰이 바삐 움직였다. 이런 날은 또 왜 그리 공과금 대표 번호들이 통화도 대기가 많은지 모르겠다.


비가 소강 됐다가 또 내리고 소강 됐다가 또 내리곤 했다.


도착한 세입자께 키와 주차 차단기 리모컨을 넘기고 인사한 뒤, 살던 집에서 십 분 거리 밖에 안되는 이사할 집으로 건너 갔다.




창밖 전경이 좋은 곳이다. 그러나 바닥은 움푹 패여 있었다. 집주인은 냉장고로 가려질 거라고 하셨다.

(갈려고 했는데 인테리어 사장님이 재질과 재료상 그 부분만 할 수 없다고 하셨단다.)


정수기를 설치해야 하는데 호수 때문에 구멍을 뚫어야했다.

인테리어를 하나도 안 한 집이라 금이 가 있는 싱크대였다. 정수기를 설치 하기 위해 십원 짜리 동전 크기만한 구멍 내는 것도 용납할 수 없다고 하셨다. 예상도 못했던 반응이다.

정수기 설치 때문에 구멍 뚫을 거면 나갈 때 땜빵이 아니라 상판을 아예 갈고 가거나 다음 세입자가 쓸 수 있게 정수기 작은 거라도 하나 두고 가라고 단다.


순간 욱하기도 하고, 왜 서러운 생각이 드는지 화가 나서 부동산 중개사한테 따졌다. 그러면 무엇하랴, 집주인이 싫다는데 어쩔 수 없었다. 설치 기사님이 보기 좋진 않지만, 불편은 하시겠지만 줄을 밖으로 노출해 하는 방법도 있다고는 했다.


세탁실이 없어서 싱크대 바로 옆 자리에 세탁기를 넣어야 했다. 그런데 세탁기 호수를 연결하는 수도꼭지가 손잡이가 있는 일반 수도 꼭지가 아니었다. 결국 이사짐 센터 분이 건드릴 수 있는 수도꼭지가 아니라서 서비스 센터에 전화해 서비스 신청 예약을 했다. 이틀에서 삼일은 세탁기를 돌릴 수도 없다. 건조기 둘 자리가 없어 거실 창가 옆에 놓았다.


임차인이자 세입자로서 내 집이 아닌 곳에 산다는 게 이런 거구나, 하고 뼈져리게 깨달은 날이었다.


나는 그렇게 아들과 임차인이 되었고, 한 편으로는 임대인이 돼 버렸다. 임차인이 되고 싶어서 된 것도 아니고, 임대인이 되고 싶어서 된 것도아니었지만, 나도 임대인으로서 많은 생각이 드는 작은 사건이었다.


이사짐 센터 사장님이 비 쏟아지기 전에 하는게 서로 좋다며 점심 밥도 안 드시고 이사를 마쳐 주셨다. 뒤 정리도 책임감 있게 너무 잘 해 주시고 가셨다.


중간 중간 전세 계약한 부동산 뛰어 갔다 오랴, 하교하는 아들 픽업해 학원에 데려다 주고 오랴, 또 다시 세입자로 이사한 집 계약한 부동산 뛰어 갔다 오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점심밥도 먹지 못했다.

하긴 항상 모든 걸 나 혼자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며 살았다. 그건 변한게 없었다. 친정 부모님이 해 준 집으로 돈을 벌어  집으로 이사올 때도 그랬다. 옆에 누가 있다고 해서 도움이 된 적이 없었다.

빈 몸으로 들어와 밖으로만 돌았다. 가정적으로 옆에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 적이 한 번도 없었었다.


나는 좁아지고 세탁실이 없어진 새로운 주거지 덕에 짐을 줄였는데도 더 줄여야해 쓰레기 버리는 곳만 다섯 번을 왔다 갔다 했다. 그래도 더 버려야 할 게 나왔다. 다 놓아 두고 쓸 수 있는 크기가 아니었다.

이미 몸은 몸살이 날 듯 기진맥진해 있었다. 이른 저녁이 돼서야 겨우 첫 끼로 바지락 칼국수를 사 먹었다.


저녁에는 글쓰기 공부방 선생님으로 다시 돌아올 생각이 있냐며 의견을 묻는 국장님의 전화가 걸려 왔다. 부모들 상담도 잘하고, 애들 케어도 할 줄 아는 거 같아 상황부터 정리하길 기다릴까 하셨단다. 너무 감사한 말이었다. 조만간 한 번 찾아 뵙기로 했다.


하루가 길었다. 서로의 입장도 이해해야 하고, 각자의 자리에 놓인 입장들을 또 한 번 배우고 이해하려 노력한 하루였다.

그래도 바깥 전경은 너무나도 시원하고 좋았다. 벽의 반은 창으로 돼 있어 답답하지 않았다. 그 창이 나는 너무 좋았다. 아들도 그 창이 마음에 드는 듯 했다.


아들과 나는 그렇게 이사한 집에서 하루를 마감하며 밤 늦게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아들이 태권도에서 영화 상영하는 거 보겠다고 해 치킨부터 주문했다. 친구들과 먹을 치킨을 넉넉히 가져가 태권도에서 친구들과 함께 보는 재미를 즐기는 나이다.

나는 그런 아들의 기분을 생각해 친구들과 맘껏 먹으라고 치킨을 넉넉히 주문 받아서 들려 보낸다.


나는 도시락을 주문했다. 후드가 너무 오래 됐고, 이사로 도시 가스 점검을 오셨는데 오래된 가스불 덮개 아래스카치 테이프 같은 앏기와 모양의 검은 찌꺼기들이 사방으로 삐져 나와 치우기 전에는 뭘 해먹을 기분은 안 났다. 몸은 몸살 날 듯 기운이 하나도 없고, 완전 아무것도 하기 싫은 상태라 오늘까지만 쉬기로 했다.


그리고 이제야 따스한 라떼 한 잔을 마시고 있다. 아들이 친구들과 음료 마시며 노는 것을 잠시 지켜 보며, 라떼 한 잔의 휴식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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