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되고 자기 살 길만 챙겨 나가 버린 그 인간의 문자 메시지가 내 핸드폰 휴지통에 담겨 있다. 아들은 옆에서 내 핸드폰을 들여다 보다가 그걸 보게 됐다.
"지우고 싶은데, 계좌 번호 때문에. 법적으로 줘야할 돈이 남아 있어서 그거 보내면 지우고 차단할 거야."
"왜 우리가 돈을 줘? 법이 이상하네."
초등생 아들이다. 아들도 인격체고 인간임을 항상 인식하고는 있지만 저런 말을 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아들의 입에서 그 말을 들은 다음 날 밤에 드라마 '굿파트너'를 시청했다. 나는 배우 장나라가 연기하는 변호사 차은경의 대사와 그의 딸 재희의 대사에 몰입돼 울고 말았다.
드라마 속 딸인 재희가 하는 말을 우리 아들이 하고 있었다.
"죄 진 사람은 벌을 받아야지. 우리가 왜 줘?"
쓰레기 봉투 75L 짜리를 일상 생활에서 사는 일은 흔하지 않다. 일반 가정에서 흔히 쓰는 쓰레기 봉투의 크기가 아니다.
이제 아들과 둘 만의 일상을 살아가야 한다. 대출도 갚고, 대충이라도 다 털고 재시작 해야 하기에 집을 좁히기로 해서다. 그래서인지 이사가 아직은 한 달 남았는데 버릴게 많다.
아들의 물건들은 아들에게 물어 보며 버려야 했다.
찬장의 그릇들도 전부 다 가져갈 순 없었다. 이사 가는 집의 부엌이 지금 보다는 좁다. 싱크대와 찬장도 지금 집의 반쪽만 있는 크기다.
두 개짜리 방은 지금 방보다 작지는 않다. 지금의 집 보다 방 하나가 없을 뿐이다. 다행히 두 방 다 북밭이 장이 짜여져 있어서 되도록 장 안에 다 정리하고 살면 될 듯 하다. 거실 크기도 지금의 집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세탁실이 없고, 화장실이 한 개일 뿐이다.
아들과 둘이 살기엔 적당한 크기다. 더구나 집주인 분께서 직접 거주하며 깨끗이 쓰셨다. 청소 잘하고, 거의 안 쓰고 없어도 되는 물품들을 최대한 버리고 가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75L 짜리 쓰레기 봉투에 가득 담아서 버릴 건 다 버리기 시작했다.
관계를 정리하고, 등본을 정리하고, 일상 생활 공간에서 정리해 내보내면 될 줄 알았는데 아니다. 지금의 집에서 그대로 살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서 버릴 것들이 생겨 버렸다. 정리하고 버리는 게 요즘 나의 일상이 돼 버렸다.
내 인생에서 큰 일을 겪었다. 아이를 생각해 되도록 빨리 정리한지 이제 한 달이다. 일상과 마음은 편안해졌지만, 아들과 나에게 남기고 간 아픔과 상처가 쉽게 아물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당분간은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야해 힘들 거다. 정신이 없을 거다. 해결하고 나면 또 해결할 일이 생기고, 정리하고 나면 또 버릴 것이 생긴다.
당분간만 일거라고, 그렇게 나를 다독이며 이미 각오한 일이다.
나는 드라마 '굿파트너' 9회 분의 내용과 대사들에 가슴이 아려 왔다. 씁쓸했다.
드라마 속 차은경 변호사와 내가 다른 건 경제적 능력과 사회적 커리어로서의 당당함이 있고 없고의 차이 뿐이다. 다른 부분들은 너무나도 감정 몰입이 돼서 드라마를 보는 건지 현실을 들여다 보는 건지 착각이 들었다.
차은경 변호사 역을 맡은 배우 장나라의 대사와 초등 고학년인 딸 재희의 대사가 너무 꽂히고 아려서 눈물이 났다. 아들이 내게 한 말들과 겹치는 부분도 있어서 더 그랬던 거 같다.
"왜 우리가 돈을 줘? 법이 이상하네. 죄진 사람이 벌을 받아야지. 다신 아빠 만나고 싶지 않아."
드라마 '굿파트너'의 10회분 예고 편에서 딸 재희 역의 대사에서도 아빠를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대사가 나온다.
아이들도 안다. 직감적으로, 느낌적으로, 어른들은 몰랐음 하는 걸 아이들도 안다. 말해 줘야만 아는 게 아니란 걸, 아이들도 그걸 안다는 걸 우리는 모른 척 하고 싶은 지도 모른다. 너무 미안해서, 내 아이 만큼은 건드려 지지 않기를 바래서일 거다.
드라마 '굿파트너'를 보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비춰질 이 나리의 법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면서도 한숨이 나왔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는 그 뻔뻔함이 넘치는 이 시대의 현실이 아팠다.
강해져야 하지만 또 약한 게 사람이란 것도 아쉽다.
나도 처음엔 뻔뻔한 두 사람에게, 본인도 두 아이의 엄마인 그 여자에게 진정한 사과를 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 뻔뻔한 얼굴로 하는 사과 따위는 받고 싶지도 않다. 아들과 내게 좋은 일이 생기길 바랄 뿐이다.
당분간 빠듯하고 힘들 현실이 오래가지 않기를, 빨리 사회적 커리어로서 당당해지길 바랄 뿐이다.